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부터 수집까지… 주민 발품 팔아 만든 ‘마을기록관’
마을 주민들이 직접 모은 마을의 역사와 기록을 보관·전시하는 기록관이 부산 북구에 문을 열었다. 마을공동체가 주도한 도시재생사업의 모범사례로 자리잡을지 관심이 모인다.
지난 5일 북구 화명2동 행정복지센터 3층에서 화명기록관 개소식이 열렸다. 부산 최초의 마을 기록관인 화명기록관은 이날 ‘마을, 기억의 집’ 전시회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운영에 들어갔다.
기록관은 지난 12년간 사립도서관인 ‘맨발동무도서관’을 중심으로 주민이 직접 수집한 대천마을의 사진과 기록, 구술 등으로 꾸려졌다. 대천마을 토박이가 간직해 온 마을의 옛 사진뿐 아니라 마을공동체교육기관인 ‘대천마을학교’를 거쳐간 학생들의 사진과 그림도 함께 전시됐다.
북구 ‘화명기록관’ 부산 첫 개소
맨발동무도서관 등 주민 주도해
12년간 수집한 대천마을 기록
97세 주민의 60년 농사일기 등
평범한 주민 이야기가 주인공
유명인사의 거창한 기록이 아닌 평범한 주민의 개인 이야기도 이 전시회에서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주민 윤희수(97) 씨가 1954년부터 60년 넘게 대천마을에서 농사를 짓고 살며 쓴 ‘대천일기’가 대표적이다.
부산에서 주민 주도로 마을 생애사 기록관이 문을 연 것은 이곳 화명기록관이 처음이다. 화명기록관은 기록부터 설립까지 모두 대천마을 주민이 주도했다. 행정기관이 주도하는 뻔한 도시재생사업과 달랐다. 지역 주민이 공동체를 꾸리고, 사업을 구상해 지자체 공모 사업을 따왔다.
화명기록관은 2010년 문화체육관광부 ‘생활문화공동체 만들기 시범사업’에 선정돼 처음 시작됐다. 그후 5개 공모에 잇따라 당선되면서 꾸준히 대천마을의 역사를 기록해 왔다. 그동안 발간된 대천마을 기록집만 7권이다.
화명2동은 400여 년 전부터 터를 잡고 있던 전통마을과 1990년대 새로 들어선 아파트촌이 공존하는 곳이다. 2018년께 재개발이 본격화되자 ‘지금의 대천마을을 잘 보내주고, 새로운 사람들을 잘 맞이하자’는 요구에 마을공동체 내 기록관TF팀이 꾸려졌다. 원주민과 이주민의 소통 매개체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기 때문이다.
2019년 1월 문체부 생활문화센터 조성지원 사업 공모에 선정되며 화명생활문화센터가 건립됐고, 이곳 3층에 마을기록관이 개관하게 됐다. 현재 맨발동무도서관은 화명기록관의 기록전문 협력단체 형태로 참여하고 있다. 기록 활동의 거점인 이 도서관은 2005년 마을공동체 부산북구공동육아협동조합이 설립한 도서관으로 주민의 봉사활동, 기부금으로 운영 중이다.
그간 사업을 주도해온 맨발동무도서관 측은 화명기록관 개관이 기록의 끝맺음이 아닌 시작점이라고 내다봤다. 기록관 한쪽 벽이 앞으로 진행될 기록을 추가하기 위해 비워져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 6월 ‘우리동네 행복마을만들기 주민자치’ 공모사업에도 선정돼 마을기록관 이름짓기 워크숍도 진행되고 있다.
지금까지는 주민의 자발적인 봉사활동으로 꾸려져 왔지만, 이제 화명기록관의 과제는 지속가능성 확보가 됐다. 꾸준한 기록 활동과 기록관 관리를 해나가려면 운영체계를 확립하는 것은 물론이고 자금 조달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실제로 서울시 금천구에서 운영 중인 금천마을공동체기록관은 금천구마을공동체지원센터를 통해 운영위원회를 열고, 구비 예산을 지원받고 있다.
맨발동무도서관 김부련 관장은 “기록관은 마을의 옛 역사를 기록하는 기능에만 국한되지 않고 새로운 주민이 이 마을에 애정을 갖도록 하는 게 목적이다”이라며 “앞으로 마을 기록을 이어나가려면 운영체계, 예산, 인력 등 현실적인 부분들이 해결돼야 한다”고 말했다.
손혜림 기자 hyerimsn@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