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광명의 정견만리(正見萬理)] ‘어쩌다 대통령’은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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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요즘 국민의힘이 절정의 인기를 구가 중이다. 경선 막바지에 대선주자들은 저마다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한다. 그도 그럴 것이, 대선후보 선출을 위한 당원 투표에서 첫날인 지난 1일 44%의 투표율을 기록하는 등 소위 ‘대박’을 터뜨린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근래 당 지지율도 고공행진이다. 리얼미터가 지난달 25~29일 실시해 1일 발표한 정당지지도 조사 결과, 국민의힘은 42.6%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29.9%)을 압도했다. 지지율 42.6%는 국민의힘 창당 후 최고 기록이다. 특히 부산·울산·경남에서 가장 높은 지지율을 보여 무려 50.9%를 기록했다.


국민의힘 오늘 대선 후보 선출
정당 지지도 역대 최고치 기록
부울경에선 50% 넘는 지지율
 
지난 경선 과정 평가는 낙제점
“정권 교체” 외 비전·대안 없어
국민은 투사 아닌 지도자 필요

격세지감이 든다. 올해 초 부울경에서 국민의힘은 제대로 힘을 쓰지 못했다. 지난 1월 리얼미터가 조사해 발표한 지지율 결과에 당시 국민의힘은 벌집을 쑤신 듯했다. 부울경에서 1월 2주 차까지만 해도 민주당과 지지율이 어금버금했는데, 3주 차 들어 민주당은 급상승해 34.5%, 국민의힘은 급락해 29.9%로 차이가 벌어졌던 것이다. 전국 단위에서도 당시 국민의힘은 28.8%로 민주당(32.9%)에 밀렸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국민의힘 내부에선 위기론이 제기되면서 부산시당위원장이던 하태경 의원은 “당 지도부가 부울경을 무시한다”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터뜨렸다. 이야기인즉슨, 국민의힘이 지금 잘나간다고 해서 자만할 일이 아니란 거다. 상황이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거니까.

현재 높은 지지율에도 국민의힘의 지난 4개월간 경선 과정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더할 수 없이 낮다. 10차례 토론회에서 정책 대결은 찾아볼 수 없었고 후보들은 상대를 비하하며 공격하기에 바빴다. “이게 장학퀴즈냐”는 비아냥까지 들어야 했다. 장외에서의 모습도 볼썽사나웠다. 캠프끼리 비난전이 과열되면서 급기야 지지자들 사이에 폭력사태까지 일어났다. ‘2강’ 윤석열·홍준표 캠프에선 소위 ‘공천 협박’을 놓고 서로 날 선 공방을 벌였다. 윤 캠프 쪽에서 당을 사칭하면서까지 지지를 호소해 부정 경선 논란도 일었다. 이 같은 과열·혼탁 양상을 보다 못한 정홍원 국민의힘 선관위원장이 각 주자에게 “품위 있고 절제된 모습을 보여 달라”고 호소할 정도였다.

무엇보다 국민의힘 대선주자들에 부울경 유권자들이 많이 서운하다. “당신들이 부울경을 위해 하는 게 뭐냐”고 묻는다. 사실 지난 경선에서 국민의힘 대선주자들은 부산을 비롯한 지역의 현실에 관심을 갖고 고민하고 대안을 찾는 모습을 보여 주지 못했다. 지역발전 공약이라고 내놓은 게 죄다 허술한 것들이었다. “부산을 해양특별시로 만들겠다”거나 “한일 해저터널을 건설하겠다”거나 “부울경 광역철도를 놓겠다”는 식으로 이전에 여러 번 거론됐던 것을 재탕 삼탕 하는 식이었다. 경선 중 토론회에서도 지역 현안들은 거의 다루어지지 않았다.

“처음에는 토론회 주제에 의무적으로 지역 현안을 넣었지만 방송사에서 관심이 떨어진다는 반응을 보여서 뺐다”는 당 관계자 고백이 있었을 정도이니, 국민의힘이 지역 문제에 얼마나 소극적이었는지 충분히 짐작된다. “오십보백보”라는 비판도 있지만 여하튼 민주당 등 여권이 노무현 정부의 균형발전·자치분권 정책을 계승하는 차원에서 지역 문제를 적극 끌어안으려는 모습을 보였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국민의힘 대선주자들은 모두 자신이 정권 교체의 적임자임을 내세운다. 하지만 왜 정권이 교체돼야 하는지, 왜 자신이 그 주역이 돼야 하는지 근거를 명확히 보여 주지 못한다. 불공정 척결과 부패 근절을 외치지만 막연하고 공허할 뿐이다. “대통령만 되면 다 때려잡겠다”는 호언장담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무엇보다, 정권을 교체해야 한다면서 교체 후 자신이 이끌 정권은 어떤 모습일지 대안과 비전을 확인해 주는 대선주자를 보지 못했다.

어쩌면 지금 국민의힘 대선주자들은 당 차원의 높은 인기에 심취해 있는지도 모른다. “반문재인” “정권 교체”만 외쳐도 이길 거라 자만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시쳇말로 한 방에 훅 갈 수 있다. 불과 지난 10개월 사이에 부울경에서 지지율이 역전하는 현상을 목도한 국민의힘이다.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사람 일이다.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가 5일 결정된다. 최종 선출된 후보는 그게 누구든 이후에는 지난 경선 과정에서와는 달라진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국민은 투사를 원하는 게 아니다. 위기를 극복해 국격을 높이고 양극화로 갈라진 사회를 하나로 엮어 보듬음으로써 국민에게 희망을 던져 주는 지도자를 바란다. 좀체 바뀌지 않는 게 사람이라지만, 일국의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으로서 그에 맞는 능력과 자격을 갖추도록 노력해야 한다. ‘어쩌다 대통령’은 가능하지 않을뿐더러, 설사 된다 하더라도 그만큼 국민에게 큰 불행은 달리 없을 것이다.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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