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추적] 임대주택, 고가 분양 전환… 주거 안정 ‘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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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발지구 임대주택 일반분양 전환을 둘러싸고 임대사업자와 임차인 사이 갈등이 곳곳에서 불거진다. 애초 지방자치단체나 LH 등 공공 부문이 재개발 임대주택을 매입하는 게 가장 이상적이다. 그러나 부산지역은 민간 임대사업자가 보유한 임대주택이 많은 데다, 향후 임대 물량 대부분도 민간 사업자 매입이 예상된다. 앞으로 부산에서 임대사업자와 임차인 간의 갈등이 연쇄적으로 불거질 수 있다는 것이다. 재개발 아파트에 임대 물량 비율을 지정하는 이유는 해당 지역 원주민과 세입자 재정착을 도모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단기간에 일반분양 전환이 속출한다면, 서민 주거 안정이라는 취지가 무색해질 수밖에 없어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2017년 이후 부산, 공공 매입 전무
민간 사업자 투기 수단으로 전락
부산시·LH 등, 의무 매입 필요
일반분양 전환 때 심사 절차 신설을

■저조한 공공매입, 예산 없는 부산시

23일 부산시의회 박인영 시의원이 부산시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지역 내 재개발 아파트의 공공임대주택은 모두 1393세대다. 이중 부산시가 728세대, LH가 665세대를 보유하고 있다. 부산시 보유 임대주택은 임대 기간이 30년, LH는 10년에 이른다. 하지만 민간 임대사업자가 운영 중인 아파트는 이보다 많은 1514세대다. 이중에서 4년 단기 임대가 620세대로 42.2%를 차지해 가장 많다. 8년 임대가 398세대로 두 번째로 많은 비중(26.2%)을 차지했다. 최장 임대 기간 10년인 아파트는 178세대로 11.7%에 불과하다. 공공지원 민간임대는 재개발조합이 임대사업자에게 재개발 임대주택을 비교적 저가에 팔고, 임대사업자는 4년, 8년, 10년 단위로 임대주택을 일반분양으로 전환해 수익을 창출하는 방식이다.

부산시는 2017년 이후 재개발 임대 물량을 사들이지 않았다. 서울시는 올해 재개발 임대 물량을 매입하기 위한 예산 3721억원을 편성했지만, 부산시는 예산도 반영하지 않은 상태다.

임대사업자가 아파트 가격 상승에 따라 의무 임대 기간을 완료하자마자 일반분양으로 전환하면, 임차인들은 고가로 아파트를 구입하거나 집을 떠나야만 한다. 이 때문에 민간임대 방식으로 운영되는 임대주택 1514세대 또한 임대사업자가 순차적으로 일반분양으로 전환하면 임차인과의 분쟁은 불보듯 뻔한 일이다.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현재 부산지역 재개발 사업 중 이미 공사가 시작됐거나 관리처분 단계까지 간 사업장의 임대아파트만 9709세대에 이른다. 이중 공공이 매입하는 임대주택은 단 한 곳도 없고, 모두 임대사업자가 해당 물량을 매입하는 형태다. 현재 임대사업자가 보유한 1514세대까지 더한다면 10년 사이에 1만 세대 이상의 임대주택이 일반분양 아파트로 쏟아지는 셈이다.



■공공이 의무적으로 매입해야

정부는 지난해 ‘7·10 부동산 대책’을 통해 민간임대주택사업을 주택가격 상승의 원인으로 보고 이 제도를 폐지했다. 하지만 재개발 조합이 지닌 건설자의 지위를 임대사업자가 포괄 승계하는 방식으로 임대물량을 매입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다. 이 같은 제도의 허점 때문에 일부 현장에선 임대주택 매입이 시세 차익을 노리는 사업으로 변질되는 실정이다. 실제 재개발 임대주택을 매입한 임대사업자가 단기 차익을 거두기 위해 임대기간 동안 다른 임대사업자에게 분할매각하는 상황도 벌어진다. 예를 들면 최초 인수자가 시세 대비 50~60% 가격에 임대주택을 매입하고 다른 임대사업자에게 70~80% 가격으로 재판매하는 방식으로 단기 차익을 실현하는 것이다. 한 단지 내에서 임대 아파트가 다수의 사업자에게 분할 매각되면 아파트 관리가 어려워진다.

제도의 구멍을 메우기 위해서는 재개발 임대주택을 부산시나 LH 등 공공 부문이 의무적으로 매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받는다. 현행 법률상 재개발 조합이 공공에 매입을 요청해야만 공공기관이 임대물량을 매입할 수 있다. 최근 수년간 부산시의 임대주택 매입 실적이 전무한 것도 조합의 매입 요청이 없었기 때문이다. 국회에서는 조합의 요청이 없더라도 공공이 임대주택을 인수하도록 하는 관련 법안 개정안이 상정돼 있다.

임대사업자 자격 요건을 강화하고, 임대주택의 일반분양 전환 때 심사 절차를 신설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와 함께 공공에서 재개발 임대물량을 구입할 때 조합이 손해보지 않는다고 인식하도록 적정한 가격을 제시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박인영 시의원은 “재개발 사업 때 임대주택을 지정하는 대가로 용적률 상향 등의 인센티브를 조합에 주기도 한다”면서 “사실상 공공재인 임대주택을 싸게 사들여서 일반분양으로 비싸게 되판다면 과도하다고 판단되는 수익을 일부 환수하는 방향으로 심사제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황석하·곽진석 기자 hsh0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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