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에 흉어까지… 멸치잡이 고사 위기
“나가봤자 빈손일 텐데, 기름값이라도 아껴야죠.”
8일 오후 1시께 경남 통영시 동호항. 평소라면 조업에 나선 어선들로 한산해야 할 항구가 크고 작은 어선들로 북적인다. 물양장을 따라 2중, 3중 빼곡히 줄지어 선 통에 빈틈을 찾기 어려울 정도다. 대부분이 파란 지붕을 얹은 멸치잡이 권현망 선단선이다. 허망하게 하늘을 쳐다보던 한 어민이 깊은 한숨을 토해낸다. 선단 어로장인 그는 “종일 투망해도 인건비도 못 채운다”며 “어제도 반나절 만에 철수했다”고 푸념했다.
어획고 추락 두 달간 개점 휴업
어획난 심각했던 전년보다 감소
감염병 창궐 소비 줄어 이중고
통영 선단 급감… 뿌리째 흔들
경남 남해안 멸치잡이 업계가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한 가격 폭락에 유례없는 흉어까지 겹쳐 전전긍긍이다. 참다 못한 어민들은 앞다퉈 감척에 뛰어들고 있다. 정부 보상금을 받아 남은 빚을 청산하고 사업을 접겠다는 의미다. 이대로는 100년 넘게 국민 먹거리를 책임져 온 전통산업이 고사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경남 통영에 본소를 둔 멸치권현망수협에 따르면, 가을 어기가 시작된 7월 이후 최근까지 조합 공판장을 통해 거래된 마른 멸치는 1만 3500여t이다. 어획난이 심각했던 지난해 같은 기간 1만 6700여t과 비교해도 20% 이상 줄었다. 수협 관계자는 “8월을 지나면서 어군이 형성되지 않고 있다. 특히 지난 두 달은 위판장이 개점 휴업 상태나 다름없을 정도로 어획고가 떨어졌다”고 전했다.
어민들은 지구온난화로 인한 이상 수온을 원인으로 꼽는다. 특히 지난여름 기승을 부린 고수온으로 연안에 산란한 멸치알이 제대로 부화하지 못하면서 멸치 떼가 사라졌다는 설명이다.
생산이 줄면 가격이라도 좋아야 하는데, 오히려 곤두박질쳤다. 1kg당 평균 단가가 7000원에서 4700원대로 폭락했다. 소비 시장이 얼어붙은 탓이다.
마른 멸치는 생산량의 대부분이 국내에서 소비된다. 그만큼 내수 경기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이맘때 잡히는 멸치는 주로 10cm 내외의 국물용 큰 멸치다. 주로 식당 등 요식업계에서 대량으로 소비한다. 그런데 코로나19로 외식 문화가 위축되면서 이 물량이 급감했다. 1년 넘게 재고가 쌓이면서 최근 잡은 질 좋은 상품조차 제값을 받지 못하고 있다.
채산성이 떨어지면서 선단 대부분은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권현망 선단은 멸치 떼를 쫓는 어탐선과 그물을 끄는 본선(2척), 가공선(2척)까지 보통 5척이 팀을 이뤄 조업한다. 세력이 크다 보니 출어 경비도 많이 든다. 인건비에 유류비를 합쳐 하루 조업에 최소 1000만 원 이상 필요하다. 하지만 요즘 하루 어획고는 잘해야 200만~300만 원이다. 조업할수록 빚만 쌓이는 악순환이다. 배를 묶는 게 최선이라는 푸념이 나오는 이유다.
더는 버티기 힘들다고 판단한 어민들의 ‘감척’ 신청도 줄을 잇는다. 감척은 정부로부터 폐업보상금을 받고 관련 어업에서 손을 떼는 제도다. 경남지역 멸치잡이 권현망선단은 총 52개. 올해 해양수산부가 진행한 연근해어선 감척 사업에 상반기 6개, 하반기 11개 등 총 17개 선단이 신청서를 냈다. 전체 선단 3곳 중 1곳이 사업 포기 의사를 밝힌 셈이다. 이 중 9개 선단에 대한 폐업이 확정됐다.
업계 관계자는 “내년에도 10개 선단을 대상으로 감척이 진행될 예정”이라면서 “지금 추세라면 경남 남해안 멸치잡이 선단은 32개만 남게 된다. 자칫 산업의 기반이 뿌리째 흔들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최소한의 경영 환경은 보장해야 한다”며 “멸치는 국민 건강에 필요한 먹거리인 데다 저장성도 좋다. 쌀처럼 정부가 일정 물량을 수매해 가격을 지지하고 경영난을 겪고 있는 어민에게 특별영어자금을 지원하는 등 맞춤형 지원책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글·사진=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