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물폭탄'] 본보 박진국 기자 폭우 체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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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등굣길 '침수 난리' 끝난 후 '휴교 문자'에 분통

11일 오전 부산 수영구 수영로 719 지점 맨홀에서 역류하는 하수를 피해 차선을 바꾼 기자의 승용차가 물에 침수돼 방치돼 있다.

11일 출근길은 평소 월요일과 다름없이 일상적이었다. 고등학생인 딸아이(18) 등교를 위해 오전 7시30분 집을 나섰다.

부산 해운대구 우동 아파트 지하 주차장을 빠져나오자 오락가락 하던 빗줄기가 거세졌다. 벡스코 2 전시장 옆을 지나는 APEC로는 쏟아지는 물줄기로 이미 차선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수영교를 건너 포스코 더 샵 센텀포레 아파트를 지날 때 빗줄기가 더욱 거세졌다. 와이퍼를 최대 속도로 가동했지만, 한 치 앞을 분간하기 어려웠다. 자동차들은 거북이처럼 서행하며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서기 시작했다. 왕복 6차로 수영로는 주차장을 방불케 했다.

사고는 수영교차로를 1㎞ 정도 남겨두고 터졌다. 오전 7시 50분. 빗줄기는 더욱 거세져 마치 양동이로 퍼붓는 듯했다. 1차로를 달리던 기자의 차 앞에서 갑자기 맨홀을 통해 하수가 역류하기 시작했다. 수압이 얼마나 셌는지 시커먼 오수가 순간 최대 1m 넘게 치솟기도 했다.

물길을 피해 3차로로 차선을 바꾼 것이 실수였다. 도로 구조상 1차로보다 낮게 설계된 3차로로 쏟아진 빗물과 역류하는 오수가 몰려들었다. 물은 순식간에 바퀴 높이를 넘어 차 안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기자의 차 옆으로 큰 트럭이 지나가는 순간, 물결이 파도를 일으키며 차체를 흔들었고 곧 시동이 꺼졌다. 차가 침수된 것이다. 채 5분도 되지 않아 차 안으로 스며든 오수가 조수석 의자까지 차올랐다.

겁에 질린 딸아이가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차를 버리고 탈출하는 수밖에 없었다. 조수석에 앉아 있던 딸아이를 들쳐 업고 인근 상가로 피신했다. 고인 물은 엉덩이 아래까지 깊어져 있었다.

보험사에 연락하고 119와 112, 수영구청에 신고하는 사이 빗줄기가 다소 약해졌다. 그러나 물에 잠겨져 있던 맨홀 구멍을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1차로를 주행하던 차량들의 바퀴가 맨홀에 빠지는 사고가 잇달았다. 차 밑바닥이 깨지고 바퀴 터지는 소리가 연이었다. 펑크 난 차량은 얼마 못가 1차로에 주저앉기도 했다.

폭우 속에서 1시간 넘게 기다렸으나 보험사, 소방관, 경찰 그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었다. 수영구청 관계자는 맨홀 신고를 받고도 관리기관이 수영구청인지도 모르고 있었다. 오전 9시께 드디어 도로에 물이 빠지기 시작했다. 속살을 드러낸 1차로의 맨홀 뚜껑은 수압에 떠밀려 1m 이상 떨어져 나동그라져 있었다. 그때 드디어 소방차가 차들로 뒤엉킨 도로를 뚫고 현장에 도착, 맨홀 뚜껑을 수습해 닫았다. 잠시 후 112 순찰차량도 현장에 도착, 시동이 꺼진 기자의 차를 인도로 밀어 올려 3차로를 확보했다.

그러는 사이 아이의 학교에서 휴교를 알리는 문자를 뒤늦게 확인했다. 오전 9시 10분이었다. 이미 '물난리'를 겪은 후였다. 보험사의 견인차가 현장에 도착한 건 1시간이 더 지난 오전 10시 4분. 교통 체증으로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겠지만 119도, 112도, 보험사도, 학교도 늦어도 너무 늦었다.

오후 3시께 차를 입고한 공장에서 연락이 왔다. 8년간 잔고장 하나 없이 잘 달리던 차를 폐차하는 게 좋겠다는 '비보'였다. 수리하려면 2000만 원 이상 견적이 나오고, 고친 후에도 잔고장이 잦을 것이라는 설명에 눈물을 머금고 '물 먹은 애마'를 떠나보내기로 결정했다. 고단한 하루였다. 글·사진=박진국 기자 gook72@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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