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호구생활⑤] 일주일 후…9만 원이 굴러들어 왔다

이승훈 기자 lee88@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호구’(虎口). 이용당하기 썩 좋은 사람 또는 무모한 도전자. 호랑이 아가리에 머리를 집어넣는 자다.

현실 생활에서 한 번쯤은 들어봤을 터. 많이 무뎌졌지만, 여전히 호구라 불리면 화가 치민다. ‘바보짓’을 한 데 대한 자책이다.

우리는 스스로 호구가 되기도 하지만, 알게 모르게 호구를 강요당한다. 돈, 사회, 권력에 의해 알면서 바보가 된다. 꾹꾹 ‘속앓이’만 할 뿐.

‘슬기로운 호구생활’은 일종의 ‘화풀이 기사’다. 호구가 된 그들을 대신해 말한다.

“내가 니 호구가!”


■강렬했던 ‘그 놈’

“그거 안 쓰면 호구라 카던데?”

최근 회사 앞 카페에서 아메리카노를 기다리던 중 옆 손님의 대화. ‘호구’라는 단어에 나도 모르게 움찔했다. 슬쩍 귀를 기울이니 ‘동백전’ 이야기다. ‘나랏돈’으로 10% 캐시백 해주는 체크카드가 나왔다는 거다.

별 감흥이 없었다. 캐시백 소리에 월급계좌를 폭격하고 있는 ‘신용카드 할부금’만 떠올랐다. 10%도 분명 ‘눈 가리고 아웅’일 테다. 매달 30만 원을 써야 한다느니, 비싼 연회비를 내라느니….

며칠 후 ‘그 놈’을 대면했다. 부산시청 내 카페에서 모임 중 지인이 ‘동백전’을 꺼내 들었다. 흰 바탕에 알록달록 색상의 무늬가 작게 박힌 체크카드다. ‘발급 기념 커피를 쏘겠다’길래 굳이 말리지 않았다.

동백전 실물. 동백전 실물.

지인은 결제 후 자랑스럽게 스마트폰 화면을 들이댔다. 실시간 캐시백이 1250원! 그리고 ‘동백전 이야기’를 늘어놨다.

충격이었다. 아무 조건 없이 ‘세금’으로 10% 캐시백 해준다고. 편의점, 주유소, 미용실 다 된다더라. 월 100만 원 한도. 실시간으로 입금되니, ‘현장 할인’과 똑같았다.

만 원이면 1000원, 10만 원이면 만 원, 100만 원이면 10만 원 할인 아닌가….

‘슬기로운 호구생활’ 5탄은 부산 지역화폐 ‘동백전’이다. 소문난 혜택이 진짜인지. 안 쓰는 시민이 ‘진짜 호구’인지 검증하겠다.


■오락가락 카드 신청…“뭐 할 만하다”

1월 14일. 시간이 없었다. 캐시백 10%는 1월까지만 예정됐었다. 그 이후부터는 6%. (취재 막바지이던 30일, 2월말까지 캐시백 10% 연장이 전격 결정됐다!)

곧장 동백전 앱을 깔고 카드를 신청했다.

운전면허증 기입란에서 지역 번호가 뭔지 몰라 3~4번 오류가 떴다. 결제내역 알림서비스도 ‘건당 5만 원 이상 무료’ 등의 문구가 이해되지 않아 헤맸다. 추천인 입력도 오리무중. 확인해 보니, 추천인은 은행에서 현장 발급 시 상담 직원을 말하는 거였다.

동백전 카드 신청 모습. ‘결제내역 알림서비스’에서 한동안 막혔다. 바로 옆 ‘?’를 눌러봐도 ???. 동백전 카드 신청 모습. ‘결제내역 알림서비스’에서 한동안 막혔다. 바로 옆 ‘?’를 눌러봐도 ???.

약 10분 만에 카드 신청을 완료했다. 연결 계좌는 용돈용 국민은행 통장이다. 후불 교통카드 기능도 탑재했다.

개인적으로 카드 신청 절차가 복잡하다고 느끼진 않았다. 다른 계정 개설 때도 꼼꼼하게 보는 성격이 아니긴 하다. 다만 민감한 금융 카드니, 이 정도 확인 절차는 있어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모바일뱅킹을 쓰지 않는 사람은 막막하다. 계좌 본인 확인 절차에 하세월. 한 회사 선배는 카드 발급에 수 시간이 걸렸단다.

카드 받기 전에도, 잔액 충전은 가능했다. 5000원권, 1만 원권, 5만 원권, 10만 원권, 20만 원권, 30만 원권, 50만 원권을 충전할 수 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지문 인식 충전’. 엄지손가락을 대는 순간 한방에 OK. 충전을 할까 말까 고민하다 슬쩍 터치했는데 곧바로 만 원이 들어왔다. 스마트폰 홈화면을 여는 것보다 빠르다.


■놀라운 ‘앱테크’…일주일에 9만 원 환급

4일 만에 도착한 동백전 카드. 4일 만에 도착한 동백전 카드.

4일 만에 카드를 받았다. 15일 오전 9시에 신청해 18일 오후 8시쯤 집에 도착했다.

첫 사용은 지난 20일. 당장 쓰려 해도 쓸 데가 없었다. 부·팀장을 포함한 착한 선배들이 식사와 커피를 제공했다.

최초 결제는 부산 동구의 한 카페다. 돈 쓰는 게 이토록 기대되기는 처음이다. 3인용 커피+빵 콤보에 1만 6500원을 결제했다.

두둥.

1초도 되지 않아 정확히 1650원이 입금됐다.

이후 숨겨진 소비 본능이 깨어났다. 캐시백을 보니 뭔가 더 쓰고 싶었다. 송정 고깃집, 집 앞 아이스크림 전문점, 부산시청 주차장, 대연동 주유소….

3일 만에 18만 9220원을 썼다. 캐시백도 그랬지만, 주유소와 편의점이 된다는 게 ‘신세계’였다.

일주일 후. 무자비한 ‘카드 긁기’로 91만 원을 썼다. 캐시백은 9만 1000여 원이 쌓였다.

쓸 데 없는 데 돈 쓰진 않았다. 어차피 사야 할 것들이다. 그토록 바라던 카시트와 아기띠 등 육아용품 60만 원치를 한 방에 사들였다. 1월 10% 혜택을 받으려면 어쩔 수 없었다. 사고 나니 2월까지 혜택 연장 소식이 들렸다.


해운대구 한 매장에서 육아템을 대거 사들였다. 캐시백 금액만 6~7만 원. 사진의 카시트는 비싸서 안 샀다. 해운대구 한 매장에서 육아템을 대거 사들였다. 캐시백 금액만 6~7만 원. 사진의 카시트는 비싸서 안 샀다.

동백전의 부작용도 있다. 모임에서 뜬금없이 ‘대표 결제자’가 됐다. “니 카드로 일단 결제해서 10% 할인받자’는 식이다. 나중에 ‘n 분의 1’을 준다는 말을 믿지 않았지만, 거부할 논리가 없었다. 속만 좁아 보일 뿐이다.

캐시백은 앱에서 ‘on’ 체크를 해야 쓰인다. 샤부샤부 식당에서 무작정 캐시백으로 결제해 달라고 요구했다가 보기 좋게 튕겼다.

on 체크를 해두니 충전 금액이 있어도 캐시백부터 빠졌다. 캐시백은 써봤자 또 캐시백이 안 된다. 다시 ‘off’ 해야 한다.


■상호에 속았다

동백전 앱의 ‘가맹점 찾기’. 위치 기반 설정에 ‘부산일보’도 보였다. 그러나 신문 구독은 동백전 결제가 안 된다. 가맹점 찾기에 나오는 18만여 곳이 모두 적용되지는 않는다고. 그래도 ‘부산일보 구독’은 사랑입니다♡ 동백전 앱의 ‘가맹점 찾기’. 위치 기반 설정에 ‘부산일보’도 보였다. 그러나 신문 구독은 동백전 결제가 안 된다. 가맹점 찾기에 나오는 18만여 곳이 모두 적용되지는 않는다고. 그래도 ‘부산일보 구독’은 사랑입니다♡

카드 쓸 때마다 ‘결제 데스크’에서는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동백전 가맹점인지 모르니 일단 카드를 내고 봤다. 처음 보는 카드 생김새에 종업원도 슬쩍 쳐다봤다. 결제 오류가 떴을 때의 ‘눈 마주침’이 꽤 어색했다.

가맹점은 동백전 앱의 ‘가맹점 찾기’에서 찾을 수 있다. 위치 기반으로 주변 가맹점을 한눈에 볼 수 있다. 그러나 매번 들여다보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실제 상호와 가맹점으로 등록된 이름이 달라 헤매기도 했다.

설 대체 공휴일인 27일. 부산 ‘베이비플러스 부산점’에서 굵직한 육아템들을 사려 했다. 당연히 10% 캐시백을 노렸다.

그러나 가맹점 찾기에 검색되지 않았다. ‘베이비’ ‘baby’ ‘plus’ ‘플러스’ 온갖 단어들을 찾아도 없었다. 수도권 업체여서 안 되는 건가…. 동백전 고객센터 ‘1577-1432’는 공휴일이라 먹통이다.

포기할 수 없어 매장에 전화를 걸었다.

“아 그거(동백전) 결제가 되긴 되던데요.”

희소식이다. 마감 한 시간 전 도착해 60만 원어치를 긁었다. 10% 캐시백도 받았다.

가맹점에 등록되지 않은 이유가 궁금했다. 집에 도착해 포장지를 뜯는데 영수증이 눈에 띄었다. 거기에 적힌 상호는 ‘아이빅토이’. 가맹점 찾기에도 떡하니 ‘아이빅토이’가 나와 있었다.


■어디까지 되나?

일주일간 동백전이 안 되는 곳도 많았다. 송정 할리스, 해운대해수욕장 스타벅스, 동래 맥드라이브 등은 결제 오류가 떴다.

부산시가 발행한 동백전은 ‘골목경제 활성화’가 목표다. 지역 내에서 돈이 돌고 돌게 하겠다는 거다. 백화점, 기업형 슈퍼마켓, 프랜차이즈 직영점, 온라인 가맹점은 사용이 안 된단다.

그럼 지역 업체인 ‘탑마트’는 되나? ‘에어부산’은? 너무 어렵다.

‘동백전 전문가’ 부산시 소상공인지원과 김태우 주무관의 명쾌한 답변. 더 궁금한 것은 고객센터 1577-1432에서 친절히 알려준다. 각 매장 상황에 따라 표 내용과 다를 수는 있다. 그래픽=성규환 부산닷컴 기자 bastion@ ‘동백전 전문가’ 부산시 소상공인지원과 김태우 주무관의 명쾌한 답변. 더 궁금한 것은 고객센터 1577-1432에서 친절히 알려준다. 각 매장 상황에 따라 표 내용과 다를 수는 있다. 그래픽=성규환 부산닷컴 기자 bastion@

■궁금증 풀이

궁금한 점이 한두 개가 아니다. 주변에서 알아봐달라는 질문들이 쇄도했다. ‘슬기로운 호구생활’의 막중한 책임감. Q&A로 정리했다.


1) 한도는?

매월 충전 및 캐시백 한도는 100만 원이다. 이월 충전금액을 포함해 보유할 수 있는 한도는 200만 원이다.


2) 동백전 잔액 없을 때 자동 충전되나?

2월에 가능하도록 개발 중이다. 지금은 잔액이 없어도 결제는 된다. 동백전이 아닌 연결된 계좌에서 빠져나가는 거다. 캐시백은 안 된다.


3) 백화점에서는 결제 자체가 안 되나?

캐시백도 안 되고 결제도 막혀 있다.


4) 부부가 각각 100만 원씩 캐시백 받을 수 있나?

가능하다. 부부라고 해서 별다른 제한은 없다.


5) 소득공제 되나?

체크카드와 동일하게 혜택받는다.


6) 삼성페이 되나?

LG 페이도 된다. 아이폰 애플페이는 국내 미적용으로 안 된다.


7) 신규 오픈 매장은 ‘가맹점 찾기’에 자동 업데이트되나?

된다. 다만 실제 반영에는 하루 정도 시차가 발생할 수 있다.


8) 부산 동구 ‘이바구 페이’와 차이는?

이바구 페이는 충전할 때 인센티브가 들어온다. 동백전은 결제할 때 들어오는 방식. 또 이바구 페이는 선불카드다. 한도는 월 40만 원. 동백전과 동시에 쓸 수 있다.


9) 잔액은 환급되나?

충전 금액의 60% 이상 쓰면 환급해 준다. 동백전 앱 게시판에 환급을 요청해야 한다.


■배제된 시민들…홍보 절실

혜택이 빵빵하지만, 이를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다. 지인 20명에게 물어보니 단 5명 만이 동백전을 알았다. 그것도 캐시백 혜택까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단 두 명. 공공기관에 다니는 친구다 보니, 나름 돈 버는 정보가 빠삭했다.

뒤늦게 안 부동산 중개업소 한 소장님은 거침없이 불만을 쏟아냈다.

“그렇게 좋은 게 있으면 진작 알려야지. 1월 벌써 다 지나갔구만!!(취재 당시에는 1월까지만 10% 캐시백이었다) 세금으로 하는 건데 이렇게 몰래 해도 되는 겁니까. ‘동네 정보통’인 내가 모르면 거의 다 모른다고 봐야지.”

동백전을 뒤늦게 알고 아쉬워하는 동생. 동백전을 뒤늦게 알고 아쉬워하는 동생.

이번 체험으로 보완점들도 여럿 확인됐다.

실제 상호가 ‘가맹점 찾기’에 등록된 것과 다른 것은 하루빨리 고쳐야 한다. 일일이 매장에 전화해 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상인조차 아직 동백전을 모르기도 했다.

카드 사용이 많은 휴일이나 주말에 고객센터가 쉬는 것도 아쉬웠다. 평일에도 한 때 고객센터에 전화 걸었지만, 문의가 많은지 대기만 하다 실패했다.


■지역화폐 열풍…신중의 신중 기해야

전국적으로 지역화폐 붐이다. 160~170곳의 지자체가 쓰고 있다고 한다. 인천은 지난해 1조 5000억 원의 ‘인천 e음’ 화폐를 발행했다. 군산시의 ‘군산사랑상품권’도 지난해 4000억 원 완판. 포항시 ‘포항사랑상품권’도 3년간 4000억 원이 쓰였다.

부산시는 이제 걸음마 단계다. 최근 발행액이 100억 원이 넘어서며 고공행진이다.

29일 기준 캐시백이 9만 2894원까지 쌓였다. 다음 날 캐시백으로 ‘만땅 기름’을 채웠다. 29일 기준 캐시백이 9만 2894원까지 쌓였다. 다음 날 캐시백으로 ‘만땅 기름’을 채웠다.

동백전. 일주일 써 보니, 마음에 든다. 연회비도 없고, 신용카드보다도 캐시백 조건이 좋다. 타 지역화폐에 혜택이나 한도가 뒤지지 않는다. 충전이나 사용도 그렇게 어렵지 않다. 불필요한 소비를 하고 싶을 정도다.

그러나 ‘상인도 잘 모르는 화폐’의 갈 길은 멀어 보였다. 조급하게 시행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잘나가는 타 지역의 화폐는 상인들이 ‘자발적 캐시백 혜택’을 준다고 한다. 지자체+상인이 합해 10% 내외의 혜택을 주는 셈이다. 세금도 아끼고 지역 경기도 살리는 ‘일석이조’다. 그만큼 지역 화폐가 인정받고 있다는 얘기다.

뒤질 것 없는 동백전도 진가를 알려야 한다. 인정 받을 가치는 충분해 보인다. 다만 값비싼 홍보나 캐시백 확대만 고집해서는 곤란하다. 고민하고 고민해야 한다. 결국 ‘시민 세금’이다.

이승훈 기자 lee88@busan.com


P.S. 슬기로운 호구생활을 응원해주시는 독자분들께 항상 감사드립니다. 호구생활을 하기 바라는 아이템이 있다면 lee88@busan.com이나 댓글로 남겨주세요.^^


이승훈 기자 lee88@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

    실시간 핫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