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동상(銅像)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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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는 광장과 동상을 무척 좋아한다. 광장마다 동상이 있다. 전제군주와 장군에서부터 예술가까지 몇백 년 전 사람들이 서 있다. 러시아 사람들은 동상을 타국에 설치하거나, 타국 동상을 자국에 설치하는 일을 대단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두 나라가 서로 자랑할 만한 인물을 나눠 갖는다는 건 존중과 소통의 증표 교환이나 다름없다.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은 학교 동양학부 정원에 박경리(1926~2008) 작가의 동상을 세울 계획이다. 지난 2013년 비영리단체인 '한러대화'가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 러시아 작가 푸시킨의 동상을 세운 데 대한 화답이다.

최근 방한한 이 대학 니콜라이 크로파체프 총장은 "문재인 대통령의 러시아 방문 일정에 맞춰 제막식을 추진 중"이라고 했다. 지난 2013년 푸시킨 동상의 서울 제막식에는 방한 중이던 푸틴 대통령이 참석할 정도로 관심이 높았다. 물론 민간의 교류지만 러시아는 외교적 기회로 잘 활용하는 것처럼 보인다. 국가안보 위기를 외교적으로 푼다는 전략을 천명한 한국은 이런 교류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 러시아는 북핵6자회담 테이블의 일원이다. 게다가 우리는 사드 설치 문제로 중국시장을 잃었다. 북핵 협상에서 러시아의 지지를 얻고 중국 대체 시장을 확보하기 위해 이번 동상 교환에 민간교류 이상의 의미를 두어야 한다.

푸시킨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인용된다는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는 시구를 남긴 인물이다. 시적 산문으로 러시아어로도 작품이 가능함을 보여 주었다. 그래서 러시아 문학의 아버지로 불린다. 그는 38살에 아내와의 염문을 퍼뜨리던 망명한 프랑스 장교에게 결투를 신청했다가 목숨을 잃고 러시아 여성들의 영원한 연인이 된다. 작가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는 노벨문학상 수상작인 미하일 숄로호프의 <고요한 돈 강>보다 작품성이 더 낫다는 외국 평가를 받고 있다. 박경리 동상은 인물상(높이 140㎝)과 유고시집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의 책 모형이다.

푸시킨과 박경리는 인류의 유산이다. 두 작가를 양국 간 소통의 모티브로 활용하는 일은 나쁠 게 없다. 동상을 주고받으며 양국 간 신뢰가 향상될 수만 있다면 '동상 외교'라고 불러도 되지 않을까.

이상민 논설위원 yeyu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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