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비아토르-여행하는 인간] 13. 아일랜드의 매력
슬픈 역사를 넘어 자연경관·펍 문화에 흠뻑 빠져
제임스 조이스가 1922년 발표한 소설 〈율리시스〉에는 “펍(Pub)을 피해서 더블린을 걷는다는 것은 마치 퍼즐게임을 벌이는 것 같다”는 묘사가 나온다. 더블린은 물론, 아일랜드의 어디를 가도 펍이 없는 곳은 거의 없다. 아일랜드인에게 펍은 생활의 일부다. 동네 사랑방 같은 곳이다. 음악가들이 자연스럽게 모여서 아이리시 전통음악을 연주하고, 한데 어울려서 춤을 추기도 한다. 이방인에게 말을 건네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맥주 한두 잔을 시켜 놓고, 안주 없이도 몇 시간씩 이야기를 나눈다.
덕분에 여행 내내 맥주를 입에 달고 지냈다. 더블린에선 흑맥주 ‘기네스’를, 골웨이에선 페일 에일 ‘골웨이 후커’를, 코크에선 또 다른 흑맥주 ‘머피’와 ‘비미시’를 주로 마셨다. 사람의 입맛이 얼마나 간사하던지 기네스 스토어하우스가 있는 더블린을 떠나자 그 맛있던 기네스도 로컬 맥주에 밀려 손이 잘 가지 않았다. 아일랜드 최고의 피시 앤 칩스를 맛본 골웨이의 ‘맥도나’ 식당을 처음 찾았을 때만 해도 뭘 몰라서 그 옆 바(Bar)에서 기네스를 주문해 마셨지만, 다시 간다면 포도 향이 강한 골웨이 후커를 주문할 것이다. 골웨이 후커라는 이름도 시민 공모전을 통해 탄생했다니, 과연 아이리시답다.
아일랜드를 여행하는 동안 두 가지에 흠뻑 취했다. 하나가 앞서 말한 펍 문화였고, 다른 하나는 날것 그대로의 자연이 보여준 매력이다. ‘해리포터’를 비롯해 수많은 영화, 드라마, 뮤직비디오의 배경이 된 ‘모허 절벽’을 찾아간 날은 한 치 앞을 분간할 수 없는 안개 때문에 속상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마치 커튼을 열어젖히듯 안개가 걷히는데, 안전장치 하나 없는 수백 미터 절벽이 바로 눈앞에서 펼쳐져 더 극적인 순간으로 남았다. 장장 182㎞에 달하는 ‘링 오브 케리’, 구불구불 해안도로를 따라서 광활한 대서양을 즐길 수 있는 ‘딩글 반도’를 자동차로 달리면서 숲과 호수의 나라 아일랜드 풍경을 만끽했다. 왜 아일랜드에 정령 신화가 많은지, 요정의 나라라고 하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그동안 본 아일랜드 영화를 떠올리면 내가 아일랜드를 바라보던 모습이 보인다. ‘나의 왼발’ ‘크라잉 게임’ ‘아버지의 이름으로’ ‘마이클 콜린스’ ‘블러디 선데이’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원스’ ‘프러포즈데이’…. 아일랜드의 역사나 인물을 다룬 경우가 많았다. ‘감자 대기근’이나 영국으로부터 분리 독립을 주장하던 아일랜드공화국군(IRA) 투쟁이 아일랜드의 전부인 양 착각했다. 여행이 꼭 배움이어야 할 이유는 없지만,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펍이라는 문화공간을 통해 아일랜드의 슬픈 역사를 조금은 넘어선 느낌이다. 하긴, 록밴드 U2와 뉴에이지 음악가 엔야의 고국이자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네 명이나 배출한 나라라는 사실도 결코 우연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김은영 논설위원 key66@
김은영 논설위원 key66@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