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연료봉 보관 수조가 현대미술관에 설치됐다?
‘올해의 작가상’ 후보 방정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전시
흐물흐물해도 되는 것과 흐물흐물하면 안 되는 것.
“한국의 정치 풍경과 플라스틱화된 생태계를 ‘흐물흐물’이라는 하나의 단어가 관통합니다.” 방정아 작가는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2021’ 전시에서 기존의 강고한 것이 무너지고 있는 현실을 보여준다. 그는 전시에서 주피터 프로젝트, 원전 문제 등 자신이 살고 있는 부산의 이야기도 풀어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방 작가를 직접 만났다.
‘흐물흐물’ 키워드로 삼은 전시
일상적 풍경 이면의 현실 풍자
‘주피터 프로젝트’ 보도서 착안
주한미군 문제도 화폭에 담아
걸개그림 ‘플라스틱 생태계’선
환경위기로 흔들리는 현실 경고
방 작가는 김상진, 오민, 최찬숙 작가와 함께 올해의 작가상 2021 후원 작가에 이름을 올렸다. 방 작가는 1980년대 민중미술 2세대 작가로 홍익대 회화과를 졸업했다. 일상, 여성, 환경과 현대사의 중요 사건에 관심을 두고 작업을 해왔다. 이번 전시에서 방 작가는 대형 회화 작품을 선보인다. 두 개의 섹션으로 나뉜 전시장에서 ‘지금 여기’ 일상적 풍경 이면에 존재하는 또 다른 현실을 보여준다. 그는 ‘흐물흐물’이라는 큰 주제를 정치적, 환경적으로 풀어냈다.
첫 번째 섹션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작품은 ‘미국, 그의 한결같은 태도’이다. 멀리 바다가 보이는 노천 족탕 한가운데 석가산 형상의 인공조형물이 있다. 그곳에 늙은 남자가 군용 배낭을 메고 앉아 있다. 작가는 부산항 8부두에서 미군의 생화학 실험 의혹을 제기한 <부산일보> 주피터 프로젝트 보도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했다. “시민들이 강력하게 반대하지만 꿈쩍도 안 하는 미국의 태도를 담아냈어요. 동시에 국제 사회에서 힘이 빠졌는데도 안 나가고 버티는 모습이기도 하죠.” ‘팠어 나왔어’는 부산시민공원 부지에 주한미군이 남기고 간 오염물질 문제를 다룬다.
방 작가는 분단의 문제도 작품에 반영했다. ‘축 발전’ 화환이 늘어서 있지만 정작 주인공은 보이지 않는 그림이나, 작가로 보이는 여성들이 문의 전화를 받는 ‘전시중입니다만’을 통해 정전협정이 계속되는 한국의 상황을 표현했다.
작가는 변하지 않을 것 같은 현실에서 변화를 읽어냈다. “기존의 체제, 가치관, 권위가 달라지고 균열이 생긴다는 느낌이 들어요. 붓 터치에서 선을 확정하지 않고 갈라지는 듯 표현한 것도 그런 변화를 목도하는 목격자로서 이야기하는 겁니다.”
‘흐물흐물’이 가진 액체성은 코로나19로 모든 것이 다 흔들리는 지금 시대와도 어우러진다. “모든 단계에서 흔들리고 있어요. 정치 풍경에서는 좋은 쪽으로의 변화도 있지만, 생태에서는 흐물흐물 안 해야 할 것들이 흐물거리고 있어요.” 방 작가는 ‘플라스틱 생태계’ 섹션으로 환경 위기를 경고한다. 면 천에 크레파스로 그린 정물화 ‘복숭아와 배’는 제철이 다른 두 과일을 통해 인간에 의해 교란된 식생활을 이야기한다.
두께와 재질이 다른 광목천 조각을 이어 붙인 대형 걸개그림 ‘플라스틱 생태계’는 전시 방식이 독특하다. 전시실 벽에 일정 높이까지 푸른색을 칠하고 조명을 추가했다. 걸개그림을 감상할 때 앉을 수 있게 사각형 설치물도 놓았다. ‘원전 폐연료봉 저장 수조’를 상징하는 것으로, 원전 30km 반경 이내에 사는 작가가 일상적으로 느끼는 위기감을 드러낸다. 방 작가는 2016년부터 핵 문제를 작업에 반영하고 있다.
“그림에 형식적으로는 불화 탱화나 민중미술 걸개그림의 형태를, 내용적으로는 플라스틱화한 생태계에 대한 생각을 담아냈습니다.” 천에 그려진 꽃은 품종이 개량된 국화 이미지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왜곡되고 개량된 생태계가 원전 수조 안에 담긴 모습으로 핵의 위험까지 덧대졌다. 그림 속 멀리 보이는 두 사람의 모습은 미래 인류에게 보내는 작가의 메시지다. “젊은 세대는 환경을 위해 작은 실천이라도 하려고 애를 쓰잖아요. 전시를 통해 어른으로서 미안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한편, 올해의 작가상은 국립현대미술관과 SBS문화재단이 공동 주최하는 작가 후원 프로그램이다. 한국 현대미술의 가능성, 비전, 새로운 대안을 제시할 작가 4인을 선정해 신작 제작과 전시 기회를 제공하고, 이들 중 한 명을 최종 수상 작가로 선정한다. ‘올해의 작가상 2021’ 전시는 서울 종로구 소격동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내년 3월 20일까지 열린다. 02-3701-9500.
서울=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