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민주화의 빛나는 역사를 앞서서 만든 곳이 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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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민주운동사’ 집필위원장 홍순권 동아대 명예교수

역사가 현재, 미래와 잇닿아 있다면 부산은 과연 어떤 곳인가. 최근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은 <부산민주운동사> 전2권을 냈다. 1998년에 출간한 같은 이름의 책을 전면적으로 다시 쓴 것이다. 집필위원들은 부산 근현대사 연구자 등 17명. 집필위원장 겸 편집위원장을 맡은 홍순권(부마민주항쟁 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 동아대 명예교수를 만나 부산 현대사, 그 희망에 대해 들어봤다. 그는 “전 세계적으로 같은 예를 찾을 수 없는 한국 민주화의 빛나는 역사를 앞서서 만든 곳이 바로 부산”이라고 했다.

공업화·개방화·선진화 된 도시
독재정권에 민감할 수밖에 없어
부산 재야세력+학생·노동운동
1979년 부마민주항쟁으로 분출
한국 ‘민주화 중심’이란 자부심
지역 발전 위한 기여로 이어져야
부산 정치 보수화 시행착오 과정
역진적 민주화 몸살도 민주주의


-부산(마산)의 자부심은 뭔가.

“부산(마산)은 ‘세계적인 한국 민주운동사’의 중심축이었다. 요인이 있다. 먼저 한국전쟁 이후 가장 치열한 정치적 경험의 장이었다. ‘미점령 지역’으로 민간인 학살이 가장 많이 자행된 곳이며, 임시수도 시절 이승만 정권의 모순(국민방위군 사건, 부산 정치파동)을 적나라하게 목격한 곳이다. 여기에 공업화로 근대적 시민 형성이 가속화됐으며, 피란민이 대거 몰려든 개방적 도시로 선진화된 의식을 갖춰 독재정권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대학들이 많아 학생운동 기반이 축적된 것도 요인이었다.“

-1950년대 한국전쟁 경험, 1960년 3~4월 혁명, 1979년 부마민주항쟁은 시기상 각각 서로 떨어져 있는 게 아닌가.

“아니다. 끊어졌다고 보면 제대로 볼 수 없다. 임시수도의 지독하고 생생한 경험이 저 찬란한 3~4월을 만들어낸 것이고, 이후 우리의 민주주의 열망은 정치 탄압이 심하면 위축되고 잠잠했을 뿐, 완전히 장악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4월 혁명이 피워 올린 희망은 엄청난 것이었다. 그것은 우리의 정신 속에서 심장의 박동, 핏줄의 피돌기처럼 면면히 살아 있었다. 반유신투쟁의 결정판인 1979년 부마민주항쟁도 부산 지역사 내의 지성사적 흐름 속에서 분출했다.”

1974~75년 개신교계 최성묵 목사, 가톨릭계 송기인 신부, 법조계 김광일·이흥록 변호사 등이 부산 재야세력을 형성했고, 그것이 줄곧 학생·노동운동과 상호작용하다가 부마민주항쟁으로 분출했으며, 그런 ‘뱃심의 도시’ 부산이 나중에 노무현·문재인 대통령도 배출한 것이었다.

그는 ‘부마’의 경제적 배경도 말했다. “2차 오일쇼크와 정부의 중화학공업 배제로 인해 1970년대 말 부산(마산)이 경제적 위기에 봉착했다. 부마 때 기층 민중들이 대거 참여한 것은 그 때문이다.”

-1979년 ‘부마’와 1960년 3~4월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연결되나.

“4·19 이후 한국 최고의 진보 정치 세력이 산수(山水) 이종률 주도의 민족자주통일중앙협의회(약칭 민자통)이었다. 산수는 부산대 교수로 ‘민자통’은 이를테면 부산이 주도한 것이었다. 5·16 이후 ‘민자통’은 탄압받았다. 하지만 그러한 전통이 부산에서 정신적으로 강하게 이어졌고 ‘부마’로 이어진 것이다. 연결이 안 될 수 없다.” 산수의 사상은 부산에서 더욱 재조명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민주주의 역사를 단절적으로 보는 것은 결국 독재정권과 분단 체제 속에서 ‘한쪽’을 지운 결과, 아직까지 역사가 토막 나 있기 때문”이라며 “이를테면 외형적으로 일본이 근대 도시 부산의 건설을 주도했으나 거기에 대한 저항과 그 정신사적 계승 측면에서 부산의 뿌리는 동래이며, 나아가 동래 인물 중 월북한 김두봉은 대단한 거물인데 이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대단하다는 부산’의 현재를 보면 답답한 것도 많지 않은가.

“민주화 이후 부산의 정치적 보수화, 도시를 장악하려는 토건 세력 등등을 보자면 물론 그런 점은 있을 것이다. ‘1987년 체제’를 분기 삼을 때 이전은 ‘체제 변혁’, 이후는 ‘체제 내 개혁’ 시대인데, 요컨대 민주화 이후의 민주화가 더 어려운 것이다. ‘관점의 다양화’ 때문이다. 잘못된 관점조차 허용하면서 시행착오를 통해 극복해나가야 한다. 민주화를 뒷걸음질 치게 하는 ‘역진적 민주화’의 몸살까지 앓아야 하는 그 과정이 민주주의다. 하지만 관점이 다양하다고 진실이 가려지는 건 아니다. 4월 이후 60년에 걸친 한국 민주화 투쟁 속에서 경험적으로 체득한 우리의 시민 의식이 역사의 진실을 확인해 왔지 않은가. 지금 우리는, 세계가 부러워하는 ‘우리의 성취’를 믿어야 한다. 조금씩 변하고 있지 않은가. 다만 부산의 지성인들이 책임감을 가지고 더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어 그는 “부산이 민주화 운동의 중심 역할을 했다는 자부심이 정신적 영역으로 확대돼 지역문화 발전 위한 창의적인 기여로 이어져야 한다”고 했다. 또한 “인구·경제력의 지나친 수도권 집중에 맞서는 부·울·경 연대에도 민주화에 함께 기여한 지역 동질성과 정신적 자산을 잘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우리는, 부산은 어떤 포부를 지녀야 하는가.

“민주주의는 완전한 것은 아니지만 지금껏 인류가 선택한 최선의 제도다. 민주주의 발전에서 우리는, 시민혁명 이후에도 엎치락뒤치락한 서구에 비하면 아주 빠르다. 뿐만 아니라 근대적 사유, 사상, 정치 제도 발전 면에서 일본보다도 더 빠르다. 우리는 식민지 시대에도 민주주의와 공화주의를 꿈꿨다. 하지만 해방 이후 오랫동안 자신을 비하하면서 일본을 따라갈 수 없다며 독립운동의 가치나 스스로 만든 우리의 가치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는 제대로 보인다. 우리를 만든 힘이 무엇인가. 우리 국민의 자신감 성취감은 이제 짓밟을 수 없는 것이 됐다. 세계로 뻗어가고 세계가 인정하는 한류의 뿌리는 우리 스스로 성취한 민주화의 자신감에 있다. 싸워서 이긴 사람들에게 공포감은 사라진다. 지금 한국 문화는 공포감이 사라진, 뭐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충만하다. 세계가 놀라고 있지 않은가. 한국이 불원간 세계사적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기대한다. 부산은 이런 자신감과 성취감을 만든, 대단히 중요한 중심 지역이다. 부산은 역사를 추스리며 더욱 뻗어나가야 한다. 우리가 이런 맥을 잡아 계속 기억하고 뜻을 품는 일은 참으로 중요하다. 이번 <부산민주운동사> 발간 의미는 여기에 있다.

글·사진=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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