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A 컬렉션, 미술관 보고(寶庫) 들여다보기] (147) 물질의 정신, 세키네 노부오 ‘공상-흑(空相-黑) No.43 교차하는 원’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세키네 노부오(1942~2019)는 다마미술대학 유화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유화연구과를 졸업했다. 그는 하이데거 존재론의 영향을 받은 모노파(物派)의 핵심적인 창립 멤버로서, 자연과 인공의 물질이 거주하는 공간 관계를 탐구하는데 관심을 두고 작업했다.

1968년 제1회 현대 일본 야외조각전에서 일정한 대지를 원통형으로 파고 이 흙을 고스란히 옆자리에 같은 원통형으로 쌓아 세운, 네거티브와 포지티브의 형태를 대비시킨 ‘위상(位相)-대지(大地)’를 출품했다. 이 작품은 당시 일본 미술계에 커다란 충격을 안겨주었다.

이우환은 이 작품에 주목해 1969년 에 ‘존재와 무를 넘어서-세키네 노부오론’를 발표한다. 이 평론은 철학적 사고로 세키네 노부오의 작업을 뒷받침할 뿐만 아니라 당시 모더니티에 대한 비판적 흐름과 맞물리면서 ‘모노파’ 운동에 본격적으로 불을 붙였다. 1970년대에 완성된 모노파는 일본 현대미술의 커다란 획이었지만, 한편으론 철학 그 자체였다. 그 시대 미술계에 지배적인 서구의 정신문화와 대등한 지평에서 새롭게 실천하고 반영해 냈다는 점은 모노파가 가지는 커다란 가치로 평가된다.

세키네 노부오는 조각이라는 장르, 돌과 브론즈라는 매체는 물론이며 행위예술에 가까운 설치미술이나 환경미술 등 다양한 영역과 방법을 넘나들며 작업했다. 그는 물질이 지니는 순수한 속성에 몰두했다. 따라서 구체적인 서사의 구조를 지니지 못한 채 조형감의 물질들로만 드러내 보였다. 그의 작품을 보면 석재·금속의 표면가공이나 접합은 표현의 수단이기보다는 오히려 매체를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강조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러한 형태는 ‘공상(空相)-흑(黑)’ ‘원추(圓錐)의 주(柱)’ ‘공(空)의 문(門)’ ‘공(空)의 엔타시즈’ 등 관념적 제목과 결부되어 사물을 깊은 관조의 대상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공상-흑 No.43 교차하는 원’ 작품은 한 덩어리에서 솟아오른 두 축이 원을 이루며 끝 부분에서는 서로 교차되어 연결되는 구조이다. 연결되는 부분의 표면은 매끄럽게 처리되어 있다. 이 작품에서는 ‘모든 물질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전일적 세계관이 드러난다. 삶에 대한 유연한 사고와 예술적 의지를 삶 속에서 실천함으로써 관조의 대상인 작품이 자연스럽게 도출된다는 작가의 철학이 담겼다.

‘공상-흑 No.43 교차하는 원’은 2010년 하정웅 씨가 부산시립미술관에 기증했다. 세키네 노부오와 이우환이 남긴 미술사적 의미와 가치를 다시 한 번 되새기는 작품을 이우환 공간이 있는 부산시립미술관에서 감상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를 더한다.

박효원 부산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

    실시간 핫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