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간병 비극 막기 위한 돌봄 사회 전환의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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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미 동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지난달 뇌졸중인 아버지를 홀로 방치해 숨지게 한 22세 청년의 재판이 뜨거운 주목을 받았다. 존속살해 혐의로 1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았으나, 감당할 수 없는 치료비로 퇴원하고 홀로 간병과 생계를 책임지며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린 사연이 알려지면서, 살해가 아닌 유기치사로 판단해 달라는 탄원이 이어졌다.

우리 사회에서 간병이 살해, 자살 같은 비극으로 이어진 것은 갑작스러운 일이 아니다. 공식 통계는 없지만, 서울신문 탐사기획팀이 2006년부터 2018년까지 발생한 ‘간병 살인’ 관련 판결문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가해자는 총 154명, 희생자는 213명에 달한다.

간병이 살인으로 이어지는 비극
공식 통계 없지만 사회문제 부상
간병·돌봄은 가족의 몫으로 남아

공급자 중심 신청주의 재고하고
돌봄 ‘기본권’ 등 국가 지원 필요
지방정부 역할도 정부 못지않아


비극적인 간병 살인이 계속되는 동안, 정부도 손 놓고 있지는 않았다. 2008년 7월부터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를 시행했고, 현 정부 들어서는 치매 국가책임제, 지역사회 통합돌봄 체계 구축, 간호·간병 통합서비스 구축 등 각종 돌봄 관련 정책들을 추진했다.

하지만 정부의 책임은 최소한의 재정지원에 머물렀고, 통합돌봄체계 구축은 너무 더디다. 돌봄서비스 제공 기관의 절대다수는 수익 창출을 목적으로 하는 민간기관이며, 그마저도 돌봄서비스에 대한 폭증하는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간병비는 정부 지원의 사각지대로 남아 있다. 결국 여전히 간병, 돌봄은 가족의 몫이다. 돌봄이 가족과 민간 시장에 과도하게 의존하게 되면, 소득격차가 돌봄 격차로 이어진다. 간병비 부담으로 인한 부채, 파산, 실직 등은 실태 파악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최근 아픈 가족을 돌보는 청소년, 청년을 지칭하는 ‘영 케어러’ 실태 파악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은데, 가족 간병·돌봄자 전체를 아우르는 실태 파악이 시급하다.

간병으로 인한 비극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첫째, 돌봄 받을 권리와 돌봄을 제공할 권리가 국민의 ‘기본권’으로 보장받는 돌봄 사회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20대 청년의 간병 살인 사건이 공론화되자 국무총리, 보건복지부 장관이 사과했고, 대선 후보들은 간병·의료비 부담 완화책 마련을 약속했다. 하지만 단편적인 대책은 해법이 될 수 없다. 변화하는 시대에 맞지 않는 가족 보호자의 독박 돌봄 탈피, 국가와 지역사회의 돌봄 책임을 선언하고, 체계적이고 촘촘한 지원을 해야 한다. 대상별 분절적 정책이 아닌, 고령자, 중증 및 만성질환자, 정신질환자, 장애인 모두를 포괄하는 돌봄 정책 수립이 필요하다.

둘째, 돌봄이 기본권이 되려면, 공급자가 아닌 사람 중심의 통합돌봄지원 체계가 필요하다. 만약 우리 사회가 돌봄이 기본권인 사회였다면, 뇌졸중인 아버지를 경제적 형편 때문에 퇴원시키고자 하는 22세 청년에게 병원의 의료사회복지연계실 또는 지역연계실에서 의료급여관리사에 연계해 의료비 지원 혜택이 없는지 살폈을 것이다. 사회복지공무원에게 연계해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나 긴급복지지원제도, 장애인지원제도 적용 여부를 확인했을 것이다. 퇴원 환자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환자가 퇴원하게 되면 어떤 환경에 놓이는지, 돌봄 제공자의 상황은 어떠한지 검토했을 것이다. 거동이 힘들고 가족 돌봄이 어렵다면, 장기요양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지 확인하고 장기요양등급 취득을 지원했을 것이다. 퇴원 후 처방약, 치료식이 적절히 제공되는지 관리하고 지역사회 재활 프로그램에 연계하거나 방문재활을 지원했을 것이다. 미래를 설계할 수 있도록 진로상담, 직업교육훈련, 일자리를 연계했을 것이다. 돌봄이 과도한 스트레스, 우울증 등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심리치료나 정신건강 지원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연계했을 것이다.

하지만 2심 판결문은 주민센터 등을 방문하거나 지원받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한 그의 성격을 탓했다. 진정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동안 수많은 정책이 도입됐음에도 간병 비극, 복지 사각지대 비극이 지속되는 문제의 해결은 요원하다. 공급자 중심의 신청주의에 대한 재고가 필요하다. 다양한 복지제도들이 사람을 중심으로 잘 연계·작동될 수 있도록, 체계를 구축하고 돌봄코디네이터 등의 인력을 적극적으로 양성해야 한다.

중앙정부는 간호·간병통합서비스 확대, 의료비 및 간병비 부담 완화를 위한 제도 개선, 가족돌봄휴가 제도 개선책을 마련해야 한다. 돌봄 사회로의 전환에서 지방정부 역할이 더 중요하다. 간호, 간병, 요양, 재활, 식사, 주거, 가사 지원 등 다양한 돌봄서비스를 확대하고, 전문인력을 양성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양질의 돌봄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턱없이 낮은 공공기관 비율을 높이고, 사회적협동조합 등 다양한 돌봄 제공 주체들을 발굴해야 한다. 새해에는 부디 사람 중심의 온기 가득한 제도와 실천이 가족 간병으로 인한 비극을 막아 주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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