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철도 자판기엔 왜 점자가 없지?”… 학생들이 나섰다
“음료수 자판기에 점자가 없다면 시각장애인들은 어떻게 이용할까?”
부산의 한 중학교 학생들의 이런 질문을 던지며 ‘모두를 위한 자판기’ 만들기에 나섰다. 주인공들은 부산 강서구 덕문중학교 학생들. 이들은 올해 9월 연제구 도시철도 1호선 연산역 역사 내에 있는 9개의 자판기에 점자 스티커를 붙이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들은 음료수마다 이름을 일일이 점자로 제작해 자판기에 붙였다.
가덕도 덕문중 동아리 학생들
‘모두의 자판기’ 프로젝트 시행
우여곡절 끝 스티커 직접 제작
연산역 자판기에 점자판 부착
“작은 변화 만들어 더불어 살기”
이번 프로젝트는 학교 내에 소수자와 장애인 인권을 위한 인권탐구 동아리가 주도했다. 동아리 담당 교사인 정예설 교사는 한 언론보도에서 부산 도시철도 역사에 있는 자판기에는 시각장애인 점자판이 없다는 사실을 접하고 학생들과 논의를 시작했다. ‘우리가 바꾸자’는 학생들의 뜻이 하나둘씩 모였다. 전교생 33명의 작은 학교에서 13명이 해당 프로젝트에 참여의 뜻을 밝혔다. 전교생의 절반 가까이 행사에 참여한 것은 ‘작지만 함께 사는 것’의 의미를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덕문중 이말숙 교장은 “전교생이 30여 명인 작은 학교지만 특수반 학생을 구별하지 않고 가르치며 서로 경계를 허물고 이해하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작은 변화을 시작할 곳으로 연산역을 선정했다. 장애인들이 많이 이용하는 부산장애인종합복지관과 가장 가까운 역사였기 때문이다. 이후 정 교사는 부산교통공사와 자판기 임대인들로부터 동의를 받았다. 학생들은 점자 제작을 담당했다. 자판기 9대에 붙일 스티커는 200여 개에 달했다. 점자를 한글자씩 수작업을 해야 하는 기계를 다루는데 능숙하지 않아 폐기한 스티커만 300개가 넘었다. 점심시간은 물론 방과 후에도 짬짬이 시간을 낸 결과 한 달 만에 작업을 마쳤다.
정 교사는 “제작 과정 중에 실수도 잦았지만, 학생들과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의미를 살리며 의기투합했다”고 제작 당시 장면을 떠올렸다.
이들은 직접 제작한 점자 스티커를 자판기에 붙이면서 기쁨을 느꼈다. 김다희(3학년) 학생은 “시각장애인 정보 접근권을 위해 이번 봉사에 참여했는데 너무 뿌듯했다”면서 “장애인은 도와줘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사회가 애초에 불편하지 않게 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덕문중은 장애인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활동에 앞장서고 있다. 학교 측은 코로나19 상황 속에 청각장애인들의 의사소통 어려움을 공유하고자 입 모양이 보이는 마스크를 쓰는 ‘립뷰 마스크 데이’ 열기도 했다. 인권 동아리 소속 학생들은 장애 공감 그림책을 만들기도 했다. 학생들이 직접 스토리를 짜고, 그림을 그린 그림책 두 권은 부산교육청 SNS에 소개되기도 했다. 이들은 ‘모두의 자판기’ 프로젝트를 확대해 다른 역사 내 자판기에도 점자 스티커를 붙이며 ‘작은 변화’를 지속적으로 만들 예정이다. 이 교장은 “학교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생활하면서 더불어 사는 방법을 배운 학생들이 지속적으로 의미있는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김성현 기자 kksh@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