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원 칼럼] '비호감 대선'과 풀뿌리민주주의
논설실장

대선이 이상하다. 부산 소주가 아니라 넉 달 열흘 남짓 앞으로 다가온 제20대 대통령 선거 얘기다. ‘대장동 게이트’ ‘고발 사주’에 이어 ‘전두환 옹호’ ‘개 사과’ ‘조폭 연루’ ‘소시오패스’에 이르기까지 대선후보 자질 논란은 갈수록 태산이요, 점입가경이다. 정책과 비전 경쟁은 사라지고 네거티브 막말로 상대방 흠집 내기에만 열을 올린다. 후보 ‘그들만의 리그’에 포박된 대한민국 미래도 점점 어두워지고 있다. 선거의 본말이 전도된, 이상한 대선이다.
호감보다 비호감 뜨는 이상한 대선
정책·비전 없고 흠집 내기 골몰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한 선거판
지방자치제 부활 30년 맞았지만
온전한 자치분권은 아직 갈 길 멀어
자치분권 개헌 통해 민의 받들어야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듯, 대선주자의 호감보다는 비호감이 뜨고 있다. 한국갤럽이 지난 19~21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후보 5인에 대한 호감·비호감을 물은 결과 호감도는 30% 안팎에 그쳤고, 비호감도는 60~70%에 달했다. 호감 대 비호감이 이재명 후보는 32% 대 60%, 홍준표 후보는 31% 대 59%, 윤석열 후보는 28% 대 62%로 각각 조사됐다. 역대급 ‘비호감 대선’이다.
대선후보 비호감도가 높으면 지지할 정당이 없는 무당층이 늘어나는 건 당연하다. 정치 불신과 냉소, 무관심도 확산할 조짐이다. 따지고 보면 국민도 억울하다. 현재 유력주자로 평가받는 비호감 62%의 윤석열, 60%의 이재명, 59%의 홍준표 가운데 한 명을 대통령으로 낙점해야 할 판이어서 “국민 노릇 하기 어렵다”는 한탄이 절로 나올 만하다. 대선주자는 물론이고 기성 정치권의 맹성이 필요하다.
취한 듯 갈지자걸음을 걷는 것은 대선뿐만 아니라 기초의회도 마찬가지다. “동네 중장년 남성들이 밤늦게 술 마시면서 형님 동생 하며 나쁜 짓 좀 하다가 사람 모아 조직을 만들면 되는 게 지금의 기초의원”이라는 게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의 진단이다. 공직 후보자 자격시험 도입으로 기초의원을 대폭 물갈이하겠다는 그는 자당 대선후보를 선출하는 11월 15일 전당대회에서 이를 추인받을 태세다.
기초의회 선거에서부터 대선에 이르기까지 한국 정치는 정치꾼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한 지 오래다. 그들만의 리그에서 민의는 더욱 일그러지고 왜곡되기에 십상이다. 여기서 정치 불신과 무관심이 싹트고 확대재생산 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읍·면·동 주민참여기구인 주민자치회마저 기성 정치를 닮아 파행을 보인다고 한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정의당 이은주 의원이 16개 광역시·도 960개 주민자치회의 위원 현황을 전수 조사한 결과 회장의 80%는 남성이고, 위원 중 20대 비율은 1%에도 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선거로 뽑은 대표가 국민을 대신해 권력을 행사하는 대의민주주의는 결국 ‘정치 엘리트’만 배출할 뿐이라는 지적이 그동안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시민운동과 주민운동에 기반한 풀뿌리민주주의 혹은 참여민주주의를 강화하자는 주장이 이어졌지만 현실에서의 성과는 여전히 미미하다. 학계를 중심으로 ‘추첨 민주주의’도 대안 중 하나로 꼽힌다. 공직자 대부분을 선거가 아닌 추첨으로 선발한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를 본받아 정치 엘리트 중심인 선거제 폐단을 발본색원하자는 것이다. 추첨민주주의는 “선거가 귀족적이라면 추첨은 민주적”이라는 몽테스키외와 루소의 사상에 기반하고 있다.
올해 지방자치제 부활 30주년을 맞았다. 지방자치제 중단 30년 만인 1991년 기초자치단체와 광역자치단체 의회가 다시 구성되었다. 오는 29일은 ‘지방자치의 날’이다. 지방자치제의 부활을 가능하도록 한 현행 헌법이 공포된 1987년 10월 29일을 기리는 날이다. 지방자치제 부활 30주년에다 지방자치의 날을 앞두고 있지만 제왕적 대통령제와 수도권 일극주의에 밀려 지방자치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지방자치라는 풀뿌리민주주의가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하면서 한국의 민주주의가 통째로 흔들리고 있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1987년 제정된 헌법을 바꿔 이른바 ‘87년 체제’를 끝내자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 리셋코리아 개헌분과가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9월 30일~10월 6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웹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6.5%가 개헌에 찬성했고, 특히 대통령 권한 분산에 51.8%가 동의했다. 국회의원을 임기 중 강제 소환할 수 있는 국민소환제 도입에도 79.9%가 찬성했다.
민의와 동떨어진 비호감 대선은 국가적으로 불행한 일이다. 비호감 대통령에게 제왕적 권력을 몰아주는 것은 더 불행한 일이다. 기초의회에서부터 대통령제에 이르기까지 민의를 제대로 담을 다양한 제도를 고민하고 연구할 때다. 뿌리 깊은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지 않듯 풀뿌리민주주의가 건강해야 대한민국 정치가 살아난다. 정치 엘리트와 수도권만 살찌우는 대의제 민주주의의 폐해를 방지할 강력한 자치분권 개헌이 시급한 마당이다. forest@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