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투리 뉴스] 부산 해수욕장, 전쟁 때도 피서객 '천지빼까리'

황석하 기자 hsh0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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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철마다 부산 해수욕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하믄 파라솔 아이겠슴까. 근데 올 여름에는 코로나19 때매 파라솔이 싹 사라졌습니다. 1988년 8월, 파라솔 꽃이 만개한 해운대해수욕장에서 망루 위 바다경찰서 수상요원이 망원경으로 주변을 살피고 있네예. 부산일보DB 여름철마다 부산 해수욕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하믄 파라솔 아이겠슴까. 근데 올 여름에는 코로나19 때매 파라솔이 싹 사라졌습니다. 1988년 8월, 파라솔 꽃이 만개한 해운대해수욕장에서 망루 위 바다경찰서 수상요원이 망원경으로 주변을 살피고 있네예. 부산일보DB

[읽기 전 잠깐] 우리 생활과 밀접한 데이터와 스토리를 접목해 재미와 정보를 동시에 전달하고자 친근한 경상도 사투리로 기사를 작성했습니다. 글을 읽다가 이해가 안 되는 사투리가 있으면 댓글로 남겨주세요. 친절하게 설명해드리겠습니다.^^


부산하면 역시 바다지예. 올해는 코로나19 때문에 쪼매 특수한 상황이긴 하지만, 지난 1일에 해운대·송정해수욕장이 '안전개장' 했습니다. 보통 해수욕장들이 6월부터 조기 개장에 동참하지만 이번에는 해운대·송정을 제외한 나머지 해수욕장은 7월부터 문을 연다캅니다. 올해는 거리두기 때매 백사장에 천지빼까리로 박혀 있던 파라솔도 사라졌고예, 마스크 쓰고 해수욕장 주변을 댕기는 것도 영 어색한 풍경입니다. 그래도 코로나19 시국에 갈 곳도 많이 없는데, 해수욕장이라도 개장하니 마 참말로 반갑네예. 그래서 이번 '사투리 뉴스'에서는 부산 해수욕장의 과거 모습을 함 챙기봤습니다.


■공식 통계가 10년치뿐이라꼬?

1970년대 말 한여름 광안리해수욕장 전경인데, 와~ 피서객들이 마 개미떼처럼 바글바글합니다. 왼쪽 상단에 삼익아파트 말고는 허허벌판이네예. 부산일보DB 1970년대 말 한여름 광안리해수욕장 전경인데, 와~ 피서객들이 마 개미떼처럼 바글바글합니다. 왼쪽 상단에 삼익아파트 말고는 허허벌판이네예. 부산일보DB

부산에는 해운대·광안리·송도·송정·다대포·일광·임랑 7개 공설해수욕장이 있는 거 다 아시지예? 이중에서 송도가 전국 제1호 공설해수욕장으로 1913년에 개장해 역사만 100년이 넘었습니다. 함 생각해 보이소. 그동안 전국에서 여름 되면 피서객들이 억수로 몰리왔다 아입니까. 그래서 해수욕장 이용객 수 통계도 방대할끼라고 예상했지예. 그런데 부산시가 공식적으로 집계한 통계는 2009년부터라는 담당자 답변에 가슴이 탁 막혔습니다. 이유는 이렇답니다.

"오래 전부터 집계는 했는데… 담당 부서가 바뀌면서 예전 자료를 찾을 수가 없습니더."

하이고 마… 기도 안 차지만 그래도 기사는 써야 하고… 우짜겠습니까. 그래서 일단 10년치 통계라도 여기에 함 소개해드릴께예. 그라고 참, 지자체들이 자기네 해수욕장에 사람 많이 왔다면서 집계를 가끔 뻥튀기한다는 점도 참고 하이소.


최근 10년 동안 부산 7개 공설해수욕장 전체와 해운대·광안리·송도·송정을 각각 찾은 이용객 수 추이라예. 그래픽=노인호 기자 nogari@ 최근 10년 동안 부산 7개 공설해수욕장 전체와 해운대·광안리·송도·송정을 각각 찾은 이용객 수 추이라예. 그래픽=노인호 기자 nogari@

가장 최근인 2019년 6~8월 부산 7개 해수욕장을 찾은 사람은 연인원으로 3695만 명이랍니더. 우리나라 인구를 5000만 명으로 잡으면 전체 인구 중 73.9%에 달하는 숫자가 부산 해수욕장에 놀러 온 셈이라예. 최근 10년 중 2017년에 4856만 명이 찾아 가장 많았지만서도, 당시 이동통신사를 활용한 빅테이터 방식으로 집계해 보니 이용객 수는 이 보다 훨씬 작아서 논란이 됐습니다.

가장 적은 이용객이 찾았을 때는 2843만 명을 기록한 2014년이었습니다. 당시 태풍이 쌔리 몰아치가꼬 폐합판 200t이 해운대해수욕장을 덮치는 불운이 있었고, '부산바다축제' 기간 중 나흘 동안 비가 130mm 이상 쏟아지면서 축제를 완전 베리뿟어예.

해운대·광안리·송도·송정해수욕장 개별 추이도 함 보입시다. 역시나 부동의 1위는 해운대네예. 2017년에 광안리가 15만 8000명 차이로 해운대의 턱 밑까지 추격한 적도 있었지만, 역전은 아직 먼 것 같심다. 최근에는 부산 서구가 옛 명성을 되찾는다고 송도에 대대적으로 투자해 송도 이용객도 꽤 많이 늘었고예.


■전국은 '피란 행렬', 부산은 '피서 행렬'

말이 나온 김에 제1호 공설해수욕장 송도 이바구를 함 해야겠네예. 지금은 해운대 천하지만, 과거에는 송도를 찾는 이용객이 제일 많았거든요. 그래서 공공기관이나 언론이 해수욕장을 다룰 때 제일 먼저 거론하는 게 바로 송도 아이겠습니까. 실제 <부산일보> 1954년 8월 10일 자 2면 '바다로, 바다로, 13만 명 사람의 파도' 기사를 보면 부산의 주요 피서지 별로 주말 풍경이 나와 있는데예, △송도 △광안리 △송정 △신선대 △감천 순서로 나와 있습니다. 해운대는 아예 보이지도 않네예.

송도해수욕장은 6·25전쟁이 한창일 때도 인기가 하늘을 찔렀답니다. <부산일보> 1951년 8월 14일 자 2면 왼쪽 상단 사진은 국군이 전장에서 싸우는 모습이고, 바로 아래는 피서객들로 만원인 송도해수욕장 모습입니다. 부산일보DB 송도해수욕장은 6·25전쟁이 한창일 때도 인기가 하늘을 찔렀답니다. <부산일보> 1951년 8월 14일 자 2면 왼쪽 상단 사진은 국군이 전장에서 싸우는 모습이고, 바로 아래는 피서객들로 만원인 송도해수욕장 모습입니다. 부산일보DB

송도 인기가 어찌나 좋은지 6·25 전쟁이 한창일 때도 전국에서 사람들이 몰리와가 북새통이었답니다. 1951년 8월 14일 자 2면을 보면 '전쟁 모르는 송도, 수영복 위를 오가는 추파'라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기사는 "우리 젊은 용사는 붉은 악마(북한)와 더불어 어제도 오늘도 아니, 이 순간도 싸우고 있는데… 호화로움을 자랑삼아 피서하는 시국의 역류군상들이 날마다 찾아도는 송도"라고 개탄하고 있슴다.

당시 기자가 취재했던 8월 12일에 충무동 도선장에서 송도로 가는 배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인산인해'였고예, 남부민동에서 송도로 가는 도로에는 '피란 행렬'이 아닌 '피서 행렬'이 늘어섰다 안캅니까.

백사장에서는 또 이런 광경이 벌어졌다고 묘사했는데, 지금으로선 상상할 수 없는 표현들이 등장합니다. "여성들이 한 벌에 10만 원 한다는 해수욕복을 입고, 하얀 두 다리를 뻐치고 지나가는 남자에게 추파를 던지고 있으며, 정체 모르는 어떤 사나이는 정욕에 불타는 눈초리로 수영하는 여학생들에게 이상야릇한 행동을 하고 있다." 1950년대 초반, 우리 사회가 얼마나 보수적이고 권위적이었는지 사회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습니더.


과거 송도해수욕장하면 다이빙대하고 해상케이블카, 구름다리가 유명했지예. 1979년 7월 송도해수욕장 풍경입니더. 부산일보DB 과거 송도해수욕장하면 다이빙대하고 해상케이블카, 구름다리가 유명했지예. 1979년 7월 송도해수욕장 풍경입니더. 부산일보DB

송도하면 또 다이빙대와 해상케이블카, 구름다리가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떨쳤다 아입니까. 이 시설들은 한때 다 사라졌다가 다이빙대는 2013년, 해상케이블카는 2017년에 복원됐고예. 지난 4일에는 구름다리의 명성을 잇는 '송도용궁구름다리'도 개통됐습니다.


버스 타기 전쟁에 안전사고도 속출



해운대 동백섬과 웨스틴조선호텔 사이 바위에 가득한 피서객들 모습입니다. 그 뒤로 백사장에도 피서객들이 엄청 많네예. 시기 미상의 여름 해운대해수욕장. 부산일보DB 해운대 동백섬과 웨스틴조선호텔 사이 바위에 가득한 피서객들 모습입니다. 그 뒤로 백사장에도 피서객들이 엄청 많네예. 시기 미상의 여름 해운대해수욕장. 부산일보DB

여름마다 부산 해수욕장에 사람들로 미어터지니 버스타는 것조차 전쟁이었습니다. 1994년 7월 해운대해수욕장을 가득 메운 피서객 인파 사진입니다. 부산일보DB 여름마다 부산 해수욕장에 사람들로 미어터지니 버스타는 것조차 전쟁이었습니다. 1994년 7월 해운대해수욕장을 가득 메운 피서객 인파 사진입니다. 부산일보DB

부산 해수욕장에는 7월 말부터 8월 초 사이 주말에 수십만 명이 전국에서 몰린 거는 예사고예, 100만 명이 훌쩍 넘을 때도 억수로 많았습니다. 그런데 해수욕장 주변 인프라가 이 많은 인원을 다 수용할 수 없어서 여름마다 전쟁터 아이었겠심까. 대표적으로 사람들이 해수욕장 주변으로 쏠리가 버스 타기도 쉽지 않았다카데예.

1967년 7월 24일 자 3면에 실린 '피서인파 30만 아비규환… 귀로의 차 잡기' 기사를 함 보입시다. 그때 7월 23일 일요일에 낮 기온도 30도 이상 올라뿌가꼬 '구릿빛 인어' 30만 명이 부산 7개 해수욕장에 바글바글했습니다. 그런데 그때는 지하철도 없고, 차가 부족해서 '정류소마다 버스 합승 기다리는 시민들로 장사진을 이뤘다'고 하네예. 아래 내용 함 보이소.


사람들이 버스에 다 타지도 못 하고 이리 매달려서 해수욕장까지 갔다 합니다. 부산일보DB 사람들이 버스에 다 타지도 못 하고 이리 매달려서 해수욕장까지 갔다 합니다. 부산일보DB

"귀로의 해수욕장 주변은 차를 잡는 사람들로 그야말로 아비규환의 혼잡 상태. 송도해수욕장에는 아예 차 잡기를 단념한 보행자들로 충무동까지 인파가 이어지는가 하면 해운대 버스 정류장에는 300~400명씩, 광안리 정류장에는 500~600명씩 줄을 지어 평균 1~2시간을 기다리는 실정."

해수욕장 개장 기간 동안 월요일 자 신문에는 익사 사고 소식을 어김 없이 볼 수 있기도 했습니다. 1968년 8월 8일 자 7면에 난 기사 '부쩍 는 익사자, 올들어 벌써 19명' 기사를 함 보입시다. 기사에는 "8일 말복, 삼복 무더위가 맹위를 떨치면서 물가엔 인파가 붐비고 익사사건이 부쩍 늘었다. 7일 하룻동안만 해도 부산시내에는 어린이 3명을 포함한 익사 사건이 4건 발생했다"고 전합니다. 그해 들어 부산 해수욕장에 하루 평균 15만 명이 찾았는데 익사자 19명 중 7명이 송도·해운대 등에서 발생했다 안캅니까.


1977년 7월 송정해수욕장 모습입니더. 한눈에 봐도 얼라들이 많지예? 안타깝게도 그 당시 익사자는 대부분 15세 이상 20세 미만의 청소년들이었습니다. 부산일보DB 1977년 7월 송정해수욕장 모습입니더. 한눈에 봐도 얼라들이 많지예? 안타깝게도 그 당시 익사자는 대부분 15세 이상 20세 미만의 청소년들이었습니다. 부산일보DB

안타까운 것은 익사자 대부분이 15세부터 20세 미만이었다는 거라예. 신문에는 청소년의 수영 미숙과 부모의 부주의 때문에 비극적인 사고가 계속 발생하고 있으니, 부모들의 특별한 관심이 요청된다고 하는데…. 근데 이게 어디 부모만 관심을 둔다고 될 일이겠습니까. 당시 해수욕장 관리했던 지자체나 경찰 등은 안전 사고 예방을 위해 도대체 뭘 했는지 궁금해지네예.


피끓는 청춘은 시대 불변


밤이 찾아온 해수욕장, 청춘남녀들이 둘러 앉아서 젊음을 불태우고 있습니다. 1991년 8월 광안리해수욕장 밤 풍경입니다. 부산일보DB 밤이 찾아온 해수욕장, 청춘남녀들이 둘러 앉아서 젊음을 불태우고 있습니다. 1991년 8월 광안리해수욕장 밤 풍경입니다. 부산일보DB

이번에는 해수욕장에서 벌어지는 청춘남녀들의 '애정행각'을 함 보겠심다. 당사자들에게는 로맨스이기는 한데, 군사정권 시절 분위기가 워낙 고압적이다 보니 당시 남녀 청소년들이 해수욕장에서 벌이는 일탈, 탈선으로 매도됐죠. 부산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진하해수욕장에는 특히 남녀 혼성캠핑·민박이 유행했다고 합니다.

1972년 9월 12일 자 9면에 실린 '난잡한 10대 남녀 혼성 캠핑·민박' 기사에는 "진하해수욕장에는 무분별한 10대를 포함한 난잡한 남녀혼성 민박·혼성캠핑족들이 몰려와 밤낮을 모르고 광란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혀를 차네예. 이 청춘 남녀들은 불을 피우고 모여 앉아 술 마시고, 퇴폐적인 가사로 고친 노래를 부르고, '고고춤'까지 추면서 새벽 2시까지 불야성을 이뤘다 하니, 하이고 마 지금 봐도 끝내주게 논 거 아입니까.

기사를 쓴 기자가 이중 한 명과 인터뷰 한 내용도 웃깁니더. 기사 내용을 보니 아마도 이런 대화가 오가지 않았을까 싶네예. "니 여기에 누구하고 왔노? (대가리 피도 안 마른 게…)" "오빠야하고 왔는데요. 와 물어보는데요? 별꼴이네 참말로." 며칠 뒤 후속보도가 나왔는데, 경찰이 진하해수욕장을 덮쳐뿌가 10대 '난잡 캠핑족' 57명을 즉결심판에 회부했다캅니다.


1979년 8월 부산의 한 해수욕장에서 찍힌 사진입니다. 그때만 하더라도 해수욕장에는 비키니 차림의 피서객이 종종 발견됐지예. 부산일보DB 1979년 8월 부산의 한 해수욕장에서 찍힌 사진입니다. 그때만 하더라도 해수욕장에는 비키니 차림의 피서객이 종종 발견됐지예. 부산일보DB

모두가 가난했던 시절, 해외여행도 맘대로 갈 수 없던 그때에 부산 해수욕장은 전국 최고의 피서지였지예. 쎄빠지게 일만 하다 해수욕장에서는 한 번쯤 과감한 일탈을 꿈꿔보지도 않았을까예. 그래서인지 옛날 해수욕장 모습이라는 게 믿기 어려울 정도로 파격적인 차림과 행동의 피서객들 사진도 꽤 많이 발견했습니다. 차마 여기에는 구체적으로 쓸 수는 없지만예.

2020년으로 돌아와 코로나19 때매 마음 졸이고 사는 현재를 보면, 그 옛날 팍팍했던 삶과 얼추 비슷한 구석이 많아 보이기도 합니다. 해외여행을 갈 수 없다는 점도 빼박았다 아입니까. 이왕 이렇게 된 거 올 여름에는 부산 해수욕장에서 철저히 거리두기 하면서 고단한 몸과 맘을 좀 다독이는 시간을 가져도 참 좋을 것 같네예.

황석하 기자 hsh03@busan.com


황석하 기자 hsh0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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