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금아의 그림책방] 진짜 평등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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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부 부장

앤서니 브라운의 <돼지책>을 처음 봤을 때가 떠오른다. “밥 줘”만 외치는 남편과 아이들을 두고 집을 나간 피곳 부인이 남긴 종이 한 장. 거기에 쓰인 ‘너희들은 돼지야’라는 문장은 아주 인상적이었다. 이후 집은 엉망이 됐다. 피곳 부인이 돌아온 뒤 가족들은 모두 달라졌다. 다른 가족이 요리를 할 때 피곳 부인은 차를 수리했다. 한국에서 이 그림책의 초판이 나온 것은 2001년. 지난 20년 동안 세상은 꽤 많이 바뀌었다.

마우고자타 스벵드로브스카와 요안나 바르토식의 <씩씩한 엄마 달콤한 아빠>는 변화된 부모의 모습을 보여준다. 엄마는 못을 잘 박고, 아빠는 요리를 잘한다. 아빠는 아이를 위로하고 엄마는 아이를 웃긴다. 아빠는 옛날을 추억하고 엄마는 미래를 꿈꾼다. 편견에 사로잡힌 성역할에서 벗어난 모습이다. 성평등 인식의 확산으로 드라마나 영화, 문학 작품에서도 빠르게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일상 속의 변화를 반영한 결과이기도 하고, 작품이 앞서서 사람들의 생각을 바꿔가기도 한다. 그러나 불평등은 사적 관계 뿐 아니라 공적 관계에서도 여전히 존재한다. 가족보다 견고한 사회 구조의 변화는 훨씬 더디다.

요안나 올레흐가 글을 쓰고 에드가르 봉크가 그림을 그린 <평등한 나라>는 사회에 질문을 던진다. 평등을 표방한 어느 나라에 4천만의 분홍 곰과 파랑 곰이 산다. ‘모든 곰은 평등하다’고 곰 헌법에 쓰여 있다. TV 프로그램에 나오는 곰도, 곰 방송국의 사장도, 곰 신문의 편집장도, 곰 의회의 의원도 ‘모두 똑같이 평등하다’고 외치지만 그렇게 말하는 곰 대부분은 파란색이다. 심지어 종교 지도자까지 파란색이다.

분홍 곰이 말한다. “잠깐만요! 혹시 제가 보이시나요?”(그림) 분홍 곰이 유모차를 밀 때 파랑 곰은 자동차를 몬다. 분홍 곰은 유리 천장에 머리를 부딪치고, 분홍 곰은 파랑 곰보다 적은 월급을 받는다. 분홍 곰이 이의를 제기할 때 파랑 곰들은 말한다. “원래 그렇게 해 왔어.” 이게 진짜 평등한 나라인가?

그림책 마지막에 수많은 곰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색깔은 없다. 분홍색과 파랑색 크레파스를 들고 평등하게 색칠을 해보자. chri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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