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인사가 만사?
배동진 서울경제팀장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는 말이 있다. 사람의 일이 곧 모든 일이라는 뜻으로, 알맞은 인재를 잘 써야 모든 일이 잘 풀림을 이르는 말이다.
올 연말 재계는 세대교체 바람이 거셌다. 매년 세대교체라는 명목으로 연말 인사를 했지만 올해는 그룹사별로 대규모로 이뤄졌다는 점에서 질적·양적으로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삼성과 현대차, SK, LG, 롯데, CJ 등 주요 그룹들은 “능력 있는 젊은 인재를 과감히 중용해 글로벌 경쟁에서 미래를 철저히 준비하겠다” “중기비전 실행과 그룹 차원의 공격적 인재경영 강화” 등을 내세웠다.
주요 대기업 연말인사 ‘세대교체’ 화두
30·40대 MZ 세대 대거 임원 승진
미래 경쟁력 확보… 쇄신 기대
나이 자르기·경험 무시 후폭풍 예고
이번 세대교체 분위기는 5대그룹 가운데 가장 먼저 인사를 발표한 LG·롯데가 이끌었다. LG는 가전·화학을 제외하고는 이렇다 할 그룹의 캐시카우(수익창출원)가 없다는 점에서 쇄신이 절실했고, 보수적인 기업 문화로 유명한 롯데그룹도 주력인 유통에서 경고신호가 나오는 등 변신이 필요했다.
이에 LG는 주력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를 유임·승진하되 신규 임원의 40대 비율을 62%로 올렸다. 이는 구광모 대표이사 회장 취임 이후 최대 규모의 상무 승진 인사다. 13개 상장사 임원 745명 가운데 X세대(1969~1978년 출생) 이하 임원 비중도 50.7%에 달했다.
롯데그룹도 승진 규모를 전년 대비 배가량 늘리고, 주요 계열사 대표이사에 외부 인사를 대거 영입했다. 기존 ‘순혈주의’ 대신 ‘경쟁력’을 택한 것이다.
이어 나온 삼성전자의 인사는 메가톤급이었다. 호실적에도 불구하고 전자 3개 부문 CEO를 모두 갈아치운 것이다. 60대인 김기남·고동진·김현석 대표이사 3명을 경영 일선에서 퇴진시키고 50대 사장을 발령냈다. 또 임원 인사에서 지난해보다 배 이상 많은 부사장을 발탁했다. 40대 부사장과 30대 상무 승진자도 대폭 늘어났다.
SK그룹도 이번 인사이후 X세대 이하 임원 비중이 53.6%에 달했다.
이처럼 그룹사별로 30~40대 임원이 대거 등장하면서 기업의 의사결정 구조가 한층 젊어졌다는 평가가 많다. 삼성전자의 한 고참 부장은 “젊은 임원들의 경우 대외정보 습득력이 빠르고 젊은 팀원들과의 소통도 원활하고 아이디어가 획기적”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40~50대 비임원들과의 매끄러운 협업도 이들에게 과제”라고 했다.
이런 세대교체의 기저에는 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위기의식이 자리잡고 있다. 글로벌 경쟁, 디지털 전환 등이 중요한 경영과제로 떠오른 시대상황과 무관치 않다. 한편으론 주소비층으로 떠오른 MZ세대(1981~2010년 출생)를 이해하고 떠안기 위해선 젊은 인재 발탁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실제 MZ세대가 주소비층인 IT 업종의 경우 경영진이 극단적으로 젊다. 네이버는 임원 가운데 1969년 이후 출생자가 94.2%이고, 카카오도 92.9%에 달한다.
한편으로는 젊은 인재들을 대거 기용하면서 내홍도 적지않다. 단순히 임원 숫자만 늘린 것이 아니고 젊은 임원들을 기용하면서 50~60대 임원들을 대거 내보냈기 때문이다.
일부 그룹들은 당초 소폭 임원 승진·교체를 내부결정했다가 다른 기업들이 세대교체에 나서자 인사를 한 주 미뤄가며 교체 폭을 넓히기도 했다. 특히 나이를 기준으로 1964년생 이상 상무를 무조건 배제하는 인사도 이뤄졌다.
이를 놓고 재계 일각에선 “기업 내부사정은 배제한 채 세대교체 트렌드를 따라가자는 식의 인사는 지양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글로벌 네트워크가 필요한 자리나 다양한 업무경험이 필요한 자리에 나이를 기준으로 교체하고 젊은 임원을 앉힐 경우 오히려 마이너스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젊은 인재만 찾거나 외부 인사 영입에만 공을 들인다면 조직원들의 충성심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측면도 있다.
이처럼 대규모 세대교체를 이뤄 낸 기업들과 달리 정치권은 국민들의 바람과는 반대로 가고 있다. 지난 6월 보수야당인 국민의힘에선 36세의 당대표가 선출됐다. 한국 헌정사상 첫 30대 당수로 주목을 받았고, 정치권에도 세대교체 바람이 부는 듯했다. 그로부터 6개월이 지난 지금 국민의힘은 더 혼란스럽기만 하다.
내년 3월 치러질 대선도 유력하게 거론되는 두 인물 모두 쇄신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국민들은 상대적으로 덜 나쁜 패를 선택해야 할 처지다. 정치권의 참신한 세대교체가 힘든 상황에서 국민들의 실망감은 이만저만 아니다. 재계 그림자도 못 따라가는 우리 정치권의 현주소다. djbae@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