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통도사 구룡지
상상의 동물인 용(龍)은 한국과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문화권에서는 제왕의 권력을 상징했다. 천자나 임금과 관련된 용어에는 용이라는 말이 두루 쓰였다. 임금의 얼굴은 용안(龍顔), 흘리는 눈물은 용루(龍淚), 입는 옷은 용포(龍袍), 앉는 자리는 용상(龍床), 타는 수레나 가마는 용여(龍輿)·용가(龍駕)로 불렀다. 게다가 잘못 건드리면 노여움을 불러 죽음을 면치 못한다는 비늘까지 있었다. 역린(逆鱗)이다. 사용하는 말에서, 감히 근접할 수 없는 위엄에서 제왕의 면모가 완연했다.
불가에서 용은 부처님과 불국토를 수호하는 호법신이다. 인도에는 일찍이 뱀을 신으로 섬기는 사신숭배의 신앙이 있었는데, 불교와의 오랜 대립투쟁을 거쳐 용이 불교를 지키는 호법신으로 자리 잡았다. 지금도 법당 안의 닫집이나 대들보, 천장 등에는 꿈틀거리는 용이 빠지지 않고 그려져 있다. 부처님 앉은 자리나 신성한 법당에 혹 접근할지 모를 사악한 무리를 두 눈 부릅뜨고 경계하느라 여념이 없다. 우리 민간신앙인 칠성이나 산신과 마찬가지로 용왕, 용신도 불교의 호법신이 된 지 오래다.
영축총림 통도사에 가면 삼성각과 산신각 사이에 자그마한 연못이 있다. 통도사 창건 설화가 깃든 구룡지(九龍池)다. 원래 통도사 자리는 큰 연못이었고, 그곳에는 아홉 마리의 용이 살고 있었는데 자장율사가 이들을 제압한 뒤 대가람을 일궜다. 구룡 가운데 다섯 용은 오룡동으로, 세 마리 용은 삼동곡으로 가고 오직 한 마리 용이 절을 지키겠다는 서원을 하자 구룡지를 만들어 살게 했다고 한다. 이 창건설화는 중앙집권 세력이 영축산을 근거지로 삼은 지방세력을 제압한 것이라는 해석을 낳으면서 권력과 불교 호법신의 관계를 시사하기도 한다.
통도사가 3일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구룡지 설화에 나오는 아홉 마리 용을 장엄등으로 재현하기로 해 화제다. 사찰 내 스님은 물론이고 하북면 주민들이 2개월 넘게 흘린 구슬땀 덕분에 1370여 년 만에 아홉 마리 용이 부처님을 친견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게 통도사의 설명이다. 절집 산문 아래 속세에서는 '장미 대선'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잠룡들의 각축전이 치열하다. 부디 이번 대선에서는 국민을 부처님 모시듯 떠받들고 지키는 대통령이 나오기를 기원해 본다. 임성원 논설위원 forest@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