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비평] 온라인 시대의 언론 혁신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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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호 부산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수치는 종종 별다른 설명 없이도 많은 것을 이야기해 준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지난해 실시한 뉴스 수용자 조사 결과에 따르면 조사 대상자 중 종이신문을 읽는 사람의 비율은 10.2%에 불과했다. 10년 전의 52.6%, 20년 전의 81.4%와 비교하면 하락 속도가 놀라울 정도로 빠르다. 반면 현재 모바일로 뉴스를 이용하는 사람의 비율은 80.8%에 달했다. 종이신문의 뉴스 매체 위상도 하락하고 있다. 포털을 비롯해 온라인을 주된 뉴스 경로로 삼는 이의 비율은 42.2%에 달하지만, 종이신문이라고 답한 사람은 1.7%에 불과했다.

오늘날 뉴스 업계 종사자라면 누구나 급격하게 변화된 환경을 언급하고 혁신 방안에 관해 고민한다. 온라인 기술이 발전하고 플랫폼이 정보 유통의 중심으로 부상하면서 종이신문이 쇠퇴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운명과 같은가? 얼마 전의 경험만 돌이켜 보아도 꼭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신문사, 온라인을 종이신문 부속물 취급
혁신성장 포털에 뉴스 유통 주도권 뺏겨
사고방식 전환에서 미디어 혁신 시작돼
언론 신뢰도 높이는 다양한 노력도 필요

불과 20여 년 전인 1999년 네이버라는 벤처기업이 출범했을 때만 해도 이 포털이 뉴스 시장을 장악하는 공룡기업으로 성장하리라 예측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적어도 당시 뉴스의 온라인화에서 선두주자는 일간 신문사들이었다. 이들은 일찍부터 기사를 디지털화하고 홈페이지로 기사를 제공했다.

당시 인터넷이라는 매체의 엄청난 잠재력을 강조하는 전문가는 많았지만, 신문사들은 그런 주장에 거의 무관심했다. 신문사 홈페이지는 그냥 종이신문의 기사를 그대로 옮겨 싣는 수준에 그쳐 온라인 기사는 조직의 구색 맞추기에 불과했다. 온라인판 편집국은 취재 경험도 없는 순수한 기술자로 채워져 발언권도 없었다. 기사 제공 경로가 모바일로 옮아간 뒤에도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종이신문에서 잔뼈가 굵은 간부들의 경험과 자부심이 새로운 시대가 가져올 파괴력을 깨닫는 데 방해가 된 셈이다.

반면에 네이버 같은 포털은 일간지의 이러한 무관심을 최대한 잘 활용했다. 자체 취재진은 전혀 갖추지 않았는데도, 여러 종이신문의 기사를 거의 공짜나 다름없는 비용으로 받아 편집해 실었다. 뉴스 제공에 그치지 않고 토론방이나 블로그 공간도 마련해 이용자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했다. 이러한 저비용 혁신의 결과, 곧 보도와 여론 형성의 주도권은 포털에 넘어갔다. 신문과 포털 간의 관계는 갑과 을이 뒤바뀌고 말았다.

정보 이용의 온라인화는 광고 시장에서도 혁명적 변화를 가져왔다. 이러한 추세에 대한 대응 방식 중에서 눈여겨볼 부분은 바로 구글의 전략이다. 포털 초창기에만 해도 구글은 야후나 라이코스, 알타비스타 등 쟁쟁한 포털 중에서 존재가 미미한 후발주자였다. 그런데 구글은 정보와 광고 제공에 대한 대응 전략이 남달랐다. 우선 페이지랭크(PageRank)라는 검색 알고리즘은 정보의 중요도와 영향력만을 기준으로 검색 결과를 제공해 호응을 얻었다. 특히 다른 경쟁사와 달리 광고주처럼 자사 이해관계와 철저하게 분리해 검색 결과를 제공했다. 지금도 구글 첫 화면은 하얀색 배경에 구글 로고와 검색창만으로 이루어져 있다.

국내 신문사들의 쇠퇴는 기술 혁신에 먼저 나서고도 혁신의 잠재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는 점 탓만은 아니다. 가장 큰 패착은 포털에서 다른 언론과 경쟁이 치열해지자 콘텐츠의 품질을 희생하는 전략을 선택했다는 점에 있다. 언론사들은 클릭 수 경쟁에 몰두하면서 비슷한 기사를 반복해서 업로드하는 ‘어뷰징’ 관행으로 비난을 받았다. 기사 내용에서도 미확인 보도와 선정적 기사가 넘쳐났다. 기사 제목도 이른바 ‘낚시성’ 표현 남발로 네티즌들의 조롱거리가 되었다. ‘단독’과 ‘특종’ 남발에는 ‘혼자 베꼈네’, ‘제일 먼저 베꼈네’라는 식의 비아냥이 뒤따랐다. 기사로 위장한 광고성 기사 남발에서는 메이저 언론도 예외가 아니었다. 더 큰 문제는 이 모든 악습을 현실론으로 합리화하려는 도덕적 불감증이었다. 포털사들은 악습을 거듭하는 언론사의 포털 진입을 일시적으로 차단하는 강수까지 구사했는데, 모두 언론사들이 자초한 일이다. 유력 언론사들이 정보 검색 광고 회사인 구글 수준의 직업 원칙조차 지키지 못한 것이다. 그 결과는 언론 전반의 신뢰도 하락으로 나타났다.

혁신을 이야기하기는 쉽다. 변해 가는 환경에 맞춰 조직을 개편하고, 인력 운용 방안을 고민하고, 새로운 장비와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경영 컨설팅을 받는 등의 조치는 필요하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언론사 경영진부터 발상을 전환해야만 한다. 경험과 관행을 판단의 권위적인 근거로 삼는 것은 농경 시대에나 통하던 일이다. 미디어의 혁신은 사고방식의 혁신에서 시작해야 한다. 역사는 인간을 지혜롭게 한다. 과거의 실패에서 배우고 교훈을 얻을 수 있는 조직이라면 아직 희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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