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여는 시] 핵발전소가 보이는 기우듬한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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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호(1951~ )

누구나 다 말하지 못한 그림자가 있다

불과 밤을 함께

말하려하지 마라

저녁 무렵이면 사람 가까이

날아오는 새들이

눈 닿는 곳 밖으로 사라지듯

모두를 가족이라 이름 하여

드높이는 척 할 필요 없다

끝없이 이어진

산과 파도가 그 곳에 있듯

살아남은 것들의 손톱은 자란다

한 치의 빈틈도 없이

라벤더, 박하, 로즈마리 향이

네 곁을 오가는 동안

누군가 핵발전소가 보이는 언덕을 다녀간다

늘 오가는 길을,

위하여 오늘도 발전소의 불은 깜빡인다



-시집 (2021) 중에서-

현존하는 최고의 권력 기구는 국가다. 각기 다른 국가 시스템 속에서 각각 다른 혁명이 진행되지만 어느 국가에서나 먹고 살기 위한 시장은 같은 원리로 돌아간다. 다양한 직업을 가진 시인들이 있지만 미얀마에서 20년간 사업을 하면서 부산을 오가며 시를 쓰는 시인이 있다. 민간인이 학살당하는 전쟁터 같은 미얀마의 시장 속에서 그는 말한다. “누구나 제가 서 있는 자리가 우주의 중심이고 누구나 정오의 태양은 제 머리 위에서 빛난다.” 공항의 입국장이 최전선인 삶을 사는 그에게 미얀마와 부산은 분리된 사회가 아닌 같은 고향이다.

그래서 시인은 죽음과 허공의 꽃향기가 모두 같은 세상에서 장사꾼의 수모와 참회를 시로 옮기고 있다. 네비또, 양곤, 바고의 전쟁통이 부산의 바닷가와 다르지 않고 미얀마의 혼란이 부산 근교 핵발전소의 명암과 다르지 않음을 시인은 말한다. 그림자 없는 삶이 어디 있고 그림자 없는 사회가 어디 있냐고. 이규열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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