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탄압’ 대원군… 손자(의친왕) 부부가 세례받은 까닭
오륜대 한국순교자박물관 대한제국기 의궤 소장품 도록
‘오륜대 한국순교자박물관’이 소장품 도록으로 출간한 210여 쪽 <대한제국기 의궤>는 ‘아이러니하고 놀라운 신앙의 섭리’를 보여준다. 대한제국기 의궤 2건은 가장 극심한 천주교 박해자의 손자 부부가 천주교 신자가 됐다는 ‘역사적 반전’을 증명한다. 모진 박해자는 흥선대원군이고, 손자 부부는 의친왕 이강(1877~1955)과 의친왕비 김덕수(1881~1964)다.
“할아버지가 많은 사람 죽여
속죄의 마음으로 천주교 귀의”
의친왕 입교 ‘반전 사연’ 담겨
의친왕 죽자 왕비가 의궤 기증
박해의 역사가 신앙으로 승화
조선에서 서학으로 받아들여져 동학의 탄생에도 영향을 준 천주교는 특히 참혹하고 아픈 순교 역사를 통해 토착화했다. 강토에 피로 새겨진 순교 역사는 의친왕 삶의 마지막 순간을 붙잡았다. 배일의 역사적 감각을 지녔던 의친왕은 1955년 “할아버지가 천주교인들을 많이 죽였으니 내가 속죄하는 마음으로 천주교에 귀의하겠다”며 의친왕비와 함께 천주교 신자가 됐다. 의친왕은 그 일주일 뒤 78세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의친왕이 타계하자 의친왕비는 간직하던 의궤 2건 등의 유물을, 천주교 신앙을 맺은 통로였던 한국순교복자수녀회에 기증해 오늘에 전하는 것이다. 의궤 2건은 ‘의왕영왕책봉의궤’(142쪽)와 ‘추봉책봉의궤’(162쪽)이다. 앞의 것은 1900년 고종 황제가 아들 둘을 각각 의왕(의친왕)와 영왕(영친왕)으로 책봉한 의례를 기록한 것이고, 뒤의 것은 1907년 순종 황제가 할아버지와 할머니인 흥선대원군과 여흥부대부인 민씨, 이복형인 완화군을 왕급으로 추봉하고, 이복동생인 의친왕의 아내를 의친왕비로 책봉한 의례를 기록한 것이다. 의궤 2건은 각각 의친왕과 의친왕비와 관련된 것으로 현재 국가 보물이며 세계기록유산이다.
대한제국의 황실 유물을 천주교회가 왜 소장하게 되었는지를 증명해야 하는 만만찮은 과정이 있었다. 소장 근거가 분명해야 문화재로 지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순교자박물관장 배선영 수녀는 “기증하고 기증받은 당사자들은 이미 고인이 되셨기에 의궤 등의 유물을 의친왕비가 기증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일은 수 년간에 걸쳐 어렵게 이뤄졌다”고 했다. 의친왕비 친정 조카, 미국에 거주하는 의친왕 딸을 통해 유물 기증 현장에 있었던, 의친왕비를 22년간 모셨던 ‘의친왕비 친정 조카며느리’를 만나, 그것도 겨우 설득해 증언을 확보했다는 것이다. 길게 2009년 말부터 2016년까지 6년 이상이 소요된 과정이었다고 한다. 의궤 2점은 2016년 5월 보물로 지정됐던 것이다.
천주교 부산교구장 손삼석 주교는 “황실 유물이 천주교회에 기증된 것은, 박해의 역사가 신앙으로 승화된 생각지도 못한 역사를 보여주는 것”이라며 “이 모든 것은 하느님 섭리가 아니고는 설명할 수 없다”고 했다.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