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단상] 장미 대선, '디테일'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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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창훈 서울정치팀 차장

지인들과의 자리에서 '장미 대선' 얘기가 나왔다. 한 유력 대선주자에 대한 잇단 지지성 발언에 일부러 '공약은 좀 문제가 많은 것 같던데…'라고 했더니, 대뜸 "지금 그게 중요하냐"는 반문이 돌아왔다. 정권 교체라는 대의에 집중해야 할 때 그런 소소한(?) 일로 전열을 흩트리면 안 된다는 거다.

대선이 불과 한 달여 앞으로 다가왔지만, 뿌연 안갯속 같다. 각 후보 간 설전이 연일 언론 지상을 장식하지만, 정책이나 후보 역량에 대한 깊이 있는 공방을 찾기가 어려워서다.

경선 과정에서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이 숫자만 채운 TV토론회는 처음과 끝이 똑같은 한 편의 역할극 같았다.

2005년 노무현 전 대통령에 이어 재등장한 안희정의 대연정은 "차떼기당과의 연정이 말이 되느냐"는 10여 년 전 '내 편, 네 편' 싸움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안철수의 '5-5-2' 학제 개편안, 유승민의 '칼퇴근법' 등 현재와 다음 세대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공약들이 곳곳에 포진해 있지만, 실현 가능성과 효과에 대한 깊이 있는 토론은 전무한 상태다.

심지어 지역 공약은 극소수 후보를 제외하곤 아예 만들지도 않았다. 물론 대선이 갑작스럽게 결정된 탓이 크지만, 분명 정상적인 대선의 모습은 아니다.

후보 도덕성 검증 역시 1등 주자에 대한 '재탕' 의혹 외에 생산적인 논쟁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현직 대통령 탄핵 사태의 근본 원인으로 부실한 검증이 지목되는 상황에서 대선이 이런 식으로 전개되는 것은 아이러니다.

그렇다 보니 이들 후보가 가장 기대는 것은 편 가르기, 합종연횡, 단일화 등 역시 선거공학적 수단들이다.

1등 후보는 '개혁세력 대 적폐세력'이라는 이분법을 앞세워 개헌 등 생산적 쟁점의 논의마저 무력화시켰고, 보수정당 후보는 죽은 대통령까지 끌어들여 과거에 재미를 본 '프레임'을 재가동하는 데 골몰한다.

모두가 '미래로 가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내지만, 정작 선거는 과거와 한 치도 어긋남이 없다.

그러나 미래의 많은 부분은 거대한 구호보다는 '디테일'이 결정한다. 정치 선진국인 영국에서 정책공약집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은 정책 하나하나가 내 일상과 직결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당장 정치 엘리트에 대한 증오와 경제적 상실감 등으로 트럼프를 선택한 미국민들은 대선 과정에서 제대로 걸러지지 않은 공약이 그대로 이행되면서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치르는 중이다.

우리 역시도 공공 분야 81만 개 일자리 창출 공약은 재정 파탄을 초래하진 않을지, 학제 개편 공약은 사교육 문제 해결에 효과적인지 논쟁을 통해 사전 검증을 하지 않으면 같은 혼란을 겪을 수 있다. 가뜩이나 차기 대통령은 인수위도 없이 곧바로 국정을 운영해야 한다는 점에서 우려는 더욱 커진다.

이제 대진표가 짜여졌고, 30여 일간의 본선 레이스가 시작된다. 예선과는 다른 진짜 미래를 향한 후보들의 치열한 대결을 기대해 본다.

j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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