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한국 다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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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한국 드라마의 글로벌 열풍은 대단한 것이지만 개인적으로는 다큐멘터리에 더 끌린 한 해였다. 한국 다큐의 힘은 영화 ‘기생충’과 ‘미나리’의 성과 이전에 이미 세계적으로 정평이 나 있었다. 힘 있는 다큐의 아름다움은 달달한 로맨스나 거대한 판타지의 인공적 감동을 넘어선다.

올해 다큐 작품들도 마찬가지다. 가까운 10~11월 개봉작에 한정한다면, ‘노회찬 6411’ ‘1984 최동원’ ‘왕십리 김종분’ ‘너에게 가는 길’에서 깊은 인상을 받는다. 10월 개봉한 ‘노회찬 6411’은 너무나도 유명했던 고인의 방대한 행적을 정리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 치열한 편집 작업이 돋보였다. 11일 개봉한 ‘왕십리 김종분’은 팔순이 되도록 노점을 해 오고 있는 한 할머니의 열정 어린 삶을 담는다. 고단한 생을 이어 온 어르신의 일상을 다룬 것 같지만 그건 다큐의 절반일 뿐이다. 한참 후에야 알게 되는 그의 딸 이름은 김귀정. 1991년 민주화 시위 중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목숨을 잃은 ‘열사’다. 먼저 간 딸이 꿈꾼 세상을 위해 살아온 할머니의 30년이 김귀정의 24년과 포개진다. 감독의 시선은 따뜻하되, 결코 감상(感傷)적이지 않다.

역시 11일에 개봉한 ‘1984 최동원’은 ‘무쇠팔’ ‘부산의 심장’ ‘최고 투수’ ‘불꽃 투혼’ ‘레전드’ 같은 단어로 수식되는 바로 그 선수에게 바치는 10주기 다큐다. 이 다큐의 미덕은 비극적 영웅을 그리기보다는 진정한 스포츠맨의 존엄을 지키려 했다는 데 있다. 화면에 한가득 펼쳐지는 환한 미소가 슬픔을 허락하지 않는다. 17일 개봉한 ‘너에게 가는 길’은 커밍아웃한 자식을 둔 성소수자 부모의 용기 있는 삶을 다룬 작품이다. 너에게 가는 길이란 기실 사랑하는 사람을 이해하기 위한 여정인 것. 성 정체성 갈등이 아니더라도 부모·자식 관계에서 많은 이들의 공감을 받을 만하다.

인물 다큐는 통상 위대한 사람의 삶을 좇아 감동을 노리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그 무게감이 자칫 보는 이를 짓누를 수 있다. 이 다큐들은 주인공 역시 보통 사람임을 웅변한다. 늘 대중과 함께했던 노회찬이 그러하고, 50년간 노점상을 이어 온 김종분 할머니가 그러하다. 동성애자 가족 역시 뭔가 유별난 사람이 아니다. 그저 행복을 추구하는 보통 사람이다. 동료 선수 돌잔치에서 쉬지 않고 열창을 하던 순수한 모습의 최동원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한국 다큐의 힘이, 이른바 K콘텐츠의 중대한 한 축임을 깨닫게 되는 요즘이다.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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