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준현의 사람 사는 경제] 의식이 족해야 자유를 안다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참사회경제교육연구소장

관포지교(管鮑之交)라는 고사성어의 주인공으로 유명한 춘추 시대 제 나라의 명재상 관중(管仲)이 쓴 『관자(管子)』라는 책에는 “창고가 가득 차야 예절을 알고, 의식이 족해야 영욕을 안다.”는 말이 나온다. 흔히 공자님의 말씀으로 알지만 실은 관중이 먼저 한 말이다. 누가 먼저냐를 따지려는 뜻이 아니라, 요즘 표현으로 평가하자면 실용주의자인 관중은 그렇다 치고 공자님이 이런 말씀을 하신 것은 좀 뜻밖이다. 우리가 아는 공자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예절만 강조하시는 분이 아닌가. 그런데 그런 공자님도 먹고사는 문제가 먼저 해결되어야만 백성들이 예절을 안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윤석열 후보의 연이은 말 실수
선문답하듯 한 마디 툭 던져 놓고
왜 내 마음 이해 못하냐고 버럭

대한민국 대통령 후보로서
사람들이 오해하지 않도록
진정성 담아 자세히 설명해야


국민의힘당 윤석열 대선 후보의 발언들이 연일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윤 후보의 가장 큰 문제는 이런 말실수 저런 말실수를 한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전혀 모른다는 것이다.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니 같은 잘못을 또 저지르고 만다. 지난 주 전북을 방문한 자리에서 윤 후보는 “가난하고 배운 것 없는 사람은 자유가 뭔지도 모른다”고 발언했다. 발언의 부적절함에 대해 비판이 잇따르자 윤 후보는 그래서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줘야 한다는 뜻이었다고 해명했다. 해명을 듣고 나니 이해하지 못할 말도 아니다. 공자님도 의식이 족해야 예절을 안다고 하셨는데, 가난하고 못 배운 사람들은 자유의 가치를 모르니 알도록 도와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왜 유독 윤 후보의 발언에는 이런 구설수가 끊이지 않는 것일까. 정치가들뿐 아니라 주변에서도 그런 분들을 가끔 본다. 왜 나는 이런 뜻으로 말했는데 내 마음을 몰라 주느냐고 말이다. 다른 사람들이 내 말을 오해하는 이유는 내가 말을 잘못했기 때문이다. 만약 윤 후보가 그런 뜻이었다면 그대로 말을 했어야 옳다. 빈곤 때문에 자유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들이 없도록 복지정책을 확대하고 계층 간 불평등을 해소하는 정책을 마련하자고. 그러나 윤 후보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다만 가난한 사람들은 자유를 모른다고 말했을 뿐이다. 그래 놓고는 왜 내 뜻을 오해하느냐고 항변하니 참 답답하다. 스토커는 상대를 미워해서가 아니라 사랑해서 괴롭힌다. 내가 너를 이만큼 사랑하는데 너는 왜 내 마음을 몰라 주느냐는 것이다. 비유가 참 거시기하지만, 선문답하듯 한 마디 툭 던져 놓고는 자기 마음을 오해했다고 버럭 하는 정치가와 국민들을 상대로 한 스토커가 무엇이 다른지 모르겠다.

윤 후보의 말이 부적절한 더 심각한 이유는 그 말에 아무런 진정성이 없기 때문이다. 윤 후보는 자신의 뜻이 가난한 사람들은 자유의 가치를 모르니 알도록 도와주자는 뜻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생각해 보자. 가난한 사람들은 왜 자유의 가치를 모르는가. 가난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난하다 보니 자유나 인간의 존엄성과 같은 가치들을 생각해 볼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들이 자유의 가치를 알 수 있을까. 당연히 최저임금을 더 인상해서 경제적으로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게 해야 한다. 노동시간을 줄여서 자신의 삶과 이웃들과 우리 사회가 추구해야 할 가치들을 성찰할 수 있는 여유를 주어야 한다. 그런데 정작 윤 후보는 최저임금 이하로 일하겠다는 사람들이 많다느니, 일주일에 120시간은 일하게 해야 한다는 등의 발언들을 내놓았다. 물론 그때마다 내 진심은 그런 뜻이 아니었다고 해명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최저임금 이하로 일하고 노동시간 제한도 없이 일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그것이 진정으로 노동자들을 위한 정책이라고 주장하면서, 그들에게 자유의 가치를 알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이 자신의 뜻이라고 말하는 이런 모순을 어떻게 진정성 있는 정치가의 발언이라고 이해할 수 있을까. 그래서 부탁한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도와주는 길이다.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