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여론조사의 함정

2016년 4월 총선 새누리당 대패, 6월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11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 5년 전을 거슬러 올라가 보니 국내외에 굵직한 사건들이 많았다. 그 충격은 상상 이상이었는데, 더 충격적인 것은 이 모두가 여러 여론조사 기관의 예측과는 완전히 정반대였다는 사실. 유권자들의 표심 숨기기가 여론조사 왜곡을 초래할 수 있다는 ‘브래들리 효과’는 익히 알려져 있다. 최첨단 빅데이터 기술 시대를 비웃는 이런 일은 여전히 비일비재하다. “여론은 생물처럼 움직인다”는 말이 있지만 여론조사가 진짜 여론을 담아내는 데 한계가 뚜렷하다는 방증이겠다.
한국의 여론조사 업체들은 지금 ‘대목’을 맞고 있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하루가 멀다고 벌어지는 여론조사를 살펴보면, 업체에 따라 여야 유력 후보들의 지지율이 그야말로 천양지차다. 1000명 안팎의 소규모 표본인데다 응답률이 10%도 채 되지 않아 조사의 신뢰성에 의구심이 들기에 충분하다. 지난 7~ 8월 전국 단위 정치 관련 여론조사 수는 98개였는데 이중 응답률 5% 미만이 41개로 가장 많았다고 한다. 조사 결과는 조사 방식은 물론 설문 대상, 설문 내용에 따라 판이하게 달라진다. 가령, 전화면접 방식은 신뢰도는 높지만 우리나라 유권자의 정서상 솔직한 답변을 끌어내지 못하는 맹점이 있고 자동응답 방식은 유권자의 부담이 적은 반면 응답률이 크게 떨어지는 단점이 있다.
더 큰 문제는 조사 결과를 보도하는 디지털 미디어 시대의 언론 행태다. 여러 문항 가운데 하나만 선택해 보도하면 대중이 어느 한 방향의 여론을 지니는 것으로 호도될 수밖에 없다. 조사 결과의 일부를 마치 전체인 양 침소봉대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표본오차 범위 안에서의 차이는 통계적으로 무의미한데도, ‘앞섰다’ ‘우세하다’거나 ‘승기를 잡았다’고 주관적으로 기술하는 비과학적인 자세 역시 문제다. 입맛에 따라 실제보다 부풀리거나 양념을 치고 포장하는 이것은 모두 객관성을 상실한 보도다.
출저를 알 수 없는 말 중에 이런 통찰이 전해진다. “거짓말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다. 그럴듯한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통계.” 인간이 살아가는 복잡한 사회는 단 몇 개의 수치, 몇 마디의 구절로 도식화될 수 없다는 얘기다. 유권자들이 여론조사 결과에 휘둘리지 말고 수치의 노예가 아닌 주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 자신만의 시각으로 꼼꼼하게 살피고 또 살펴서 적임자를 찾아내는 지혜가 필요하다.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