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와 ‘당대’ 이루는 요소 불균형 때 변화 ‘꿈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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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이동으로 보는 한국사/이정철

는 한국사에서 다섯 차례의 권력 이동을 분석한 책이다. 삼국통일전쟁에서 여말선초까지, 구체적으로 642년부터 1392년까지를 다룬다. 642년은 삼국의 통일전쟁이 본격화한 해이고, 1392년은 조선이 건국한 해이다. 저자는 시대와 당대를 구성하는 요소들 사이에 불균형과 불안정이 조성될 때 새로운 균형점에 도달하기 위한 변화와 꿈틀거림이 권력이동이라고 본다. 그것은 1~2년이 아니라 수십 년 혹은 100년이 걸리는 과정이다.

왜 권력이동의 역사를 들여다보고 있는가. 우리 당대 대한민국을 제대로 보자는 뜻을 품은 것이다.

삼국 통일전쟁~조선 건국 750년사
신라 외교력·골품제·호족·반원…
강점이 단점으로 변하는 역사 조명
“지금 한국사회도 심한 불균형 상태”

5개 장 중에서 Ⅰ장 ‘7세기, 당나라의 등장과 삼국의 생존 투쟁’(642~676)에서 권력이동을 촉발한 가장 큰 요인은 대제국 당(618~907)의 등장이다. 이 대외 요인을 가장 잘 이용한 것이 신라의 김춘추와 김유신 연합세력이었다. 김춘추는 목숨 걸고 당과 왜, 그리고 고구려를 오가며 곧 국제전이 벌어질 동아시아 판도 속에서 ‘약한 신라’를 떠받치는 ‘강한 외교 축’을 구축한다. 이런 김춘추를 신라 안에서 떠받친 맹장이 김유신이었다. 절묘한 외교력, 지배세력 내의 단합이 고구려 백제 신라의 운명을 갈랐다고 한다.

Ⅱ장 ‘통일 왕국의 파편화’에서 100여 년간 한국사에서 유례없는 번영의 시기를 구가한 통일신라를 파탄 낸 것은 골품제였다고 한다. 이전에 사회를 결속시켰던 골품제가 이제는 사회 발전을 저해했다는 거다. 강점이 단점으로 변하는 것이 역사다. 신라 전성기의 경덕왕(742~765)은 문화 진흥으로 신라의 정신적 일체감을 고조시키려 했다. 이미 그때 신라 하대의 파탄을 예고하는 정치적 양상이 노출됐다고 한다. 불국사 석굴암 성덕대왕신종 등은 사회적 위기가 탄생시킨 걸작이었다고 한다. 신라 하대 개혁세력으로 등장한 것이 6두품이었다. 6두품은 신라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뒤이어 전혀 다른 성격을 지닌 새로운 사회세력인 지방 호족들이 등장하고 통일신라는 역사 속으로 잦아들었던 거다. 신라 진골이 6두품의 개혁 요구를 받아들였다면 호족은 등장하지 않았을 거라고 한다.

Ⅲ장 ‘호족의 시대’에서 후삼국 분열 시기는 한국사 전체에서 가장 역동적인 시기였다고 한다. 이런 대단한 사회적 정치적 대변화가 진행된 시대가 없었다는 거다. 이른바 영웅의 시대였다는 거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호족의 시대를 신라 말 889년에서 고려 4대 왕 광종(949~975) 때까지 60~80년간으로 보고 있다. 889년(진성여왕 3) 원종과 애노의 난으로 사실상 신라는 파탄 나 호족의 시대로 접어들었으며, 이 호족의 시대를 종식시킨 것은 가혹한 숙청을 동반한 광종 개혁이었다는 거다. 그 개혁이 안착한 것도 실은 6대 성종 때였다. 호족의 시대는 넓게는 100년 정도이다. 진골과 6두품이 타고난 신분이라면 호족은 각자가 분투하여 획득한 사회적 지위였다. 격변기에 스스로 노력으로 무력과 경제력을 획득한 야심만만한 존재가 호족이었다는 거다.

Ⅳ장 ‘원간섭기 고려 국왕들의 개혁’에서 원간섭기는 1259~1356년, 100년 정도였다. 이 시기의 핵심은 고려 국왕에 대한 원나라의 배타적인 책봉과 그에 따라 자주와 예속, 반원(反元)과 친원(親元)의 동거였다. 이 시기는 오늘날 한국과 미국의 관계를 연상시킨다고 한다. 원나라가 구축한 세계제국이 ‘진정한 현실’이라고 생각한 이들이 많았는데 그 속에서 자주파와 예속파로 갈리는 각각의 정치 세력이 나왔고, 국가 정체성을 놓고 지배층 내부 의견도 갈렸다.

Ⅴ장 ‘개혁에서 건국으로’에서는 1356~1392년까지를 다룬다. 14세기 고려의 두 가지 과제는 원나라의 정치적 지배를 벗어나는 것과 전민(田民) 개혁을 통해 민생을 개선하는 거였다. 하나는 공민왕이 완수했고, 다른 하나는 이성계 세력이 완수했다. 토지 개혁인 전민 개혁을 추진한 이는 이성계를 업은, 권문세가 출신의 조준(1346~1405)이었다. 저자는 정도전 사상이 아니라 조준의 전민 개혁에 의해 조선 왕조가 열렸다고 본다. 전민 개혁은 너무나 철저한 개혁이어서 왕조가 바뀔 수밖에 없었다는 거다.

저자는 “지금 한국사회는 매우 심한 불균형한 상태에 놓여 있으며 큰 폭의 변화(권력이동)가 진행 중”이라고 말한다. 군부·개발 독재와 그 에피고넨 시대가 있었고, 이후 민주화 시대도 30여 년에 걸쳐 보혁 갈등으로 출렁거리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가 합의한 윤리적 가치의 힘이 강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엘리트가 아니라 보통 사람들이 만든 거라고 한다. 이정철 지음/역사비평사/618쪽/2만 8000원.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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