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호구생활⑨] ‘30초 수제 마스크 만들기’…이게 가능하다고?!

이승훈 기자 lee88@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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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구’(虎口). 이용당하기 썩 좋은 사람 또는 무모한 도전자. 호랑이 아가리에 머리를 집어넣는 자다.

게임 하다가, 혹은 현실 생활에서 한 번쯤은 들어봤을 터. 많이 무뎌졌지만, 여전히 누가 나를 호구라 하면 화가 치민다. ‘바보짓’을 한 데 대한 자책이다.

우리는 스스로 호구가 되기도 하지만, 알게 모르게 호구를 강요당한다. 돈, 사회, 직장 상사에 의해 알면서도 바보가 된다. 치열한 삶 속에서 꾹꾹 ‘속앓이’만 할 뿐이다.

‘슬기로운 호구생활’은 일종의 ‘화풀이 기사’다. 호구가 된 그들을 대신해 말한다.

“내가 니 호구가!”


■ 30초 마스크 만들기??

손재주가 아주 ‘꽝’이다. 학창 시절 예술 과목은 늘 ‘양 양 양’이다. 그러나 ‘양’의 능력이라도 써야 할 일이 생겼다. 바로 ‘마스크 만들기’다. 이제 막 태어난 내 아이를 ‘코로나19’로부터 지켜야 한다.

부산에 사흘째 확진자가 없다가, 4일 만인 11일 2명이 추가됐다. 이 중 한 명은 우리 구에 산다. 안심할 겨를도 없이 또 ‘초긴장’이다.

지금은 어딜 가나 ‘금스크(금+마스크) 구하기’ 전쟁이다. 초유의 ‘마스크 5부제’ 시행까지. 나도 출생연도 끝자리 ‘8’이 되돌아오기만 목놓아 기다린다. 막상 그날이 와도 오전 일찍 줄 서지 않으면 여전히 못 구한다. 11일 오후 5시께 집 주변 네 군데 약국에 갔지만 모두 허탕이다.

그런데 ‘마스크 대란’ 속 마스크를 손쉽게 구할 방법이 있다는 얘길 들었다. 유튜브에 30초, 3분, 5분, 10분 만에 ‘수제 마스크’를 만들 방법이 즐비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온갖 의구심이 드는 것은 나뿐일까. 이렇게 좋은 게 있다면, 굳이 구하러 다니지 않고 다들 만들어 쓰겠지…. 실제 효과가 있는지, 만들기가 쉬운지 검증해 봐야겠다. 코로나19와 아내 출산으로 잠시 미뤄진 ‘슬기로운 호구생활’ 다시 시작한다.


■ 재료

‘유튜브 전성시대’다. 영상 하나에 재료, 구입처 등 마스크 제작법의 1부터 100까지 다 알려준다. 어떤 영상은 재료가 진열된 코너 위치까지 직접 찾아가 알려줬다.

모든 재료는 ‘다이소’와 ‘편의점’에서 샀다. 일회용 행주, 포장용 빵끈, 정전기 청소포, 수예용 고무줄, 방충망 필터(양면테이프 동봉), 반창고만 있으면 된다.

다행히 집 앞에 대형 다이소가 있다. 그러나 ‘마스크 대란’ 속 과연 재료들이 남아 있을까 의문. 그러나 예상과 달리 재료들이 곳곳에 널렸다. 다이소답게 가격도 착하다. 모두 사니 대략 1만 5000원 수준. 이론상으로는 이 가격에 수백 장의 마스크를 만들 수 있다. 참고로 위의 재료뿐 아니라 손수건, 커피 필터 등도 대체해 쓸 수 있다.

수제 마스크를 만들 재료는 매장에 차고 넘쳤다. ‘다이소’에 쌓여 있는 재료들. 수제 마스크를 만들 재료는 매장에 차고 넘쳤다. ‘다이소’에 쌓여 있는 재료들.

재료 구매를 단 15분 만에 마쳤다. 오랜만에 내 손으로 무엇을 만든다는 생각에 은근히 기분이 들떴다. 이공계 출신이라 근거 없는 자신감도 생겼다. 한 50장 만들어 회사 선후배들 나눠줘야겠다는 상상도 했다.


■ 제작

시작부터 삐걱댔다. ‘일회용 행주’를 잘못 샀다. 정확히는 제대로 샀는데, 유튜브 것과 다르다. 일회용 행주가 여러 가지 종류가 있는 건지, 유튜브 방송이 잘못 알려준 건지 모르겠다.

‘별반 다르지 않겠지’라는 생각으로, 찜찜했지만 제작을 시작했다. 첫 도전은 ‘일회용 행주+정전기 청소포’로 만드는 마스크. 영상 제목에 따르면 3분이면 만들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방송 분량만 5분이 넘는 것을 볼 때, 불가능하다는 것을 직감했다. 내 손재주 능력을 생각해 보면, 최소 10분은 넘게 걸릴 듯 했다.

첫 제작 시간은 무려 20분 15초. 3분은커녕 10분도 훌쩍 넘었다. 이론상 어렵지 않았지만, 고무줄 묶기, 선 따라 테이프 붙이기 등 실제 꼼꼼하게 따져야 할 게 많았다. 작품 상태도 엉망진창이다. 고무줄이 너무 짧은 탓에 귀가 당겨 착용 후 15분을 견디지 못했다. 테이프가 너덜대면서 귀걸이 고무줄 양쪽 다 빠져버렸다.


처음 만들어 본 ‘일회용 행주+정전기 청소포’ 마스크. 바짝 당겨진 귀걸이 고무줄로 귀 겉살이 파이는 느낌이다. 오른쪽 사진은 15분 만에 마스크 고무줄이 빠진 모습. 불량이다. 처음 만들어 본 ‘일회용 행주+정전기 청소포’ 마스크. 바짝 당겨진 귀걸이 고무줄로 귀 겉살이 파이는 느낌이다. 오른쪽 사진은 15분 만에 마스크 고무줄이 빠진 모습. 불량이다.

포기는 없다. 두 번째 마스크 제작에는 15분 40초가 걸렸다. 고무줄 쪽에 테이프를 3번이나 덧대고, 10번 가까이 잘 붙도록 눌렀다. 짧았던 고무줄 길이도 10cm 늘였다.

다행히 고무줄은 끊어지지 않았지만, 뭔가 50% 부족한 모습이다. 외관상으로는 그럴듯했으나, 안쪽이 또 너덜댔다. 10cm 늘였지만, 귀는 여전히 아팠다. 가장 큰 문제는 사이즈. 내 입만 가릴 정도의 ‘유아용 마스크’다.

세 번째 작품은 12분 40초 만에 완성이다. 여전히 3분을 훌쩍 넘겼지만, 제작 순서를 어느 정도 외운 터라 점점 속도가 붙었다. 고무줄은 10cm 더 늘였으며, 행주 크기도 손의 직감을 믿고 더 키웠다.

그 결과 ‘최선의 마스크’가 나왔다. 귀도 덜 아프고 어느 정도 크기도 확보했다. 다만 입에 마스크가 들어갈 정도로 밀착돼 숨이 금방 거칠어졌다.

다음 마스크는 다른 재료인 ‘방충망용 필터’로 만들었다. 이번엔 무려 ‘30초’ 만에 만들 수 있다는 ‘초간단 영상’을 참고했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방송 분량만 10분이 넘었다.

첫 방충망용 필터 마스크를 만드는 데 23분 51초가 걸렸다. 지금까지 ‘최장 시간’이다. 앞선 영상보다 과정이 복잡할뿐더러, 줄자나 양면테이프까지 필요했다. 크기는 적당했으나, 아쉽게도 마감이 엉망이다. 그러나 상품의 질은 ‘일회용 행주+정전기 청소포’의 것보다 우수했다. 2겹 두께로 필터가 만들어지는 등 두툼하고 단단했다.


제작 시간만 2시간 넘었던 ‘수제 마스크들’. 윗줄 3개는 방충망용 필터로, 아래 3개는 일회용 행주+정전기 청소포로 만들었다. 왼쪽 하단의 것은 불량품으로, 착용 15분 만에 오른쪽 귀걸이 고무줄이 날아갔다. 제작 시간만 2시간 넘었던 ‘수제 마스크들’. 윗줄 3개는 방충망용 필터로, 아래 3개는 일회용 행주+정전기 청소포로 만들었다. 왼쪽 하단의 것은 불량품으로, 착용 15분 만에 오른쪽 귀걸이 고무줄이 날아갔다.

방충망용 필터 마스크 두 번째는 19분 23초가 걸려 만들었다. 풀어지는 느낌도 없이 각이 잘 잡혔다. 다만 양쪽 귀에 거는 고무줄 크기가 다른 느낌이다.

마지막 세 번째 작품은 심혈을 기울였다. 15분 32초 걸려 완성했다. 그럴듯한 외관에 아내도 “마치 시중에 파는 것 같다”며 칭찬 세례. 그러나 ‘방충망’ 단어에 왠지 찝찝하다며 착용은 거부했다.


■ 착용

다음 날 마지막에 만든 마스크를 쓰고 오전 일과를 소화했다. 얼굴이 땅긴다거나, 숨쉬기가 어렵다는 등의 불편은 없었다. 보들보들한 착용감도 나쁘지 않아, 한 번도 마스크를 벗지 않았다.

문제는 ‘마스크 효과’다. 실제 얼마나 비말 감염을 막아줄지 의심이 들었다. 마스크를 끼고 있었지만, 취재원을 만나거나 사람들과 마주친 뒤 괜히 기분이 찝찝했다. 나나 상대방이 말할 때는 책이나 수첩 등으로 호흡기를 한 번 더 막고 싶은 심정이다.

세 번째로 만든 '방충망 필터' 마스크. 얼굴과 마스크 사이가 약간 벌어져 바람이 들어왔지만, 착용은 크게 불편하지 않았다. 세 번째로 만든 '방충망 필터' 마스크. 얼굴과 마스크 사이가 약간 벌어져 바람이 들어왔지만, 착용은 크게 불편하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도 ‘이상함’을 눈치챘다. “보지 못하던 마스크네요?” “제 것과는 아주 다르네요”라며 마스크 출처를 물었다. 직접 제작했다는 말에 “멋있다” “대단하다” 등 칭찬은 했지만, 만드는 방법을 묻는다는 등의 관심은 없었다. 나처럼 만들지 않겠다는 얘기다.


■ 실효성 있나

교수, 지자체, 보건환경연구원 등 여기저기 물었지만, 수제 마스크의 효과를 명확히 들을 수 없었다. 각 마스크에 대해 분진 포집효율, 안면부 흡기 저항 등의 테스트를 해보지 않고서는 효과를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다만 해당 제품들이 먼지를 차단할 정전기를 일부 일으키기 때문에 어느 정도 효과는 있을 것으로 봤다.

실제 최근 한 방송사 프로그램에서 테스트한 결과, 빨아 쓰는 행주로 만든 ‘3겹 마스크’의 먼지 차단 효율성은 80.5%로 KF80 마스크(97.8%)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수제 필터면마스크도 80~95%의 분진 차단 효과를 보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튜브에서 ‘마스크 만들기’ 키워드 검색 결과. 대부분 인체 무해, 가성비 좋은 마스크로 소개되고 있다. 유튜브 캡처화면. 유튜브에서 ‘마스크 만들기’ 키워드 검색 결과. 대부분 인체 무해, 가성비 좋은 마스크로 소개되고 있다. 유튜브 캡처화면.

수제 마스크 제작이 현 사태의 좋은 대안이 될 수 있을까. 긴 제작 시간은 어느 정도 숙달되면 충분히 단축될 수 있다. 재료 구하기도 쉽다.

그러나 문제는 ‘불신’이다. 개인방송을 통해 검증되지 않은 콘텐츠가 쏟아졌다. 재료만 수십 개에 같은 재료로도 제작 과정이 제각각이다.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몰랐다.

코로나19로 인해 정부 지자체, 의료진 모두 비상이다. 사태 해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혹 여유가 된다면 일상 속 ‘수제 마스크’에 대한 옳고 그름도 보건 당국이 판단해주길 바란다. 여러 공신력 있는 테스트 결과가 나온다면, 전국을 뒤흔들고 있는 마스크 대란도 해결할 수 있을지 모른다.

이승훈 기자 lee88@busan.com


P.S. 슬기로운 호구생활을 응원해주시는 독자분들께 항상 감사드립니다. 호구생활을 하기 바라는 아이템이 있다면 lee88@busan.com이나 댓글로 남겨주세요.^^


이승훈 기자 lee88@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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