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모룡 칼럼] 2022년, 바다로 열린 부산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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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해양대 동아시아학과 교수

새해에는 눈을 볼 수 있을까? 축복처럼 내리는 서설이면 좋겠다. 한나절 지상이나 바다에 닿자마자 사라지는 눈보라의 군무를 보고 싶다. 그저 잠시 눈앞에 나타나 반짝이다 사라지는 천사의 표정으로 햇살에 자리를 양보하는 눈이면 족하다. 우리가 사는 부산은 눈이 오지 않아도 섭섭하고 눈이 와도 걱정거리가 되는 도시이다. 그러니 잊힌 친구의 편지처럼 우연히 다가오는 눈발이 그립다. 반가운 소식이면 된다. 저무는 2021년의 우울을 걷어내고 밝고 환한 2022년을 맞고 싶다.

사회적 격차·불평등 커져
코로나 시대 국가 혁신 절실
 
서울 중심의 블랙홀 일극 체제
지역화 노력 무산 지역소멸로
 
교통망 없는 메가시티 헛구호
공항 있어야 첨단산업도 가능

지난 2년 동안 우리는 미증유의 세상에서 살고 있다. 코로나 체제라고 불러도 좋을 만치 바이러스의 지배 속에 놓였다. K-방역은 백신과 함께한 2021년 후반에 ‘위드 코로나’로 순조로운 전환을 이루다 변이 바이러스의 복병과 맞닥뜨리면서 다시 얼어붙고 말았다. 코로나 체제는 쉽게 종식되지 않을 전망이다. 이런 가운데 삶의 변화가 적지 않고 사회적 격차와 불평등이 커지고 있다. 물질 노동의 영역에서 일하는 이들의 고통과 상처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여기저기서 자영업자의 탄식이 들린 지 오래다. 그저 견디고 기다릴 수만 없는 절박한 상황이 되었다. 코로나 체제에 상응하는 국가 혁신이 있어야겠다. 임기응변이나 단기 대응으로 해소될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코로나 이후의 더 나은 사회, 더 나은 국가가 어떤 형태이어야 하는가에 관한 물음과 토론이 요긴하다. 마침 대선 국면과 연동되어 있으니 단순한 정치권력보다 더욱 근본적인 변화를 사유할 때이다.

개인적인 고백이 허락된다면 나는 지역주의자이다. 국가 중심의 시야에서 강화되고 있는 일극 체제에 반발하면서 새로운 체제를 지향하는 만큼 진보에 속한다. 반면 지역의 내재적 가치를 존중하고 지키려 하는 보수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마냥 향토와 고장의 추억에 사로잡힌 퇴행적 지역 중심주의자는 아니다. 고유한 장소의 의의뿐만 아니라 그 한계 또한 견결하게 비판하고자 한다. 이를 아울러 비판적 지역주의자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곤경은 코로나 체제가 불러왔다. 이미 진행되고 있던 일극 체제를 고착화하는 단계에 이른 탓이다. 국가의 장벽이 높아지면서 각 지역의 내재적이고 내발적인 벡터의 다양성이 휘발하고 하나의 중심으로 휩쓸리는 현상이 가속의 페달을 달았다. 재생, 지역 뉴딜, 창조도시와 같은 개념이 밀려나고 다시 성장, 개발, 축적의 개념이 전면으로 떠오르는 역사적인 반동과 후퇴가 진행되고 있다.

서울 중심부가 블랙홀이 된 일극 체제는 자기 고장의 기억을 살리면서 삶을 쇄신하려는 지역화의 노력을 무산한다. 지역 뉴딜을 한시적으로 투하된 부양에 그치게 하고, 지역적인 창조도시의 기획을 대학과 산업과 문화가 집중된 중심부가 앗아가고 만다. 창조도시가 무엇인가? 창의적인 첨단 산업과 더불어 문화적 인프라가 구축되면서 창조계급이 몰린 도시를 의미하지 않는가? 창조도시는 이미 수도권을 구성하는 원리가 되고 말았다. 눈이 내려도, 벚꽃이 피어도 지역에서 희망의 징후를 발견할 수 없는 시대로 가고 있지 않은가? 봄이 와서 벚꽃이 피어도 벚꽃 피는 순서로 망하는 지방 대학이라는 염려를 떨치기 어렵지 않을까? 지역의 신체가 품은 불안은 이미 영혼을 잠식한 지 오래다.

하지만 미래가 사라지는 상황을 가정하고 싶진 않다. 미미하나 그 어떤 진전의 징후들을 찾아서 생성의 벡터를 만들어야 한다. 이십여 년 전에 야자수 늘어선 싱가포르항에서 빌딩 크기의 상선이 눈앞을 오가는 광경을 보면서 산책하던 기억이 있다. 철조망으로 꽁꽁 가로막힌 부산항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형국이었다. 고베항도 열린 항만이었다. 지척의 카페에서 항해를 서두르거나 정박하는 배를 바라보았다. 며칠 전에 북항의 문화공원 일부가 열렸다는 소식을 들었다. 머잖아 벤치에 앉아서 부산항을 접할 수 있다고 한다. 동해선 전철이 울산 태화강역까지 이어졌고 수년 안에 진해와 창원을 연결하는 남해선도 완공된다고 한다.

부산, 울산, 경남을 통합하는 메가시티를 외쳐 온 시간에 비하면 늦어도 한참이나 늦었다. 교통 미디어 형성 없는 메가시티는 구호에 그칠 수밖에 없다. 이에 더하여 세 가지 공간 혁신이 뒤따라야 한다. 정주 공간의 문화적 발전, 산업 공간의 첨단화, 학교의 혁신. 특히 첨단 산업은 공항이 필수다. 이에 부응하는 인재를 길러 내는 세계적 수준의 대학이 있어야 한다. 문화든 첨단 산업이든 대학이든 어느 하나 수도권으로 몰리지 않은 게 없다. 이 세 가지의 유기적인 구축이 없다면 우리의 메가시티는 공염불로 끝날 수 있다. 일극 체제와 지역소멸이 국가적 생존의 문제라는 근본적인 인식이 더없이 절실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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