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칼럼] 92년생 김지영의 페미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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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소희 공모칼럼니스트

올 한 해 2030세대에서 가장 치열했던 사회갈등을 꼽자면 남녀 사이 갈등이 아닐까 싶다. 지난 4월 재·보궐 선거에서 부각된 ‘이대남’의 존재감을 시작으로 집게손가락 논란, 쇼트커트 논란에 이어 최근 화두가 되었던 설거지론까지 젠더 갈등은 페미니즘의 확산과 더불어 그 대립이 점점 더 첨예해지고 있다.

갈등은 사회를 변화시키는 원동력이자 논의가 필요한 사안들을 공론장으로 끌어올린다는 점에서 필수적이고 긍정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갈등이 요즘에는 갈등 주체 간의 소통은 단절된 채 양측의 혐오 현상으로만 번지고 있어 문제가 심각하다. 급기야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만 나와도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수준으로 반감이 깊어져서 관련 용어들에 대한 정의부터 정확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혐오 난무하는 2030세대의 젠더 갈등
남녀 모두 성차별 피해자 될 수 있어
사람은 누구나 동등하고 존엄한 존재

우선 페미니즘은 젠더 차별에 반대하는 운동이다. 섹스(Sex)와 젠더(Gender)는 다르다. 섹스는 생물학적으로 XX, XY 염색체가 결정하는 여성 남성의 성별을 의미한다. 젠더는 사회문화적 환경 안에서 본인 스스로가 느끼는 정체성 측면의 성별을 의미하며 성 소수자를 포함한다. 페미니즘은 태어날 때 주어지는 섹스의 범주를 넘어선 모든 젠더를 포괄하는 담론이다. 이 점에서 현재 우리나라에서 섹스만을 기반으로 한 대립은 보다 확장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의 젠더 갈등이 섹스 갈등이 된 이유는 그동안 성을 이분법적으로만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한국어의 ‘성(性)’이라는 단어는 그 의미가 오직 섹스와 맞닿는다. 젠더라는 개념을 설명할 수 있는 대체 단어가 우리말에는 없어 젠더는 그냥 젠더라는 외래어로 표기한다. 페미니즘 연구학자 주디스 버틀러는 언어학적 측면에서 이러한 어휘의 발달과 성 평등 수준의 관계를 지적한 바 있는데 그녀의 학술적 언급을 차치하더라도 사람은 자신이 알고 있는 단어만큼 세상을 이해하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젠더의 개념이 부재했던 시절에 고착된 이분법적 관점은 수정되어야 한다.

젠더는 모든 고정적인 성 관념을 거부하는 것으로 나아간다.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보부아르의 명언은 젠더의 실존을 직시하고 있으며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 또한 만들어진다는 점에서 남성 역시 성차별 피해자가 될 수 있다. 학습되는 성적 고정관념은 성별에 따른 일차원적 성 역할을 기대하고 강요하는 방식으로 발현된다. 예컨대 “남자라면 거칠게 다루어도 괜찮아”라거나 “남자라면 이렇게 해야지” 또는 “여자라면 이렇지” 같은 성 차별적 편견과 억압을 통해 남성과 여성은 모두 고유한 개성과 가치가 무시당하는 경험을 한다.

지금의 20대는 성별과 관계없이 입시, 취업 등 경쟁이 치열한 사회를 지내고 있다. 그 과정에서 남성들은 특혜는커녕 역차별을 겪었다고 성토한다. 성 평등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여자 아이를, 여학생을, 여직원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의식적인 노력이 분명히 있었고 그 과정에서 남성은 소외되었다고 느끼는 것이다. 그러나 형식적 평등과 실질적 평등 사이에는 여전히 괴리가 있다.

학교에서 직장에서 현대 한국 사회가 이룬 성 평등 수준의 객관적 변화는 과거에 비하면 괄목할 만한 성취다. 여학생과 남학생의 고등교육 참여율은 성별의 차이가 무색해졌으며 공무원 임용시험 등 취업에서도 여풍이 거세다. 그러나 가정과 일상에서 이루어지는 실질적인 평등, 즉 주관적인 변화는 초라한 수준이다. 여성들은 대표적으로 육아 문제를 제기한다. 육아는 여성의 몫이라는 인식이 변함없이 팽배하고 육아휴직, 경력 단절은 아빠보다는 엄마와 손을 잡는다. 기성세대의 성차별적이고 이분법적인 성 고정관념을 벗어나지 못한 결과다.

미국의 여권운동가 드워킨은 여성 혐오적인 여성 이해의 두 가지 모델로 ‘사창가 모델’과 ‘농장 모델’을 제시했다. 여성의 존재와 역할을 남성의 성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존재(사창가 모델)이거나 출산과 양육, 가사 역할을 하는 존재(농장 모델)로서만 간주한다는 것이다. 앞선 한국사회가 여성에게만 덧씌우는 양육자 모델은 드워킨의 농장 모델 규정에서 단연코 자유롭지 못하다. 섹스에 근거한 성 고정관념이 초래하는 왜곡된 성인식을 바로잡는 것이 실질적 젠더 평등으로 나아가는 첫걸음이다.

우리는 서로의 성을 공격하기에 앞서 적이 누구인지 정확히 판단하고 오히려 힘을 모아 기성세대의 가부장적 문화 잔재와 전근대적 성인지 감수성을 향해 싸워야 한다. 페미니즘은 특정 젠더의 우월적 가치를 부정하며 편견과 차별, 배제, 억압의 폭력에 반기를 드는 운동이다. 섹스가 아닌 젠더를 존중하며 젠더 이전에 각 개인이 동등하고 존엄한 사람임을 바라본다. 그렇기에 페미니즘은 여성만의 것이 아니며 남성을 포함한 모든 젠더는 페미니즘의 세계로 초대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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