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형적 세상 속으로… ‘자유의 마을’ 허구의 모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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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 안의 마을. 행정구역은 경기도 파주시 군내면 조산리이지만 사람들은 이곳을 ‘대성동 자유의 마을’이라 부른다. 남측 비무장지대 내 유일한 민간인 거주지인 자유의 마을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만날 수 있다. 부산 출신 전준호 작가와 이화여대 교수인 문경원 작가의 전시를 통해서다.

‘MMCA 현대차 시리즈 2021: 문경원&전준호-미지에서 온 소식, 자유의 마을’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리고 있다. MMCA 현대차 시리즈는 한국을 대표하는 중진 작가 개인전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으로, 현대자동차가 후원한다. 2014년 이불을 시작으로 안규철, 김수자, 임흥순, 최정화, 박찬경, 양혜규 작가가 지원을 받았다. 문경원 작가와 전준호 작가(이하 문&전 작가)는 2021년 지원 작가로 선정됐다.

전준호·문경원 ‘미지에서 온 소식’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전시
‘자유의 마을’ 역사와 현실 가공
부산영화촬영스튜디오 제작 영상
회화·사진·설치·아카이브 선봬
이념 충돌로 기형화된 세상 상징


문&전 작가는 2009년부터 함께 활동했다. 부산 영도에 작업실을 둔 전 작가와 서울에서 작업하는 문 작가는 해외 전시에서 만나 ‘예술의 역할’에 대한 생각을 나눴다. 아이디어를 던지고 그것을 추진하는 사람과 그 아이디어를 주제의 연장선에서 곱씹어 보는 사람. 서로 다른 스타일은 이들의 작업에 긍정적으로 작동했다.

두 사람은 현재 ‘미지에서 온 소식’이라는 장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프로젝트 제목은 영국 사상가이자 소설가인 윌리엄 모리스의 동명 소설에서 가져왔다. ‘미지에서 온 소식’은 2012년 독일 카셀 도쿠멘타에서 ‘세상의 저편’으로 첫선을 보였다. 프로젝트는 10년간 나라와 도시를 옮겨 다니며 진행되고 각각 부제가 붙는다.

2013 미국 시카고 예술대학 설리번 갤러리(시카고 실험실), 2015 스위스 미그로스 현대미술관(취리히 실험실)·베니스 비엔날레(축지법과 비행술), 2018 영국 테이트 리버풀(리버풀 실험실)를 선보인 데 이어 이번 서울 전시에서는 ‘자유의 마을’ 이야기를 다룬다. 내년에는 일본 가나자와21세기미술관(가나자와 실험실)에서 전시할 예정이다.

문&전 작가는 영상, 설치, 아카이브, 다학제적 연구와 워크숍, 출판물 등 다양한 방식의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전 작가는 “경계를 벗어나자는 생각을 했고, 다중지성의 플랫폼 속에서 여러 제안을 하려 했다”고 말했다. 이번 ‘자유의 마을’ 전시에서는 2채널 영상, 대형 회화, 사진, 설치, 아카이브를 선보인다. 특히 메인 영상 작품은 부산영화촬영스튜디오에서 촬영했다. 배우 박정민과 진영이 출연한 영상은 약 50명의 스태프가 1달 넘게 촬영한 결과물이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마을 모습은 실제 자유의 마을이 아니다. 마을이 가진 각종 자료를 해부하고 이를 바탕으로 마을의 역사와 현실을 비현실적으로 가공한 것이다. 문&전 작가는 유일한 분단국가, 불완전한 긴장 상태의 영토를 작품으로 다룰 때 외부에서 보는 시선은 어떨까를 생각했다. 두 사람은 “작업을 하면서 소재주의적으로 접근하지 않도록 경계했다”고 밝혔다.

‘미지에서 온 소식’이 보여주는 자유의 마을은 자유라는 단어를 품고 있지만 자유롭지 않다.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곳으로 고립된 자유의 마을은 우리 일상 속에서 반복·변주된다. 작품 속 자유의 마을은 한국의 특수한 정치적 상황을 넘어, 전 세계에서 이념과 사상의 충돌로 만들어지고 있는 기형적 세상을 상징한다. “제대로 살고 있는지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에 스스로 응답하게 하는 것이 예술의 기능과 역할”이라는 작가의 말처럼 작품 속 허구의 기록들은 우리 세계의 모순을 드러낸다. 그리고 현재를 지각하고 성찰할 것을 제안한다.

한편, ‘미지에서 온 소식, 자유의 마을’은 국립현대미술관 내 서울박스에 설치한 ‘모바일 아고라’에서 전시 연계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송봉규 디자이너와 최재천·유현준·정재승 교수가 관람객과 만났고, 1월에는 부산비엔날레 전시 감독 출신의 야콥 파브리시우스 아트허브코펜하겐 관장이 참여할 예정이다. 전시는 2022년 2월 20일까지 이어진다.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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