[책에서 찾은 길] 상상의 빈곤 시대, 다시 '앨리스'를 찾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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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루이스 캐럴

일상이라는 매우 현실적인 삶의 테두리에서 지쳐가는 수많은 현대인은 환상의 공간, 비현실적인 세계, 기묘한 사건들이 가득한 판타지 장르에 열광하며 탐독한다. 그 속에서 잠시나마 위안을 얻고 다시 일상의 세계로 돌아간다.

판타지 장르의 거대한 고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지금도 작가와 영화감독 등 수많은 예술 창작자들에게 영감과 아이디어의 원천이 되고 있다. 나 역시 영화를 만들기 전, 시나리오 작업을 하다 한계를 느낄 때면 이 책을 열어 상상의 나래 속에서 주인공 '앨리스'를 따라 창작의 실마리를 찾곤 했다.

책의 내용을 조금 들여다보면 주인공 소녀 앨리스는 어느 날 강둑에서 언니와 놀다 심심해하던 중 자신 앞으로 말을 하며 급히 뛰어가는 토끼를 뒤쫓게 된다. 이후 동굴 구멍을 통해 이상한 세계로 빠져든 앨리스는 기묘하고 그로테스크한 여러 상황에 맞닥뜨리지만, 모든 상황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새로운 세상을 헤쳐 나간다. 이상한 나라 속에서 앨리스는 자신의 몸집이 커지기도 작아지기도 하며, 새를 비롯한 다양한 동물들의 사회 속으로 들어간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앨리스가 계속된 세계의 변화 속에서 무수한 물음을 던지지만, 이해되지 않는 세계 자체에 대한 경계와 의구심은 절대 품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떠한 비현실적인 상황과 사건이 닥치더라도 부인하지 않고 늘 그래왔던 세상인 것처럼 받아들인다. 존중의 기반 위에 무수한 질문들을 던지며 선입견 없는 태도로 세상을 헤쳐 나가는 것이다. 이런 세계관 덕분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단순한 동화가 아닌 '거대한 우화'로서 오늘날 현대인들에게 많은 질문을 던진다.

현실의 틈바구니에서 상상의 빈곤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이 다시 이 이야기에 빠져들 수 있다면, 이해되지 않는 세계에 대해 조금 더 관용과 존중의 태도로 나와 다른 타자를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잃어버렸던 환상과 아름다운 감각의 세계를 되찾는, 매혹적인 순간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최용석

영화감독

경성대 연극영화학과를 졸업한 뒤 장편영화 '제외될 수 없는' '이방인들' '다른 밤 다른 목소리' 등을 연출하며 독립영화계에서 활발히 활동해 왔다. 현재 부산독립영화협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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