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병삼의 타초경사(打草驚蛇)] 정치와 행정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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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대 자유전공학부 특임교수

국민의힘이 대통령 후보로 전 검찰총장 윤석열을 선출했다. 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맞붙게 되었다. 둘은 내년 3월까지 자신이 어떤 사람이며, 어떤 비전으로 나라를 이끌 것인지 국민에게 제시하고 또 설득해야 한다.

동아시아 정치의 핵심은 인치(人治)다. 인치는 권력자의 자의적 통치로 여겨져 미움받지만, 오늘날 식으로 정확하게 번역하면 ‘리더십’이다. 법과 제도가 필요 없다는 뜻이 아니다. 제도 역시 사람이 만드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정치는 인치로 수렴한다. 에 ‘그 사람이 있으면, 그 정치가 일어나고, 그 사람이 없으면 그 정치가 사라진다’고 하였으니 이런 뜻을 표나게 드러내었다. 공자와 자로와의 대화 속에 정치가 무엇인지 얼핏 드러난다.

동아시아 정치의 핵심은 인치(人治)
난데없는 일에 대처하는 무위의 세계
용기·결단력 넘어 지성을 쌓아야

자로는 칼잡이다. 무인들은 단순하다. 옳고 그름이 선명하다. 또 우직하다. 옳다 싶으면 외길이다. 자로가 꼭 그랬다. 공평무사해서 한쪽 편 말만 듣고 판정해도 모두 승복할 정도였다. 사사롭지 않기 때문이었다. 당대 제일의 무사였으니 용맹함을 스승조차 인정할 정도였다. 그래서 스승에게 물었다. “군자는 용맹을 우선으로 삼는 사람이겠지요?” 공자의 답은 이랬다. “아니다. 군자는 의(義)를 우선으로 삼지. 군자가 용맹을 우선으로 삼으면 반란을 일으키고, 소인이 용맹을 뻐기면 깡패가 되지.”

사물은 척 보면 알 수 있을지 몰라도, 사람은 척 보아 알 수 없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이 이 뜻이다. 공자가 깨우쳐 주고자 한 것은, 정치란 칼잡이의 단순우직한 용맹으로 처결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사람됨을 알고, 적재적소에 등용하는 인치의 능력이 정치의 기초라는 말씀이다.

그런 자로가 ‘절친’인 자고를 요충지의 책임자로 만들었다. 공자가 쏘아붙였다. “남의 자식 하나 잡겠구나!” 깜냥이 아닌 사람에게 중책을 맡기면 일도 망치고 사람도 죽이는 수가 있다는 비판이다. 그러자 자로가 발끈한다. “아니, 꼭 책을 읽어야 학문을 했다고 하겠습디까? 백성들 있겠다, 사직 귀신이 보호해 주시면 되는 것이지!” 사람들 환심 사고 귀신들 잘 섬기면 정치지, 뭐 따로 있겠느냐는 것. 공자가 또 가만히 있을 사람이 아니다. “내 이래서 말만 번지레한 놈을 미워한다니깐!”( ‘자로’ 편)

정치란 사물의 이치와 인간의 심성을 알아야만 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학이시습지 불역열호’는 학자의 요건이 아니라 정치가의 조건이다. 에 자고를 ‘우매하다’고 한 비평이 있고, 또 자로가 몸을 던지는 결정적 순간에 자고는 도망가고 말았으니, 자로의 사람 보는 눈이 결국 일도 망치고 제 목숨도 앗고 만 셈이다.

용기와 결단력은 정치가의 중요한 덕목이다. 그러나 지성이 없이는 국민을 오도하여 나라를 망치는 수가 있다. 머지않은 예가 김영삼 대통령이다. 김 대통령은 정치를 읽는 감각이며 민주화에 대한 열정이며, 추진력이 대단했다. 다만 공부하지 않는 점을 변명하기로 ‘머리는 빌릴 수 있지만, 건강은 빌리지 못한다’고 했다. 아이러니한 점은, 머리를 빌리려면 빌릴 머리를 알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빌릴 머리를 먼저 알지 못하여 결국 아이엠에프의 위기를 초래하고 말았다.

의 저자 이지함 선생의 일화가 떠오른다. 누가 하소연하기를, ‘좋은 머슴 하나 소개해 달라’는 것이다. 선생의 답변인즉, ‘좋은 머슴 찾는 것보다 좋은 주인 되기가 쉬울 것’이라고 했다. 좋은 사람은 좋은 주인의 눈에 걸려든다. 결국 정치는 단 한 사람의 책임으로 귀결되니 인치가 어찌 중차대한 일이 아니리오.

김종인 전 위원장이 “선거 캠프에 몰려드는 ‘자리 사냥꾼’을 잘 선별하지 못하면 대통령 당선에도 문제가 생기고, 대통령이 된다 해도 많은 문제를 야기한다”라고 한 조언은 윤석열 후보가 새겨들어야 할 점이다. 다만 사람 보는 눈이 하루아침에 생길 수 없으니 염려스럽다.

오해하곤 하지만 정치는 행정과 다르다. 행정은 길이 있기에 행(行)이다. 행정이 궤도 위를 달리는 전차라면, 정치는 ‘공연 중에 난데없이 터지는 총소리’(스탕달)와 같다. 아니 ‘요소수’가 이렇게 중요한 줄 누가 알았겠는가 말이다! 저 자로가 ‘정치란 무엇인가’를 물었을 때 공자가 ‘먼저 알고, 대비하는 일’이요 또 ‘긴장을 놓치지 않는 것’이라고 답한 까닭이다. 군대식 표현을 빌리자면 ‘작전에 실패한 장군은 용서받아도 경계에 실패한 장군은 용서받지 못한다’가 정치의 영역이다.

이재명 후보는 경기도정을 이끌면서 선명한 공적을 남겼다. 그러나 행정은 효율성과 경제성이 중요한 유위의 세계이지만 정치는 난데없는 일에 대처하는 무위의 세계다. 매사를 말로 표현할 수 있고 사업을 의지로써 성취할 수 있다고 여기는 그 씩씩함이 오히려 염려스러운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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