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ri Lanka] 몰라서 신비로운, 그래서 환상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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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갈레로 가는 아름다운 해안가에서 만난 스리랑카 명물 '외다리 낚시'를 하는 장면.

흔히 좋은 여행, 나쁜 여행은 따로 없다고 한다. 자기만의 여행 경험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의미다. 누군가가 나에게 스리랑카 여행이 어땠느냐고 묻는다면 '새로운 발견'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인도, 네팔, 라오스, 부탄 등은 기회 되면 꼭 한 번쯤 가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스리랑카에 대해선 전혀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다. 인도양의 진주, 미지의 나라 스리랑카를 다녀왔다. 이번 스리랑카 여행은 '여자 혼자' 떠난 자유 여행이었다. 그래서 하루하루가 더 흥미진진했고, 환상적이었다. 그 어떤 여행보다도 날것 그대로의 느낌을 마주할 수 있었다. 열 장면으로 스리랑카 여행을 간추렸다.

스리랑카 여행의 시작_네곰보 비치

#1 네곰보 비치, 인도양의 석양과 만나다
네곰보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덜컹덜컹. 스리랑카 버스는 앞문과 뒷문을 모두 열어놓은 채 운행했다. 버스엔 우리의 1970년대처럼 차장이 있다. '젊은 여성' 차장이 아니라 '배 나온' 아저씨 차장이 매의 눈으로 새로운 승객에게 다가가 차비를 거두는 모습은 신기에 가까웠다. 버스를 내려서 바닷가 쪽으로 하염없이 걸었다. 바닷가로 들어서는 길목은 쉬이 나타나지 않았다. 아름다운 네곰보 비치는 각종 호텔과 레스토랑이 들어서면서 백사장마저도 사유화됐다. 일반인이 드나들 수 있는 비치는 별도로 정해졌다. 부산 해운대에 즐비한 각 호텔 앞 백사장이 사유지가 되었다고 생각하니 아찔했다. 슬프지만 자본의 힘이다. 네곰보 비치로 들어섰다. 해는 넘어가기 직전이다. 이게 말로만 듣던 인도양인가 싶은 마음에 옷을 입은 채 바다로 뛰어들었다. 무릎까지 차오르는 바다에서 붉은 기운이 남아 있는 석양을 바라봤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석양이지만 기분이 남달랐다. 아무것도 아닌 순간이었지만 자유로웠고, 아무것도 아니어서 허전했다. 스리랑카 여행이 시작됐다.

스리랑카의 과거와 현재_콜롬보
#2 켈라니야 사원, '나'를 내려놓다
콜롬보에서 머문 2박 3일 동안 꽤 여러 곳을 쏘다녔다. 스리랑카 자전거 여행을 다녀온 지인은 "콜롬보에서 뭐 볼 게 있다고 이틀씩이나?"라는 마뜩잖은 눈길을 보냈다. 어떤 여행지나 마찬가지겠지만 결국 '무엇을 볼 것인가'의 문제는 항상 여행자의 관심사와 직결될 수밖에 없다. 스리랑카의 유구한 역사를 보여 주는 콜롬보 국립박물관과 곧 불어닥칠 개발의 딜레마로 사라질지도 모를 스리랑카의 현재 모습이 콜롬보엔 공존했다. '스리랑카 국민 건축가' 제프리 바와가 생전 기거하던 개인 자택을 찾아가는 즐거움, 푸른 잔디가 깔린 해변공원 '갈레 페이스 그린'에서 만난 스리랑카 청춘들의 발랄함, 그리고 석가모니의 머리카락 사리를 모신 강가라마야 사원, 석가모니의 마지막 방문지 켈라니야 사원에서 마주한 경건함 등이 있었다. 켈라니야에선 유독 간절하게 기도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여서 저절로 숙연해졌다. 게다가 법당과 경내를 맨발로 걸어 다닌 경험도 강렬했다. 뜻밖에도 '나를 내려놓는 듯'했다

순례자가 되어 시간의 역사를 걷다_갈레 요새
#3 갈레 요새, 스리랑카의 아픔을 걷다
스리랑카 남부 항구 도시 갈레에 도착했다. 강한 바람을 온몸으로 느끼며 순례자가 된 듯 '갈레 요새(Galle Fort)'를 걸었다. 유독 무슬림이 많은 곳이어서 순례자 느낌이 더 강했는지도 모르겠다. '스리랑카에 갈 땐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가라'는 광고 문구 같은 글이 몹시 어울리는 곳이기도 했다. 갈레 등대를 출발해 넘실대는 인도양을 보면서 11개의 요새가 이어지는 둑길을 가다 서다 반복하며 걸었다. 무념무상이 된다는 게 무얼 의미하는지도 알 것 같았다. 유럽 열강에 의해 1633년 지어진 아시아에서 가장 큰 요새로, 198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다. '갈레 포트'로 명명된 이 지구엔 스리랑카에선 가장 오래된 갈레 도서관(1832년 설립), 식민지 시대 유물이 가득한 네덜란드 건물로 지은 갈레국립박물관(1656년 건물), 약 350년 전에 지어진 회교 사원 '미란 모스크' 등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의 식민지로 살았던 스리랑카의 아픔을 현재 시간으로 마주할 수 있다.

외다리 장대 낚시에 올라 보니_탕갈레 가는 길 
#4 스틸트 피싱, 바다 위에 우뚝 서 보다
스리랑카에 가면 해 보고 싶은 몇 가지가 있었다. 그중 하나가 스틸트 피싱(Stilt Fishing), 일명 '외다리 장대 낚시'다. 이젠 어업이라기보다는 관광산업이 된 그것이지만 갈레를 떠나 탕갈레로 향하는 해변에서 발견했다. 탕갈레는 스리랑카 내에서도 아름다운 바다색과 해안선으로 유명한 곳인데, 그곳 바다에 세워진 외다리 장대 낚시 모습은 보는 것만으로도 장관이었다. 장대에 올랐다. 한 손은 기둥을 잡고 다른 한 손은 대나무로 만든 낚싯대를 들었다. 바다 위에 있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 게다가 해까지 지고 있는 타이밍은 기가 막혔다. 온 지축이 흔들리면서 마치 나무 기둥을 뽑아 버릴 듯한 기세로 빠져나가는 썰물의 위엄은 대단했다. 눈에 보이는 파도 이상의 두려움이 엄습했다. 누군가는 말했다. 한없이 잔잔한 파도든, 집어삼킬 듯 몰아치는 파도든 어느 쪽이든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고. 다른 한편으로는 파도는 파도일 뿐 바다는 아니라고. 다 생각하기 나름인 것이다.

코끼리 고아원을 찾아서_캔디·우다왈라웨
#5 우다왈라웨 코끼리 고아원, 공존을 느끼다
스리랑카에 가면 코끼리 고아원에 가 보고 싶다고 말한 친구가 있었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코끼리 고아원'이 보고 싶어서 스리랑카에 가야겠다고 말하던 친구였다. 그 친구를 생각하며 코끼리 고아원을 찾았다. 부모를 잃거나 야생에서 자생 능력이 없는 코끼리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코끼리 고아원이 스리랑카엔 두 곳이나 있다. 콜롬보에서 가까운 캔디의 핀나왈라 코끼리 고아원(1975년 설립)과 코끼리 서식지로 유명한 우다왈라웨 국립공원 내에 위치한 우다왈라웨 코끼리 고아원(1995년 설립)이 그것이다. 우다왈라웨에선 야생 코끼리를 만날 수 있는 사파리 투어도 가능하다. 고아원의 코끼리만 보더라도 한국의 동물원에서 생활하는 코끼리보다는 한결 좋아 보였다. 우리의 동물원과 가장 달랐던 건 야생과 인간이 공존하는 곳이라는 점. 코끼리에겐 적어도 한국보다 스리랑카가 천국이 아니었을까!

차밭 사이를 달리는 기차_엘라에서 해튼까지
#6 차밭 사이를 달리는 기차, 꿈 속을 달리는 듯했다
'스리랑카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던 차밭 사이를 달리는 기차를 탔다. '나인 아치 다리(9 archBridge)'를 다녀오던 길이어서 엘라역에서 탑승했다. 1시간이면 도착하는 하푸탈레역에 내릴 예정이었지만 녹색 차밭이 광활하게 펼쳐지는 바깥 풍경에 반해서 몇 정거장 더 간다는 게 그만 해튼역까지 가 버렸다. 4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기차는 아주 저속(15~20㎞)으로 다니기 때문에 창밖으로 얼굴을 내밀거나 문에 매달려 가기도 했는데 한국에선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또한 기차에선 간단한 음료나 간식도 팔았는데 '와데'(렌틸콩 반죽에 감자, 고추, 새우, 향신료 등의 재료를 버무려 기름에 튀긴 음식)가 단연 인기였다. 나인 아치 다리는 사진이나 영상에서 보던 것처럼 아주 매력적이었다. 뛰어난 기교가 들어간 것 같진 않았는데 깊이감이 남다르게 느껴지는 묘한 석조 다리였다. 더욱이 그 분위기를 타고 곡선으로 꺾여 들어오는 기차를 보고 있으니 마치 해리 포터의 호그와트 마법학교로 시간 이동을 하는 듯했다.

한 잔의 홍차를 위하여_립톤시트에서 캔디
#7 하푸탈레 차밭, 한 잔 한 잔의 홍차가 자란다
홍차 대국인 스리랑카에 갔으니 산지에 가 보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스리랑카 '홍차 여행'은 순조롭지 못했다. 하푸탈레 꼭대기의 '립톤시트'를 찾아갔지만 차밭에서 너무 오랜 시간을 보내느라 립톤차를 만드는 '담베텐네' 홍차 공장(Tea Factory) 견학 기회를 얻지 못했다. 그다음 날에도 세계적인 홍차 산지인 누와라 엘리야 일대를 돌아다녔지만 다른 곳을 구경하느라 시간이 늦어져 '글렌노치 티 팩토리'와 '블루필드 티 팩토리' 앞에서 아쉬운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그렇게 홍차 공장과의 인연은 끝인가 했는데 뜻밖에도 캔디에서 '기라가마 티 팩토리'(1903년 설립)를 찾아가 홍차 생산 공정을 엿볼 수 있었다. 알려졌다시피 '실론 티(Tea)'의 본고장 스리랑카는 세계 최대 홍차 수출국 중 하나다. 수출량으로는 케냐에 1위를 내줬지만 질만큼은 세계 최고라고 자부했다. 스리랑카 중에서도 누와라 엘리야, 우바, 담불라, 캔디, 루후나 등이 홍차 산지로 유명하다.

'세상의 끝'에서 만난 안개 숲_호튼 플레인스
#8 호튼 플레인스 가는 길, 날것의 자연에서 숨 쉬다
자연 그대로의 드넓은 평원이 보고 싶어 해발 고도 2100~2300m의 호튼 플레인스 국립공원을 찾았다. 삼바 사슴 등 희귀 동식물의 주요 서식지답게 2010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다. 호튼 플레인스는 산 아랫마을 오히야에서부터 꼬불꼬불 숲길로 올라가면서 만나는 굵직굵직한 나무부터가 장관이다. 호튼 플레인스 입구까지는 도보나 버스, 툭툭도 이용할 수 없다. 승용차를 타고 들어가기 때문에 다들 렌터카를 이용했다. 매표소를 지나고도 자동차는 더 달렸다. 본격적인 트레킹에 앞서 검문소(플라스틱류 등 소지품 검사)를 다시 통과할 만큼 까다롭게 입장객을 관리했다. 그리고 걷고 또 걸었다. 약 1200m 높이의 신비로운 절벽에서 피어오르는 안개 숲이 장관인 '세상의 끝(World's End)'과 영국의 유명한 탐험가 사무엘 베이커의 이름을 딴 '베이커 폭포'를 돌아오니 3시간 반이 훌쩍 지나 있었다. 더욱이 돌아 나오는 길엔 비까지 흠뻑 맞았는데 마음만은 상쾌했다. 그저 느리게, 유유자적할 수 있는 공간이자 시간이 되는 곳이다.

인간의 공포가 만들어 낸 걸작_시기리야
#9 시기리야, 권력의 허망함을 절감하다
스리랑카 중부, 광활한 열대 밀림 위에 외딴섬처럼 우뚝 솟은 바위산 요새 '시기리야(사자 산이라는 뜻)'는 문을 열자마자(입장 허용 오전 7시) 다녀왔다. 이복동생에게 왕위를 뺏길까 봐 부왕을 죽이고 왕이 된 카사파 1세가 동생의 보복을 피해 470년께 해발 고도 350m 위에 궁궐과 요새를 지어서 살았던 곳이다. 그런데 10여 년이 흐른 뒤 군대를 이끌고 온 동생 앞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비극적인 이야기도 있다. 영원할 것만 같던 권력도 죽음 앞에선 초라했다. 인생무상이란 이런 걸 두고 이야기하나 싶었다. 정상의 왕궁까지는 거대한 사자의 앞발 사이로 난 계단(라이언 플랫폼)을 통과해야 한다. 총 난간 수는 1200개. 새벽 입장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이곳은 스리랑카 유적지 중에선 입장료(30USD)가 꽤 비싼 편인데도 줄 잇는 방문자로 발 디딜 틈이 없을 때가 많다고 했다. 하지만 오전 7시 2번째 입장객이 되고 보니 정말 호젓하게 일대를 돌아볼 수 있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자 세계 8대 불가사의 중 하나란다.

제프리 바와_콜롬보, 루누강가, 칸달라마
#10 제프리 바와의 칸달라마, 스리랑카의 건축을 보다
여행을 하다 보면 가끔은 전후 맥락이 이유 없이 바뀔 때가 있다. 스리랑카에 가기로 결정하고, 갑작스레 '나 홀로 여행'이 된 후, 떠올린 키워드가 '제프리 바와'(1919~2003)였다. 맨 먼저 그가 40년간 살았던 콜롬보의 자택(Number 11)을 다녀왔고, 이어 물 위에 떠 있는 불교 사원 '시마말라카'를 보았으며, 점점 더 궁금해지는 호기심을 누르지 못해 벤토타의 '루누강가' 별장까지 가게 됐다. 그리고 정부 요청으로 스리랑카 최고 문화유적지 시기리야 부근 담불라의 한 암반 위에 거대한 올빼미를 펼친 것 같은 모양으로 1994년 완성한 헤리턴스 칸달라마 호텔까지 이르게 됐다. 식물들이 표면을 뒤덮은 건물 외관은 말할 것도 없고, 바위와 건물이 하나로 합쳐진 듯한, '열대지방의 모더니즘을 완성했다'는 그의 건축 철학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공간이었다. 흔히 스리랑카 여행을 시작하는 동선으로 본다면 콜롬보에서 가장 가까운 이곳부터 시작해야 했지만 칸달라마 호텔 예약이 안 돼 남들과는 정반대로 움직이게 됐다. 결과적으로 바와의 칸달라마가 나의 스리랑카 여행 종착지가 됐다.

고작 열 장면으로 스리랑카라는 나라를 설명할 순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장면이 계기가 되어 스리랑카에 대한 작은 영감이라도 갖는다면 먼저 다녀온 여행자로서의 소임은 다한 듯싶다.

스리랑카/글·사진=김은영 선임기자 key66@busan.com

여행팁
스리랑카 개관
= 스리랑카는 인도의 남쪽, 인도양에 있는 섬나라이다. 지도 모양이 꼭 눈물방울 같아서 '인도양의 눈물' 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영국의 지배를 받았던 스리랑카는 1948년 국명을 실론에서 스리랑카공화국으로 바꾸고 독립했다. 정식 국가 명칭은 '스리랑카 민주사회주의 공화국'. 언어는 싱할라어·타밀어·영어(공용)를 사용하고, 국민의 대다수가 종교를 갖고 있다. 불교가 약 69%(주로 싱할라족)로 가장 많고, 힌두교 약 11%(주로 타밀족), 이슬람교 7.6%, 기독교 약 7.5%로 구성돼 있다. 사원을 방문할 때에는 신발과 모자를 벗어야 하며, 불상 앞에 서서 사진을 찍는 건 양해가 없는 한 피해야 한다.

전압은 230~240V를 사용하지만 220V 전자제품을 사용하는 데 불편함은 없다. 다만, 콘센트에 맞는 별도의 보조 플러그가 필요하다. 시차는 한국보다 3시간 30분 늦다. 화폐 단위는 루피(Rs.). 한국에서 달러로 환전한 뒤 현지에서 루피로 바꾸면 된다. 한국 물가의 8분의 1 정도로 예상하면 된다.

스리랑카 가는 법과 치안= 우리나라 인천에서 출발해 스리랑카 콜롬보(반다라나이케국제공항)까지는 대한항공이 월·수·토요일 주 3회(직항) 운항한다. 소요 시간은 약 9시간. 싱가포르항공, 중국남방항공, 중국동방항공 등은 1회 경유로 이용 가능하다. 간혹 '스리랑카 내전'을 언급하며 치안 상황을 물어보는데 2009년 5월, 26년간 이어온 내전은 종식됐다. 따라서 치안도 괜찮은 편이다.
열대과일 패션프루트
스리랑카 음식과 과일= 스리랑카 주식은 쌀과 카레. 거기에 서너 가지 밑반찬을 혼합해 먹는다. 주요 음식으로는 쌀가루에 코코넛 우유를 넣어 반죽한 것을 얇게 구운 일종의 팬케이크 같은 '호퍼', 밀가루 물 소금을 섞은 반죽으로 얇고 평평하게 구운 빵 '로티', 코코넛 우유와 쌀을 섞어 끓인 '우유밥'이라는 뜻의 '키리바스', 짧게 자른 로티와 각종 채소 달걀 치즈, 닭고기 등을 넣어서 매콤한 스리랑카 향신료와 함께 볶은 철판 요리 '고투', 고추 후추 같은 향신료를 맷돌로 갈아 만든 스리랑카의 대표적인 밑반찬 '삼볼' 등이 있다. 또한 열대과일의 천국이다. 다만, 과일마다 수확기가 다르기 때문에 실컷 먹고 싶은 과일이 있다면 수확 시기를 잘 확인해야 한다. 김은영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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