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호구생활⑥] 신종 코로나 공포…“변기·ATM 으악!”

이승훈 기자 lee88@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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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구’(虎口). 이용당하기 썩 좋은 사람 또는 무모한 도전자. 호랑이 아가리에 머리를 집어넣는 자다.

게임 하다가, 혹은 현실 생활에서 한 번쯤은 들어봤을 터. 많이 무뎌졌지만, 여전히 누가 나를 호구라 하면 화가 치민다. ‘바보짓’을 한 데 대한 자책이다.

우리는 스스로 호구가 되기도 하지만, 알게 모르게 호구를 강요당한다. 돈, 사회, 직장 상사에 의해 알면서도 바보가 된다. 치열한 삶 속에서 꾹꾹 ‘속앓이’만 할 뿐이다.

‘슬기로운 호구생활’은 일종의 ‘화풀이 기사’다. 호구가 된 그들을 대신해 말한다.

“내가 니 호구가!”


■신종 코로나 습격…‘호구’가 간다

세상이 떨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신종 코로나)이 이토록 셀 줄이야…. TV, 유튜브, 신문 온통 그 얘기다.

나도 떨고 있다. 후벼파는 듯한 귀 통증에도 마스크를 꼭 쓴다. 성인 손보다 큰 소독제도 들고 다닌다. 아파트 엘리베이터 버튼은 와이프 지시대로 손가락을 구부린 채 뼈마디로 누른다. 매일 밤 가던 산책도 자제한다. 과도해 보여도 어쩔 수 없다. 와이프 출산이 3주 남았다.

군 복무 중에 유행한 ‘신종 플루’ 때는 몰랐다. 감염병들이 이렇게 쉽게 전염될 줄은.

그때는 감염 여부에 상관없이 휴가나 외출을 다녀오면 무조건 격리였다. 철없이 휴가 복귀 후 격리되는 걸 즐겼다. 후임이 알아서 ‘짬밥’을 가져다 주고 치워줘 이보다 편할 수 없었다. 몰래 PX 가려고 시도하고, 격리되지 않은 선임과 놀기도 했다. 매우 위험한 짓이었다.

전문가는 감염병이 간접 접촉으로도 감염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문 손잡이, 엘리베이터, 변기 등 평소 별생각 없이 만지는 것들도 그렇단다. 따라서 이 시국에는 철저한 소독이 필요하다고. 사람이 몰리는 지하철, 마트, 백화점 등은 더 그렇다. 이에 여기저기서 소독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의심을 지울 수 없다. 기분 탓인지 함께 쓰는 시설물을 만지기만 해도 찝찝~하다. 얼마나 소독이 돼 있는지 직접 확인해 보고 싶다. ‘날벼락’처럼 느닷없이 감염되는 ‘호구’가 되지 않도록….


■“너로 정했다”…8곳 측정

사람들이 가장 많이 접촉하는 곳은 어디일까. 8곳을 정했다.

ATM, 변기 레버, 지하철 손잡이, 버스 손잡이, 에스컬레이터 핸드레일, 엘리베이터 버튼, 스마트폰, 키보드+마우스다.

상가 자동문 스위치, 차량 핸들, 사무실 전화기 등 사실 측정할 곳이 끝도 없다. 그러나 어렵게 구한 값비싼 측정 키트가 15개밖에 없다.


4년 째 쉼없이 두드린 키보드. ㄴ, ㅇ, ㄹ 등 자주 누른 버튼 글자가 사라진 지 오래다. 마우스와 함께 ATP 수치가 39만에 달했다. 청소해주지 못한 미안함과 왠지 모를 배신감…. 4년 째 쉼없이 두드린 키보드. ㄴ, ㅇ, ㄹ 등 자주 누른 버튼 글자가 사라진 지 오래다. 마우스와 함께 ATP 수치가 39만에 달했다. 청소해주지 못한 미안함과 왠지 모를 배신감….

변기 레버는 사람들이 많이 쓰는 지하철 화장실의 것이다. 에스컬레이터, 엘리베이터는 국외 관광객이 몰리는 부산의 한 백화점에서 측정했다. 지금 시기에 이 장소에 가는 것 자체가 사실 ‘호구짓’이다. 팀장님, PD님과 출발 전 마스크와 세정제로 철저히 무장했다.

스마트폰과 키보드+마우스는 ‘내 것’이다. 입사 후 키보드+마우스는 매일같이 두드려 헤질 대로 헤졌다.

검사는 ATP 측정기를 썼다. ATP(Adenosine Triphosphate)는 모든 살아 있는 세포의 에너지원이다. ATP 농도가 클수록 세균을 포함해 살아 있는 세포가 많다는 얘기다. 다시 말해, 상대적으로 소독이나 관리가 안 돼 ‘유기물 오염도’가 높다는 뜻이다. 다만 ATP 측정값이 모든 살아 있는 세포를 나타내므로, 세균이나 바이러스 수와 반드시 정비례하지 않는다.


■기록 경신 또 경신…불명예 1위는?

가장 먼저 내 스마트폰의 ‘유기물 오염도’를 확인했다. 지난해 2월 최신 폰으로 바꾼 뒤, 한 대여섯 번 청소한 것 같다. 소독제를 쓰지도 않았다. 뭐가 묻으면 물티슈로 이리저리 닦고, 마른 휴지로 마무리했다.

예상대로다. ATP 농도가 8만 2304RLU다. 만지는 것과 먹는 것의 절대적인 비교는 어렵지만, 식중독 검사 때 조리도구 허용 기준치가 200~500RLU란다.

두 번째는 변기 레버다. 회사 앞 지하철 화장실에서 측정한 결과 무려 15만 5632RLU가 나왔다.

이어 백화점 가는 길에 지하철 손잡이를 쟀다. 주로 서 있는 사람들이 습관적으로 잡는 출입문 옆 봉이다. 수치는 4만 5115RLU.

ATP를 책정한 부산 지하철과 버스 손잡이. 측정 내내 승객들 눈초리가 예사롭지 않았다. 참고로 측정 키트는 문질러도 인체에 무해하다. ATP를 책정한 부산 지하철과 버스 손잡이. 측정 내내 승객들 눈초리가 예사롭지 않았다. 참고로 측정 키트는 문질러도 인체에 무해하다.

백화점에 도착해 가장 먼저 입구 앞 ATM 기기를 검사했다. 지하철과 연결된 통로에 있어, 사람에 눈에 잘 띄는 ATM이다. 언뜻 봐도 무지 더러워 보였다. 오른쪽 플라스틱 숫자 버튼은 까맣게 물든 상태. 신기록 경신이 예상됐다.

불길한 예감은 늘 틀리지 않았다. 터치 스크린과 오른쪽 숫자 버튼을 함께 잰 결과 40만 4880RLU이 나왔다.

놀라기 이르다. 복병이 나타났다. 백화점 내 엘리베이터 ↑ ↓ 버튼이다. 많은 사람이 누르지만 사실상 청소하기 까다로운 곳이다. 측정 결과 무려 66만 3359RLU이다!


엘리베이터 ↑ ↓ 버튼 ATP 측정값. 66만 RLU가 넘어 신기록 경신이다. 엘리베이터 ↑ ↓ 버튼 ATP 측정값. 66만 RLU가 넘어 신기록 경신이다.

최솟값은 에스컬레이터 핸드레일이다. 4만 2426RLU. 그나마 자주 청소하는 곳이다. 이날 측정 때도 청소 아주머니께서 반대편 핸드레일을 닦고 계셨다. 이외 버스 손잡이는 12만 1005RLU, 키보드+마우스는 39만 5813RLU가 나왔다.

이날 모든 곳을 돌아본 후 마지막으로 내 손의 ATP를 쟀다. 결국 모든 감염이 여기서부터 시작됐으리. 결과는 7만 7RLU다.


■소독하자마자 93% 증발

신종 코로나로 비상이 걸린 가운데 나온 수치라 더 충격적이다. 평소에는 더 소독이 안 됐을 터.

이날 소독 후 ATP도 측정해봤다. 가까운 마트에서 살 수 있는 알코올 65%의 손세정제를 썼다. 그 결과 ATM은 40만 4880RLU→2만 8632RLU로 급감했다. 무려 93% 줄었다.

살균력 99.99%의 전문 소독제도 써봤다. ‘내 손’을 소독제에 씻어본 결과 ATP가 7만 7RLU→4707RLU로 급감했다. 이 소독제는 시간이 지날수록 살균 정도가 커진다. 스마트폰도 8만 2304RLU→2만 1935RLU로 줄었다.

‘내 손’을 포함해 9곳에서 측정한 ATP 값. 측정 면적 등이 달라 절대적인 비교는 어렵다. 그래픽=성규환 부산닷컴 기자 bastion@ ‘내 손’을 포함해 9곳에서 측정한 ATP 값. 측정 면적 등이 달라 절대적인 비교는 어렵다. 그래픽=성규환 부산닷컴 기자 bastion@

■곳곳에서 안전불감증

부실했던 시설물 소독. 그뿐만이 아니다. 지난 일주일을 지내면서 신종 코로나에 무방비로 노출된 상황을 곳곳에서 확인했다.

4일 접종 차 방문했던 해운대구 보건소. 입구에 세정제가 배치됐지만, 그냥 지나쳐도 별다른 제지가 없었다. 수납 직원 등은 마스크도 끼지 않은 상태. 전날 인터뷰 때문에 방문한 양산 부산대병원과 크게 비교됐다. 병원에서는 방문자 체온 검사뿐 아니라 강제로 손에 소독제를 뿌렸다. 방문자의 전화번호와 이름, 방문 목적도 기록하게 했다.

철저하게 소독·관리되고 있는 양산 부산대병원. 출입문을 일원화하고, 들어가고 나가는 문을 분리했다. 철저하게 소독·관리되고 있는 양산 부산대병원. 출입문을 일원화하고, 들어가고 나가는 문을 분리했다.

더불어 이날 보건소에는 무슨 일인지 피자가 대거 배달됐다. 외부 배달원이 아무렇지 않게 왔다 갔다 해도 제지가 없었다. 어떤 행사인지 몰라도 이 시국에 눈살을 찌푸리기 충분했다.

부산의 한 대형 아웃렛도 감염에 부실했다. 1시간 40분간 둘러봤지만, 세정제조차 찾기가 어려웠다. 지하 주차장 안내원 앞이나 각 매장에 간간이 놓여 있을 뿐이다. 신종 코로나 위험을 알리는 방송도 전혀 들리지 않았다. 앞서 ATP 측정을 위해 찾아간 백화점, 지하철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부산의 한 대형 아웃렛 영화관 로비에 있던 유일한 손 세정제. 위에 ‘카페 시럽’ 통을 세정제로 잘 못 보고 갔다가 발견했다. 부산의 한 대형 아웃렛 영화관 로비에 있던 유일한 손 세정제. 위에 ‘카페 시럽’ 통을 세정제로 잘 못 보고 갔다가 발견했다.
같은 아웃렛에서 사 먹은 간식. 해당 점포에 “손으로 먹어야 해 세정제 좀 달라”고 요청했으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같은 아웃렛에서 사 먹은 간식. 해당 점포에 “손으로 먹어야 해 세정제 좀 달라”고 요청했으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지금은 ‘전시 상황’

베스트셀러 <세상을 바꾼 12가지 질병>을 번역해 출간한 부산대 진단검사의학과 장철훈 교수. 장 교수는 신종 코로나 사태를 ‘감염병 전시 상황’으로 본다.

평소와는 다른 대응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평소에는 마스크 착용, 손 씻기를 강박적으로 할 필요가 없지만 지금은 다르다.

특히 개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노출을 삼가는 것. 열이 난다거나 기침이 나면 스스로 격리하는 선진 의식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한 증상이 없어도 외출을 최소화해야 한단다.

사회도 각성해야 한다. 개인에게만 책임을 떠넘겨서는 안 된다. 어떤 경로로 전염병이 돌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이번 ‘슬호생’ 결과, 언론에서 떠드는 만큼 우리 사회는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특히 ATP가 높다는 얘기는 결국 ‘소독의 부재’다. 그동안 방치한 관리 사각지대가 곳곳에서 노출됐다는 얘기다. 우리 사회도 이 사태에 대한 책임에서 절대 자유로울 수 없지 않을까.

이승훈 기자 lee88@busan.com


P.S. 슬기로운 호구생활을 응원해주시는 독자분들께 항상 감사드립니다. 호구생활을 하기 바라는 아이템이 있다면 lee88@busan.com이나 댓글로 남겨주세요.^^


이승훈 기자 lee88@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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