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병삼의 타초경사(打草驚蛇)] 사과란 칼끝 위에 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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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대 자유전공학부 특임교수

하늘도 잘못을 저지른다. 비를 내리려면 고루고루 뿌려야 하실 터인데 소의 등을 경계로 한쪽은 빗물이 넘치고 또 한쪽에는 가뭄이 들 때가 그렇다. ‘하늘도 무심하다’라는 성난 말이 나오는 까닭이다. 사람이야 오죽하랴. 사람은 거의 언제나 잘못하고, 실수하며, 넘치거나 모자란다. 문제는 잘못 자체가 아니라 대처하는 방식이다. 누구는 잘못을 통해 성장하는가 하면, 누구는 잘못을 피하려다 망한다.

공자 제자 안회는 무서운 사람이다. 스승이 ‘잘못을 거듭하지 않는 사람’(不二過)이라 평했으니 그러하다. 그가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사람이라서 무서운 것이 아니다. 그이 역시 잘못을 저지른다. 공자도 잘못을 범하는 판인데 그가 어찌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으랴. 다만 그는 잘못하면, 그게 잘못인 줄 알고 다시는 같은 잘못을 거듭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자신의 잘못을 깨달아 고치려는 마음
부끄러움을 알고 남에게 용서를 비는 용기
사과의 강 제대로 못 건너면 삶도 위태

두 번 다시 잘못을 범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선 잘못을 잘못인 줄 알아야 한다. 잘못을 잘못인 줄 알려면 자신을 돌이켜보는 눈이 필요하다. 눈, 실로 눈길이 중요하다. 애당초 눈은 바깥을 보도록 장치된 것이다. 멀리 나는 새를 관측하여 활을 쏘아 먹이로 삼을 수 있을지 가늠하는 것이 눈이요, 맹수를 발견해서 먹이가 되지 않도록 몸을 피하도록 하는 것이 눈의 기능이다.

이처럼 바깥을 보도록 설계된 눈이 문득 안으로 되돌려 자신을 살피게 된 것은, 놀라운 사건이다. 진화론의 언어를 빌리자면 일종 돌연변이에 해당한다. 밖으로 뚫린 눈을 180도 전환하여 안을 보는 사건을 기화로 인류는 동물에서 인간으로 진화한 것이다. 그 진화의 정체는 철학 하는 인간의 탄생이다. ‘너 자신을 알라’에서 철학이 시작되었으니 이 사건의 인류사적 의미가 짐작될 것이다. 그러니까 안회는 자신을 돌이켜 성찰하는, 철학 하는 인간이었다.

나아가 그는 잘못을 고칠 줄 알았다. 잘못을 발견하는 것과 잘못을 고치는 것 사이에는 큰 강이 흐른다. 자기 잘못을 인식했다고 곧바로 그것을 고치지는 않는다. 여기서 범인과 철인의 차이가 생긴다. 우리는 잘못을 발견해도 ‘눈’을 감는다. ‘소인은 잘못을 저지르면 반드시 핑계를 찾는다’라는 말이 이 뜻이다. 안회가 두 번 잘못을 저지르지 않을 수 있던 것은 잘못을 발견하고 그 잘못을 잘못이라고 판단하고 나아가 그 잘못을 고쳤기 때문이다.

제 잘못을 잘못이라고 판단할 때 발생하는 것이 부끄러움이다. 잘못을 저질러 켕긴 마음은 표정으로 드러나는 법이다. 옛사람은 부끄럼이 드러나는 모양을 귀때기가 발갛게 물드는 것으로 표현했다. 부끄럽다는 뜻의 恥(치) 자를 귀에 마음이 깃든 꼴로 묘사한 까닭이다. 그런데 잘못을 잘못으로 판단했다 하더라도 그것을 고치려면 또 큰 도약, 용기가 필요하다. 이게 정말 어렵다. 사람도 자신을 아끼는 동물인지라 제 잘못을 칼로 잘라 버리듯, 불로 지지듯 끊어 버리기는 실로 난감한 일이다. 따로 공자가 안회를 ‘배우기 좋아하는 사람’이라며 칭찬한 까닭은, 자기 성찰과 객관적 판단 그리고 제 살을 도려내는 용기를 두고 그러한 것이다. 여기서 하나 배운다. 배움이란 지식을 습득하는 것만이 아니라, 자기를 돌이켜 잘못을 발견하고 그것을 고치는 과정을 두고 한 말인 줄을.

그런데 또 사과라니! 사과(謝過)는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남에게 용서를 비는 것이다(국어사전). 안회의 ‘철학 하기’는 그나마 자신의 과업에 그치지만, 사과는 타인에게 행하는 것이니 더욱 힘든 일이다. 마음에서 몸으로 나아가, 말로써 부끄러움을 드러내고 체면을 구겨야 한다. 사과의 속내는 실로 복잡하다. 먼저 눈길을 돌이켜 자기 말과 행동을 살펴보아야 하고, 거기서 잘못된 사건을 발견해야 하고, 그것이 잘못인 줄 판단해야 하며, 나아가 부끄러움과 대면하고 느껴야 하며, 또 그것을 말과 글로 남에게 고백해야 한다. 아, 사과란 그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인가! 그러나 이 자리가 칼끝 위다. 사과의 강을 건너지 못하고 강변을 배회하다 보면, 즉 변명이 늘어지면 제 목숨을 앗는 수가 있다. 다들 자기 등짝은 못 봐도 남의 등은 환히 보이는 법이기 때문이다.

‘숨긴다’는 것을 한자로는 닉(匿)이라고 한다. 닉은 검찰 관계자들에게는 익숙한 말일 것이다. ‘범인은닉죄’, ‘장물은닉죄’라는 죄명이 따로 있기에 하는 말이다. 그런데 닉을 마음 위에 얹으면 특(慝)이 된다. 안팎이 다른 사람을 사특하다, 간특하다 하는데 그런 좋지 않은 뜻을 품은 글자가 ‘특’이다. 남의 물건을 훔친 것을 은닉한 죄도 큰 마당이니 제 마음을 숨기는 사특의 죄는 더욱 큰 것이겠다.

남의 사소한 잘못은 가을 서리같이 대하여 멸문의 지경으로 몰아넣고, 제 큰 잘못은 ‘남에게 돋보이려고 한’ 것쯤으로 눙치고 은닉하려 들 때, 사람들은 그 등짝을 보고 가리키며 사특하다 손가락질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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