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동윤의 비욘드 아크] 도시 부산 텔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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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상지엔지니어링건축사사무소 대표이사

건축물은 모두 친환경 디자인을 적용해 만들고 교통은 자율주행 전기차로 이뤄진다. 고층 건물에는 물 저장고와 수경재배 농장이 있고, 전기는 모두 태양광 발전시설로 돌린다. 모든 땅은 지역사회가 소유하고 시민들에게 임대한다. 임대 수익은 다시 공공서비스를 위해 사용되므로 시민들은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으며 저렴하게 주거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시민이 직장과 학교, 각종 생활 편의 시설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15분 도시’를 표방한다. 면적은 15만 에이커(607㎢)로 서울 면적과 비슷하다. 첫 입주는 2030년이다.

지난 9월 억만장자이자 전 월마트 최고경영자 마크 로어가 미국 사막에 세우겠다고 발표한 도시 ‘텔로사’다. 도시의 슬로건은 ‘공정하고 평등한 도시’로, 아리스토텔레스가 이야기했던 ‘텔로스’에서 따왔다. ‘텔로스’는 최고의 목적을 의미한다. 로어는 빈부격차의 대부분은 토지 소유권 때문이며 현재 미국 부유층 대부분은 그 선조가 땅에 말뚝을 박고 자기 것이라고 주장한 행운으로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헨리 조지로부터 영감을 받아 텔로사 계획을 세웠다. 헨리 조지는 토지는 한정된 자원이라 이를 통한 이익을 일부 사람만 가져가면 불평등은 심화할 수밖에 없으니 정부가 지대를 환수해 공공을 위해 써야 한다는 제도를 제안한 사회 이론가다.

미국 사막에 세워질 계획도시 텔로사
불평등 해소와 친환경 목표 거주 공간
공동체의 생태적 가치 깊이 고민해야

로어는 이미 교통 계획자, 엔지니어, 도시 역사가 등으로 구성된 팀을 고용했다고 한다. 미국의 억만장자가 토지공개념에 바탕을 둔 신도시를 건설하겠다는 이유는 자본주의 불평등을 해소하겠다는 것이다. 로어가 계획한 도시는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 도시에 가깝다. 하지만 이에 대한 전망은 갈라진다. 도시가 자연발생적인 방식에 의해 오랜 시간에 걸쳐 진화한 유기체로 보면 설계자의 의도대로 쉽게 작동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로어가 구상하는 텔로사의 성공 여부와 상관없이 그의 시도에 찬사를 보내고 싶다. 팬데믹을 거치면서 세계는 집값 상승과 불평등 심화로 몸살을 앓고 있다. 공정, 평등, 생태는 이미 시대의 화두다. 이를 해결하려는 고민은 도시에서 시작된다. 텔로사가 표방하는 도시에서 토지는 공유하고 개인에게 임대료를 받는다는 것만 빼면 '15분 도시'의 개념이 남는다.

‘15분 도시’는 2014년 파리의 첫 여성 시장으로 선출된 안 이달고 시장이 2020년 재선에 성공하면서 제시한 공약이다. 공약 슬로건은 ‘모두의 파리’로 도시 이용에 있어 모든 시민의 권리 존중과 주택공급 정책 다양화 등이 포함되어 있다. 파리 어느 곳에 살든 주민은 학교, 직장, 가게, 공원, 문화시설, 의료시설과 같은 각종 편의시설을 도보나 자전거로 15분 안에 이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시내 주차 공간의 절반을 없애고 자전거로 파리의 모든 길을 통행할 수 있도록 정비하겠다는 내용도 담겨 있다. 자동차 없이도 일상생활이 가능한 도시를 지향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프랑스 소르본 대학 카를로스 모레노 교수는 생태학, 근접성, 연대 그리고 참여라는 4가지 핵심이 15분 도시를 구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근대 도시계획의 문제를 안고 있는 도시라면 어디든 적용할 수 있다. 캐나다의 오타와가 이를 공식화했고 호주의 멜버른과 미국의 디트로이트는 20분 도시를 장기 발전 계획으로 잡았다. 지난 4월 보궐 선거로 당선된 박형준 부산시장의 1번 공약도 ‘15분 도시’였다. 박 시장은 당선 후 연일 이어진 행보에서 ‘15분 도시’를 강조해 왔다.

그렇다면 부산의 ‘15분 도시’는 어떠한가. 원래 ‘15분 도시’의 핵심은 걸어서 15분, 자전거로 15분이다. 이는 속도와 개발 위주의 도시 계획에서 벗어나 생태와 공동체의 가치 회복과 미래 세대를 염두에 둔 장기적인 패러다임의 재고를 의미한다. 광역연결망 어반루프와 함께 등장한 부산의 ‘15분 도시’는 시작부터 삐걱댔다. 걸어서 15분은 맞는데 자전거 대신 차로 15분이니 생태는 고사하고 범위마저 애매해졌다. 하마터면 ‘15분 도시’의 연결점이 될 어반루프 대신 등장한 어린이 복합문화공간은 그래서 반갑다. 집에서 도보로 15분 내에 이용 가능한 생활밀착형과 차량으로 15분 내 이용 가능한 거점형으로 2030년까지 총 500개의 크고 작은 어린이도서관을 포함한 복합문화공간을 ‘15분 도시’의 거점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아이와 부모가 함께 이용할 수 있는 어린이 복합문화공간은 동네 커뮤니티 공간의 역할도 기대할 수 있다.

박형준 부산시장은 각 구를 돌며 ‘15분 부산 도시 비전 투어’를 진행하고 있다. 1년도 채 남지 않은 임기 안에 성과를 기대하기는 힘들겠지만 그 행보가 부산 시민의 미래를 위한 것으로 축적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공동체의 생태적 가치에 대한 깊은 철학적 고민으로 시장이 바뀌면 폐기될 일회성 정책이 아니라 수정하고 더해 가며 부산이 ‘도시의 텔로스’로 가는 단초를 열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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