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당당하면 위안부 재판 나와라" 끝나지 않은 할머니들의 투쟁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위안부 할머니들이 3년 만에 열린 첫 재판에서 눈물을 흘리며 일본 정부에 일침을 가했다.
이용수(91) 할머니를 비롯한 위안부 생존 피해자 11명과 이미 숨진 피해자 6명의 유족은 2016년 일본 정부를 상대로 "1인당 2억원을 배상하라"고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가 소장 송달을 거부하면서 3년간 재판이 미뤄졌다.
결국 법원은 공시송달 절차를 진행해 이날 재판을 열었다. 공시송달은 소송 상대방의 주소를 알 수 없거나 서류를 받지 않고 재판에 불응하는 경우 법원 게시판이나 관보 등에 게재한 뒤 내용이 전달된 것으로 간주하고 재판을 진행하는 제도다.
3년 사이에 소송을 제기한 이들 중 생존한 피해자는 5명으로 줄었다.
이용수 할머니는 13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5부(유석동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손해배상 청구 소송의 첫 변론기일에 직접 출석해 무릎을 꿇고 "곱게 키워 준 부모님이 있는데, 군인에게 끌려가 전기 고문 등을 당하고 돌아왔다"며 "저희는 아무 죄도 없고, 일본에 죄가 있다"고 눈물을 흘렸다.
그러면서 "30년간, 90세가 넘도록 죽을 힘을 다해 일본 대사관 앞에서 외쳤다. 일본이 당당하다면 재판에 나와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할머니는 재판장을 향해 "저희를 살려달라. 진상 규명과 공식 사과를 외치고 재판을 하는데도 아무도 나오지 않는다. 저희는 너무 억울하다"며 결국 오열했다.
이날 첫 재판에는 원고 중 이용수, 길원옥(93) 할머니가 출석했다. 소송 원고에는 포함되지 않았으나 다른 소송을 제기한 이옥선(92) 할머니도 함께 법정을 찾았다.
이옥선 할머니도 발언 기회를 얻어 "나라가 잘못해 놓고 재판에 나오지도 않는다"며 "아베(일본 총리)가 나와야 한다"고 일갈했다.
이 할머니는 "할머니들이 다 죽기를 기다리는데, 역사가 남아 있기에 꼭 해결해야 한다"며 "법적 배상을 받게 해 달라"고 말했다.
피해자들의 법률 대리인은 "72년 전 침해된 인간 존엄성을 회복하기 위해, 국내·국제법상 일본의 책임을 분명히 하기 위해 소송을 냈다"며 "일제에 의해 인격이 부정된 피해자들에게 대한민국 헌법이 인권을 회복해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또 국제법과 관련한 한국·일본 양국 전문가를 증인으로 신청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재판부는 "국가면제(주권면제) 이론이라는 큰 장벽과 관련해 설득력 있는 방법을 마련해야 할 것 같다"며 "재판부가 잘 심리하겠다"고 밝혔다.
주권면제란 한 주권국가에 대해 다른 국가가 자국 국내법을 적용해 민·형사상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원칙이다.
재판부는 내년 2월 5일을 두 번째 변론기일로 정했다.
이날 재판에 앞서 이용수·길원옥·이옥선 할머니와 변호인단은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시작하는 이 자리는 수십 년간의 절실한 외침의 무게를 담고 있다"며 각오를 다졌다.
이상희 변호사는 소송 배경에 대해 앞서 일본에서 제기한 4차례 소송이 '국가는 책임지지 않는다'는 일본의 법리 때문에 결국 모두 패소했고, 2015년 한일 정부 간 합의 이후로는 배상 가능성이 더 줄었다고 판단해 한국에서 직접 권리투쟁에 나서게 됐다고 설명했다.
변호인단은 재판에 일본 정부는 출석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에 대해 "이 사건은 민사재판이기 때문에 당사자가 출석 안 해도 진행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pressjkk@busan.com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pressjkk@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