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동 책방골목 살리기’… 팔 걷은 시민, 팔짱 낀 지자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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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이 보수동 책방골목의 추억을 기록하며 보존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반면 부산시와 중구청은 서점의 잇단 폐업에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특히 부산시는 보수동 책방골목을 ‘미래유산’으로 지정해 보존 가치를 인정했지만, 지원 대책에는 소극적이어서 비판이 인다. 개발 광풍에 부산의 대표적인 문화자원이 사라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어느 때보다 높다.

중구 동주여고는 최근 ‘보수동 책방골목 와보시집’ 2집을 발간했다. 이 시집에는 동주여고 재학생과 시민이 책방골목을 테마로 쓴 200여 편의 시가 담겼다. 지난해 ‘보수동 책방골목의 위기를 알리자’며 일회성으로 출간된 시집이었으나 호응이 이어지며 올해 2집 발간으로 이어진 것이다.

동주여고·혜광고 학생 등 시민
문예집 만들고 보존에 안간힘
‘미래유산’ 지정했던 부산시
서점 잇단 폐업에도 속수무책
중구청 지원책도 일회성 그쳐

인근에 위치한 혜광고에서도 학생들의 ‘책방골목 살리기’가 한창이다. 혜광고도 최근 책방골목에서 쌓은 추억과 애정을 시, 소설, 그림 등으로 표현한 문예집 ‘보수동 그 거리’를 발간했다. 문예집 제작에 참여한 혜광고 조희동(19) 군은 “책방골목에 대한 애정이 많은 친구들끼리 동아리를 꾸려 관련한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는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며 “최선을 다해서 책방골목 살리기에 나서고 있는데 사정은 계속 나빠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위기에 처한 책방골목을 도우려는 자발적인 움직임과 대조적으로 부산시와 관할 중구청의 보존 대책은 유명무실해 책방골목 쇠락에는 가속도가 붙고 있다.

부산시는 지난 2019년 보수동 책방골목을 부산시 미래유산으로 지정한 바 있다. 부산시 미래유산은 미래세대에 남길 가치가 있는 문화유산을 시가 매년 발굴해 선정하는 것으로, 현재 49개가 존재한다. 그러나 미래유산으로 지정되어도 지원 대책이 뒷받침되지 않아 보존은 선언적인 수준에 그치고 있다. 책방골목 건물이 통매입으로 줄줄이 팔려나가고 있지만 부산시는 별다른 대책이 없는 상황이다. 부산시 박은자 문화유산과장은 “재정이나 행정적으로 지정할 수 있는 근거가 없어 당장 지원에 나서기는 어렵다”고 전했다. 중구청 문화관광과 고은화 시설운영계장도 “현재 책방골목의 상황을 조사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대책에 대한 논의는 아직 없다”고 밝혔다.

책방골목의 상황이 이러다 보니 책방골목 내에서도 관할 지자체를 탓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책방골목 A 책방 대표는 “시민과 전문가는 머리를 맞대고 어떻게 해서든 책방골목을 살려보겠다고 방법을 논의하고 있는데 구청과 시청에서는 어떤 행정적인 고민도 없다”고 꼬집었다.

그동안 부산시와 중구청의 책방골목 살리기 지원이 단편적으로 이뤄졌다는 비판도 높다. 적극적인 개입보다는 책방골목 살리기에 나선 시민을 지원하는 식으로 이뤄지면서 실질적인 효과가 없는 일회성 대책만 쏟아냈다는 것이다.

최근 부산시가 주민들이 제안한 문학정거장 설치안을 시정 협치 사업으로 선정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문화정거장 사업은 중구 학생과 건축가가 함께 설계에 참여해 보수동 책방골목 앞에 정거장 모양의 조형물과 LCD 전광판 등 공공조형물을 세우는 사업이다. 예산 5000만 원이 투입되며, 시의회 심의를 앞두고 있다.

이를 두고 관에서는 따로 해줄 것은 없고, 시민이 책방골목을 살리는 것은 지원하겠다는 식의 ‘면피 행정’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와보시집 1집과 문예집 발간을 주도한 혜광고 김성일 교사는 “책방골목의 어려운 사정을 듣고 전국에서 도움을 주고 있는데, 정작 구청이나 시청 차원의 종합적 대책이 없어 그저 난감할 따름”이라며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다.

변은샘 기자 iamsa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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