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여는 시] 레고/채수옥(1965~)
나는 어느 공간에 진열된 일부입니까. 복사기와 빗방울 사이에서 너는 배경이 됩니까. 나 대신 새를 끼워 넣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공간은 무엇들로 넘쳐납니까. 가령 코끼리와 바람의 위치를 바꾸면 공간은 뒤집힙니까. 쏟아집니까. 설명서도 없이 나는 어디로 이동해야 합니까. 오늘 밤 성이 무너지면 길고 긴 어둠은 어느 쪽에 쌓입니까. 경험 없이도 너와 나는 쉽게 조립이 가능합니까. 내 얼굴을 뽑아서 너의 목 위에 끼우면 비좁습니까. 뼈를 바꾸면 그림이 달라질 수 있습니까. 비어 있는 이곳에 숲과 불면을 배치한다면 공간은 비명을 지릅니까. 출렁입니까. 움푹 패게 됩니까. 가득 차오릅니까. 무엇을 뽑아내면 안과 밖이 바뀌게 됩니까. 공간은 불안에 떨고 있습니까. 채우고 비우고 바꿔 봐도 비슷합니까. 반복된 놀이는 언제쯤 끝내야 합니까.
-시집 (2019) 중에서-
너와 나의 삶이 만나면 레고처럼 들어가고 나온 곳이 딱딱 맞아서 집이 되고 다리가 되기를 바랐다. 서로 모자라는 곳을 채워주고 하나보다는 둘이, 둘보다는 셋이 함께 가는 삶이 더 나은 삶이기를 바랐다. 나의 앞이 너의 뒤가 되고 너의 바깥이 나의 안이 되어서 세상은 희망이 되고 일상은 낙원이기를 바랐다. 세월은 흐르고 자란 아이들이 하나 둘 곁을 떠나고 여전히 세상은 살아볼 만하다고 수없이 되뇌어 보지만, 사람과 사람이 만드는 세상은 아직도 이해되지 못할 일들로 가득하다. 희망의 뒷면에 절망이 있고 중심으로 치닫는 나의 길이 너의 변두리 길이었음을 깨닫는 것이 이리도 힘들고 어려운데, 나의 진실이 너의 거짓말이 되는 이 반복 놀이는 언제쯤 끝이 날까?
이규열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