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작은 박물관-② 민족과 여성 역사관] 부산 유일의 '위안부 역사관'을 아시나요?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pressjk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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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작은 박물관' 시리즈는 부산 곳곳에 존재하는 작지만 의미 있는 박물관을 찾아가 공간을 소개합니다. 부산 시민에게는 물론, 부산을 찾는 외지인에게도 부산의 관광 명소를 소개함으로 지역의 정보를 제공합니다. 시리즈는 총 5편으로 구성됩니다.

부산과 '위안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한일 위안부 합의에 반대하며 2016년 12월 시민단체가 일본 영사관 앞에 설치한 소녀상이 대표적이다.

소녀상은 산전수전을 겪었다. 설치된 지 4시간도 채 되지 않아 경찰과 구청 공무원에 의해 철거됐고, 이 과정에서 부산 시민과 대학생 20여 명이 공무집행방해죄로 연행됐다.

논란 끝에 소녀상은 다시 설치되었으나 일부 극우단체의 쓰레기 투척 등으로 몸살을 앓았다. 다행히 지난 3월 오거돈 부산시장이 앞으로는 시에서 소녀상을 관리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위안부에 관심이 있다면 소녀상 못지않게 관심을 가져야 할 곳이 또 있다. 사단법인 정신대문제대책 부산협의회(정대협) 김문숙(92) 이사장이 개인재산을 들여 설립한 수영구의 '민족과 여성 역사관'이다.


위안부를 알린 여성운동가 김문숙

작년 개봉한 영화 '허스토리' 문정숙 사장 역의 모티브가 된 인물인 김 이사장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991년 위안부 문제를 알게 된 그는 직접 할머니들을 수소문해 250명의 피해자를 찾아냈다.

정신대문제대책 부산협의회 김문숙(92) 이사장. 부산일보 DB 정신대문제대책 부산협의회 김문숙(92) 이사장. 부산일보 DB

시작은 영화와 사뭇 다르다. 여행사를 운영하며 여성 인권운동에 힘쓰던 김 이사장은 일본인들이 부산으로 ‘기생관광’을 오는 모습을 보고 분노했다. 동료 여성운동가들과 공항에서 기생관광 반대 시위를 벌이던 그는 한 일본인 남성으로부터 "일제 강점기 때도 조선 여성들이 중국에 왔는데, 당시엔 돈을 못 줬지만 지금은 돈을 주지 않느냐"는 취지로 말했다고 한다.

위안부의 존재를 알고 충격을 받은 김 이사장은 부산에 정신대 신고 전화를 설치했고, 과거를 숨긴 채 숨죽여 살아가던 할머니 250명이 전화를 걸어왔다.

김 이사장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1992년 일본 정부를 상대로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한다. 일본 변호사들도 무료변론을 자처했다. 1993년과 1994년 원고가 추가되어 위안부 피해자 3명과 근로정신대 피해자 7명으로 이뤄진 원고단이 구성됐다. 김 이사장은 6년 동안 이들과 시모노세키를 23번 오가며 수발을 들고 통역까지 맡았다. 이 과정에서 여행사로 번 돈도 “아낌없이” 썼다.

근거 법률이 없어 패색이 짙던 재판에서 놀랍게도 일부 승소 판결이 나왔다. 1998년 야마구치 지방재판소 시모노세키 지부는 일본 정부가 위안부 할머니들에 한해 30만엔(한화 약 300만 원)씩의 위자료를 지급할 것을 선고했다. 금액은 경미하지만, 일본이 위안부 문제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인정한 최초이자 유일한 판결이다.

위안부 피해를 알리려는 김 이사장의 노력은 계속되었다. 2004년 1억 원을 들여 ‘민족과 여성 역사관’을 짓고 ‘관부재판’을 비롯한 위안부 관련 자료를 한 데 모았다.


빼곡히 들어찬 위안부 증거들

지난 6월 초 수영역 인근 건물 2층에 위치한 역사관을 찾았다. 역사관 맞은 편 사무실에서 김 이사장도 만날 수 있었다. 악수하며 미소 짓는 그는 정정해 보였다. 손아귀에서 단단한 힘이 느껴졌다.

인사를 나눈 뒤 이영숙 학예사의 열정적인 설명과 함께 역사관을 관람했다. 곳곳의 자료들은 위안부가 존재했음을 명백하게 증명하고 있었다.

역사관은 3개의 전시관으로 나뉘어 있다. 제1전시관은 일본군 위안소와 위안부 할머니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 100여 점, 위안부 관련 서적 200여 권, 과거 신문 기사, 관부 재판 공소장과 진술서, 근로 정신대 자료집 등 1,000여 점의 자료가 보관되어 있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둘러보는 데만 한참 걸렸다. 위안부 문제를 다룬 일본의 한 지방신문 기사는 일본인 방문객도 처음 본 것이라고 한다. 관부재판 당시 실제 촬영된 사진과 영화 ‘허스토리’ 속 장면을 비교하는 이 학예사의 설명도 흥미롭다.


1관에서 특히 인상적인 것은 관부재판에서 증언한 할머니 네 분의 사진이 걸려있는 벽면이다. 담담한 표정을 비추는 할로겐 불빛과 ‘용감함’을 강조한 소개 문구들은 할머니들이 용감한 역사의 증인이었음을 말해준다.

제2전시관은 매년 새로운 자료로 구성된다. 올해는 수요 집회와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들이 눈에 띈다. 전시관 가운데에는 ‘허스토리’에서 김 이사장을 연기한 배우 김희애 씨의 방명록도 있다.


두 전시관을 연결하는 통로도 허투루 두지 않았다. 독도가 한국의 영토임을 증명하는 각종 외신 기사와 자료들이 즐비하다.

제3전시관은 위안부 할머니들이 미술 심리 치료를 받으며 그린 작품들의 사본이 전시되어 있다. 김순덕 할머니의 ‘끌려감’, 강덕경 할머니의 ‘빼앗긴 순정’, ‘사죄’ 등을 볼 수 있다. 아울러 중고교생과 대학생이 포스트잇과 팻말 등에 직접 쓴 응원 문구도 놓여있다. 해운대 상당중학교의 비장한 동아리 이름 ‘상당결사단’이 귀여우면서도 대견하다.


학생들 관심은 뜨거운데…역사관은 존폐위기

국내에 있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관련 역사관은 민족과 여성 역사관을 포함해 총 4곳이다. 나머지 3곳은 경기도 광주시 나눔의 집에 있는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1998년), 서울 마포구의 전쟁과 여성 인권 박물관(2012년), 대구 중구의 희움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2015) 등이다.

이 중에서도 민족과 여성 역사관의 사정은 좋지 않다. 역사관을 운영하는 것은 정대협으로 알려져 있는데, 사실상 김 이사장의 재산과 일부 시민들의 후원금으로만 유지되고 있어 ‘존폐위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관람료는 받지 않지만 매월 150만원 가량의 임대료를 내야 한다.

그간 부산시가 비영리사업으로 일정한 지원금을 지급하긴 했으나, 이를 운영비인 월세로 사용할 수는 없는 상태다. 정대협은 2016년 어린이대공원 학생교육문화회관에 평화의 소녀상 건립을 추진하는 등 다양한 역사 관련 사업을 진행해왔다. 부산시가 지난 3월 지원하겠다고 밝힌 4천300만 원 역시 이같은 사업비로만 사용할 수 있다.

역사관에 대한 시민들의 낮은 인지도도 아쉽다. 인근 주민들도 역사관의 존재를 잘 알지 못하고 있다. 규모가 크지 않은데다 건물 2층에 있는 탓에 눈여겨보지 않으면 지나치기 쉽다. 설립한 지 15년이 되도록 단 한명의 정치인도 방문한 적이 없다. 오히려 일본 민간인들이 종종 방문한다. 매년 정기적으로 찾는 일본인들도 있고, 김 이사장에게 사과한 신문 기자도 있었다고.

다행히 역사에 관심이 많은 중고등학생과 대학생들이 꾸준히 역사관을 찾아온다. 역사관을 찾은 뒤 자발적으로 홍보활동에 나서는 청년이 있는가 하면, 직접 만든 위안부 관련 상품을 판매해 수익금을 기부하기도 한다.

이 학예사는 “(‘허스토리’ 개봉 후) 부산 소재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이 자주 온다. 여학생들은 김 이사장을 보자마자 ‘살아계실지 몰랐다’며 모두 울고, 남학생들도 종종 눈물을 감추지 못한다”며 보다 많은 관심과 지원을 당부했다.


오는 방법 및 주변정보

부산도시철도 수영역 2번 출구에서 150m 아래 건물(부산광역시 수영구 연수로 397) 2층에 위치해있다. 관람료는 무료이며,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관람할 수 있다. 단체 방문시 전화(051-754-3444)로 미리 예약하는 것이 좋다.


* 이 기사는 부산시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글=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pressjkk@busan.com

영상=김강현 PD gangdoo@busan.com

인터랙티브 디자인=이민경 부산닷컴 기자 loo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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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pressjk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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