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호구생활④] 부산 횟집 ‘호구전쟁’

이승훈 기자 lee88@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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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구’(虎口). 이용당하기 썩 좋은 사람 또는 무모한 도전자. 호랑이 아가리에 머리를 집어넣는 자다.

게임 하다가, 혹은 현실 생활에서 한 번쯤은 들어봤을 터. 많이 무뎌졌지만, 여전히 누가 나를 호구라 하면 화가 치민다. ‘바보짓’을 한 데 대한 자책이다.

우리는 스스로 호구가 되기도 하지만, 알게 모르게 호구를 강요당한다. 돈, 사회, 직장 상사에 의해 알면서도 바보가 된다. 치열한 삶 속에서 꾹꾹 ‘속앓이’만 할 뿐이다.

‘슬기로운 호구생활’은 일종의 ‘화풀이 기사’다. 호구가 된 그들을 대신해 말한다.

“내가 니 호구가!”


■소문만 무성, ‘횟집 호갱’

요즘 경북에 계신 부모님의 ‘가출’이 잦다. 울릉도, 거제도, 통영, 포항 심지어 외국까지 틈만 나면 여행이다.

그런데 유독 ‘제1 관광도시’ 부산은 안 오신다. 아들에게 부담 주지 않으려는 미덕인가.

“뭐 비싸기만 하고 먹을 것도 없더만.”

여쭤보니 과거 좋지 않은 ‘호갱 기억’ 때문이란다.

3년 전 부산 대표 회센터에서 6인분 해산물을 사서 드셨는데, 포항은커녕 고향 동네 횟집보다 못했단다. 나도 그때 기억이 생생하다. 잘 아는 횟집을 알려줬지만, 굳이 유명 어시장을 가야겠다던….

“맛은 잘 모르겠고, 누가 봐도 그 값의 양은 아니었지. 얼마치 먹었는지 기억도 안 나. 하여튼 덤터기 썼다니까.”

부모님뿐 아니다. 10여 년간 부산에 살며 익히 들었던 부산 유명 회센터의 ‘호갱 썰’이다. 몰리는 타지 관광객에 ‘바가지’를 씌워 회를 판다는 소문이다.

중간에서 회를 몰래 덜어낸다느니, 바꿔치기한다느니, 저울을 조작했다느니….

인터넷에도 살벌한 경험담들이 올라온다. 부산 사람도 마찬가지. ‘슬호생’ 아이템 회의 때 한 선배가 “토박이는 거기 안 간다”며 당연한 듯 말했다.


■가격 전쟁

부산 유명 회센터 천장에 설치된 수산물 시세 전광판. 외화까지 완벽하다. 잠시나마 오해해 미안했다. 부산 유명 회센터 천장에 설치된 수산물 시세 전광판. 외화까지 완벽하다. 잠시나마 오해해 미안했다.

<부산일보> 기자로서 ‘부산 악평’은 기분이 썩 좋지 않다. 생선 시세도 모르고 하는 소리겠거니. 오명을 벗기 위해서라도 ‘호구생활 검증’이 시급했다.

우선 가격 비교다. 3년 전 부모님이 다녀간 A회센터를 찾았다. 둘째가라면 억울한 부산 대표 주자다.

가게를 돌며 kg당 활어 시세를 물었다. 광어, 우럭, 가숭어(경상도 방언으론 밀치)가 2만 원이다. 수족관 위에 떡하니 시세 전광판이 붙어 있다. 수십 군데를 둘러봐도 똑같다.

회센터에서는 안 깎으면 호갱이라고 들었다. ‘깎’에 악센트를 주며 나름 최대한 걸죽한 사투리 시전.

“조금 더 깎아주면 안 됩니꺼?”

“얼마치 살건데예?”

적어도 5만 원은 넘겨야 가격 흥정이 가능했다. 정확하게, 깎는 건 안 되고 회를 더 얹어 준단다.

한 마리 더 잡는다는 건지, 어떻게 더 주는지는 모르겠다. 아니면 개불이나 멍게 서비스. 괜히 3만 원어치로 떼쓰다가 “남는 것도 없다”며 혼만 났다.

A회센터와 ‘쌍벽’을 이루는 유명 B회센터도 kg당 가격이 같았다. 어디를 가든 똑같다더라. 역시나 ‘가격 덤핑’은 없나 보다.


■유명 vs 동네…‘복병’의 등장

부산 토박이의 맛집으로 알려진 동네 횟집 활어들. 상식을 뒤엎고 유명 회센터보다 3000~5000원 비쌌다. 니들은 우량종자냐? 부산 토박이의 맛집으로 알려진 동네 횟집 활어들. 상식을 뒤엎고 유명 회센터보다 3000~5000원 비쌌다. 니들은 우량종자냐?

‘뜬소문’에 고생했지만, 뿌듯했다. ‘가격 정찰제’가 안착했구나. 부산 토박이가 간다는 소규모 동네 횟집도 다르지 않으리.

그래도 동네 횟집 2곳을 더 가봤다. 이대로 끝나면, 기사에 쓸 내용도 별로 없다.

반전이다. 동네가 kg당 가격이 더 비싸다.

C횟집는 광어와 우럭이 2만 5000원, 밀치가 2만 3000원.

D횟집는 광어 2만 5000원, 우럭과 밀치가 2만 원이었다. 각 시장 안에서 가격은 다 엇비슷했다.

최소 5곳 점포 이상 돌아본 결과다. 분명 유명 회센터 대형 전광판에 나오는 시세와 달랐다.

앞서 뜬소문이 완전한 거짓 아닌가. 가격으로만 봤을 때, 오히려 유명 회센터를 추천해야 마땅했다. 유명 회센터가 싸게 파는 건지, 동네가 비싼 건지 도통 모르겠다. 혼란 속 C횟집 한 사장님의 결정타.

“유명 회센터나 여기나 다 (가격이) 똑같지. 거기 오르면 여기도 오르고 거기 내리면 여기도 내리고….” ‘멘붕’이다.


■반전의 반전

유명 회센터(왼쪽)와 동네 횟집에서 각각 3만 원어치 사 온 우럭+밀치 조합. 우럭은 한 눈에 봐도 양 차이가 확연하다. 유명 회센터(왼쪽)와 동네 횟집에서 각각 3만 원어치 사 온 우럭+밀치 조합. 우럭은 한 눈에 봐도 양 차이가 확연하다.

역시 ‘인생드라마’는 마지막이 ‘킬포인트’다. 가격은 확인했으니, 이제는 양이다. 비교를 위해 유명 회센터와 동네 횟집에서 각각 3만 원어치 회를 샀다. 우럭+밀치 조합이다.

사실 큰 의심은 없었다. 유명 회센터 상인들의 말이 너무 진심으로 들렸다.

“아이고, 요즘 그런 장난치면 10일 영업 정지 먹는데예.” “다음에 얼마나 더 사줄지도 모르는데 3만 원으로 장난치겠습니까.”

회를 써는 사람에 따라 다를 수는 있다며, 일부 소문을 인정하는 모습도 ‘쿨’했다. ‘회 문외한’인 나에게 “광어는 양식”이라고 솔직하게 알려주기도 했다.

그러나 반전의 반전. 유명 회센터에서 산 회의 양이 턱없이 적었다. 눈대중으로 봐도 1.5배 차이다. kg당 가격이 더 싼데 정반대 결과가 나온 셈이다. 특히 우럭은 성인 손바닥만큼 밖에 없어 보였다.

서비스도 달랐다. 유명 회센터와 달리 동네 횟집은 쌈장, 마늘, 고추, 깻잎, 상추를 추가로 얹어줬다.


동네 횟집에서 서비스로 준 야채+쌈장+초장+마늘+고추. 동네 횟집에서 서비스로 준 야채+쌈장+초장+마늘+고추.

정확한 무게를 알아야겠다. ‘다이소 저울’로 무게를 쟀다. 예상대로다. 유명 회센터 430g, 동네 횟집 620g. 유명 회센터가 30% 더 적다. 그중 우럭은 고작 130g이다.

상황을 전해 들은 회 전문가들도 “비상식적인 양”이라고 지적했다. 아무리 못해도 살점이 전체의 40%는 나와야 한다더라. 대가리가 큰 생선이라도 1.5kg이면 600g 내외가 돼야 한다. 돌아보니, 회를 살 때 저울에 재는 행위도 없었다.


■맛은 주관적…결국 양이 ‘호갱’ 좌우

초장에 찍지 않고 우럭회 한 젓가락 뜨는 팀장. 초장에 찍지 않고 우럭회 한 젓가락 뜨는 팀장.

맛은 어떨까. <부산일보> 공식 ‘강태공’ 부·팀장님들을 모셨다. 젊은 입맛의 소유자들도 불렀다. 역시 전문가는 달랐다. 초장도 없이 비린 맛을 즐겼다. 한 점 한 뒤에는 물로 입을 헹구는 ‘스웩’까지….

“약간 물기가 있어 무르다.” “도마향이 올라온다.” “첫맛과 끝이 다르다.”

블라인드 테스트 결과, 우열을 가리기 어려웠다. 비교적 7 대 3으로 유명 회센터가 선방했다. 유명 회센터의 회는 2~3시간 먼저 샀는데도 “신선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확실한 건 이구동성으로 “맛이 엇비슷하다”는 것이다.


■호객 전쟁

“삼촌~몇 명인데?” “포장할 거가, 먹고 갈 거가?”

회센터의 호객 행위는 유명 회센터건 동네건 여전하다. 매일 수십 명의 고객을 만나 다져진 ‘호객 노하우’는 차원이 달랐다.

일단 회센터에 들어가는 순간, 일제히 눈빛이 집중돼 주눅 든다. 외운 듯이 줄줄 나오는 멘트에 나도 모르게 빨려든다. 과하지만 않으면, 자유로운 경제 활동 중 하나라고 본다.

그러나 과한 포인트가 분명 몇몇 있었다는 게 문제다. 가격만 물어봤을 뿐인데 이미 빨간 바구니를 들고나와 활어를 꺼내 담았다. 이후 계속되는 속사포 설명. 활어를 버리고 갈 수 없는 지경이 금세 찾아왔다. 활어도 잠시 팔딱거리다 얌전히 입만 뻥긋댔다.

한 유명 회센터는 30m 밖에 서 있었는데도 ‘원거리 호객행위’를 이어갔다. 10여 명의 상인이 양손을 크게 휘저으며 유혹했다. 들어가기 꺼려질 뿐 아니라, 그쪽을 쳐다보기도 어려웠다.


■부끄러운 민낯

유튜브에 올라온 부산 회센터 관련 영상들. 유튜브 캡처 유튜브에 올라온 부산 회센터 관련 영상들. 유튜브 캡처

“번쩍대는 금목걸이를 차고! 안경은 벗고! 눈은 찡그리고! 아지매들이 치고 들어오면 그때 딱 사투리. ‘내 여기 단골인데 아지매 처음 보는데~’ ‘에이~광어나 우럭은 안 묵지’ ‘키로에 얼만교’”

인터넷에 떠도는 부산 유명 횟집에서 ‘호갱 안되는 법’ 중 하나다.

사실 유명 회센터라는 이유로 ‘호갱’이 된다는 것은 섣부른 판단이다. 가게마다, 사장님의 양심에 따라 다르다. 회 써는 기술에 따라 양 차이가 조금 날 수 있다. 생선마다 살점 양도 제각각일 터. 회센터 내 가게 중 단 1%만이 문제를 일으킬지도 모른다.

어쨌건 호구생활 결과 ‘부끄러운 민낯’은 존재했다. 유명 회센터가 임대료나 자릿세가 더 나와서 그렇다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럼 kg당 가격부터 더 비싸야 정상이다.

부산을 대표하는 ‘횟집’이, ‘수산업’이 조롱거리가 된 건 가슴 아픈 일이다. 부산 할머니들은 회를 살 때 바로 옆에서 끝까지 지켜본다고 한다. 저울 달 때는 바구니 무게까지 집요하게 물어볼 정도다.

상인 양심에만 맡겨진 현실은 앞으로도 뜬소문을 낳을 것이다. ‘방법이 없다’가 아닌, 시장 상인회이건 지자체건 꾸준히 대책을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전국 대표 부산 회센터가 더는 매도 당하지 않기를 바란다.

이승훈 기자 lee88@busan.com


P.S. 슬기로운 호구생활을 응원해주시는 독자분들께 항상 감사드립니다. 호구생활을 하기 바라는 아이템이 있다면 lee88@busan.com이나 댓글로 남겨주세요.^^


이승훈 기자 lee88@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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