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더디지만 우리는 분명 나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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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정 라이프부장·젠더데스크

지난해 11월부터 부산일보는 편집국 내에 젠더데스크를 신설해 운영하고 있다. 젠더 영역을 비롯해 공정, 차별, 혐오 이슈에 대한 뉴스 가치가 높아지며 이제 한국 언론들은 단순히 기계적인 중립 보도를 넘어 제대로 된 정보를 어떤 관점에서 전달하는지 굉장히 중요한 갈림길에 섰다.

이런 이유로 젠더데스크는 언론사에선 꼭 필요한 자리이며 많은 언론인들이 그 필요성을 공감하지만, 정작 많은 신문, 방송사 중 젠더데스크 보직을 둔 곳이 몇 곳 되지 않는다는 점은 안타깝다.

지난해 11월부터 젠더데스크 운영
전국 언론사 중 몇 곳 되지 않아

젠더 공정 혐오 차별 등 주요 갈등
제대로 된 시각 전달할 필요 있어

젠더데스크가 결론은 아니어도
더 나은 보도 시작점 될 수 있어


남성 중심의 인력구조와 특히 간부진 대다수가 남자인 한국 언론에서 젠더데스크는 솔직히 부담스러운 존재로 여겨지는 것 같다. 내부적으로 젠더데스크 설치에 대한 의견이 나오면, ‘그게 꼭 필요한가, 개개인 기자가 잘하면 되지!’ ‘당장 급한 영역이 아니다.’ ‘인력이 많지 않은 조직 특성상 젠더데스크 보직은 힘들다.’ 등의 이유로 실행되지 못하고 있다.

물론 이면의 다른 이유도 있다. 뉴스 클릭 수와 관심도가 언론사 수입으로 연결되는 상황에서 선정적인 뉴스, 갈등 뉴스는 분명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클릭을 유도하는 좋은 재료가 될 수 있다. 여성가족부, 한국기자협회, 학계 등이 내세우는 젠더 보도 가이드라인, 성범죄 가이드라인, 양성평등 가이드라인에 맞추면 이 같은 뉴스들은 대부분 내용을 수정하거나 언론사에서 지양해야 할 보도가 된다.

실제로 나는 지난 1년간 부산일보 젠더데스크로 활동하며 범죄 뉴스의 수정을 두고 담당 부서와 불편한 신경전을 하기도 했다. 담당 부서는 나쁜 놈이 얼마나 나쁜지 제대로 알려야 사회 전반에 경각심을 줄 수 있는데 젠더데스크의 렌즈를 거치면 그야말로 순한 맛 뉴스가 돼 버리니 기사의 힘이 약해진다는 항변이다. 기사의 주목도가 떨어지니 아쉽다는 말도 덧붙인다.

지금까지 문제없이 사용한 관용적 표현에 대해 지적하면 내부에선 불편해하는 시각도 있었다.

‘국민 누이’ ‘00계의 맏형’ ‘여제’ 같은 표현이 그러하다. 기사 주인공의 존재를 돋보이게 해주고 독자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말이지만, 젠더데스크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쓰지 말아야 할 표현이다. 우리 국민은 남성도 있고 여성도 있는데 주인공을 누이로 칭하면 우리 국민은 남성뿐이라는 뜻이 된다. 그 주인공은 누이이자 동시에 언니도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은 이치로 남자만 존재하는 분야가 아니라면 ‘00계의 맏형’은 틀린 표현이다. 남제라고 표현하지 않는데 여자만 굳이 여제라고 표현할 필요가 없으며 기사에서 자주 보이는 여직원 혹은 여교사같은 표현도 여자만 따로 성별을 표기하지 않아도 되기에 수정해 줄 것을 젠더데스크로서 자주 요청했다.

모든 뉴스가 분초를 다투며 온라인에 즉각 뿌려지는 요즘, 젠더데스크라는 또 한 명의 잔소리꾼이자 문지기(게이트키퍼)를 두는 것은 사실 언론사로선 쉽지 않은 결정이자 대단한 결심일 수 있다.

국내 언론사의 몇 안 되는 젠더데스크라는 사실 때문에 지난 1년간 여러 신문, 잡지, 방송과 인터뷰했고, 학술대회 토론자, 언론 관련 논문 대상자로 등장하기도 했다. 27년 차 신문기자로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사건을 취재하는 게 내 역할인데 지난 1년은 내가 인터뷰 대상이 되는 특이한 경험이었다.

사실 나서기를 좋아하지 않는데 젠더데스크로서의 인터뷰 요청들은 거절하지 않는 이유가 있다. 젠더데스크 도입을 망설이는 다른 언론사에 힘을 주고 싶은 마음이다.

젠더데스크 관련 인터뷰에서 꼭 받는 질문이 “왜 젠더 데스크가 필요하냐? 여성들이 자기들을 더 내세우고 싶어 그런 것 아닌가”이다. 이에 대한 나의 답은 이렇다. “젠더데스크는 젠더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소수자, 약자, 차별받는 이들까지 모두 보듬는 역할이다. 공정과 차별, 혐오가 우리 사회를 분열시키는 위기 상황이다. 유튜브 알고리즘은 편향적인 시각을 더 강화하고 있다. 젠더데스크가 이 모든 상황에 대한 해답은 아니지만, 노력의 시작임은 분명하다.”

오늘도 나는 쏟아지는 기사들을 성인지적 관점에서, 인권의 관점에서, 공정의 관점에서 살펴보고 있다. “젠더데스크가 그걸 어떻게 다 보냐? 99개 잘해도 1개 놓치면 잘못이 되는 건데. 잘해야 본전이네”라고 걱정해 주는 선배들이 있다. 하지만 좀 더 나은 부산일보의 보도를 위해,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일이다.

지난 1년간 젠더데스크로서 새긴 한 마디가 있다. “더디지만, 우리는 분명 나아가고 있다.” 오늘도 아주 조금은 앞으로 나간 것 같다.

teres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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