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남의 영화세상] 지구가 멸망해도 SNS는 포기 못해
영화평론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제니퍼 로렌스, 메릴 스트립, 티모시 살라메, 아리아나 그란데까지 이름만 들어도 가슴 설레는 별들이 등장하는 ‘돈 룩 업’(Don‘t Look Up). 가까운 미래에 혜성이 지구와 충돌할 위기에 처하고,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인류의 이야기를 다룬다. 할리우드에서 연기력이 탄탄한 배우들이 등장해 재난영화를 찍는다면 우리는 당연히 영웅적 인물들을 통해 지구를 구하는 해피엔딩 영화라고 유추할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히어로물이 아니라 블랙 코미디이다.
혜성·지구 충돌 위기 다룬 '돈 룩 업'
경고 나선 주인공은 인터넷 '밈' 돼
종말 이용하는 기업·정치·방송 비판
감독, 환경문제 외면 현대사회 통찰
영화 속 시대는 가까운 미래다. 인간의 감정을 쉽게 알 수 있으며, 원하는 것은 너무 빨리 얻어낼 수 있는 미래. AI는 내가 원하는 소비 성향을 나보다 미리 파악하고 예측한다. 모든 것이 데이터베이스화 되는 시대는 사실 그리 낯선 풍경은 아니다. 그런데 영화는 미래사회가 아니라 지구의 종말마저도 돈벌이로 생각하는 대기업과 자신의 이익을 위해 계산을 끝낸 정치인, 시청률을 위해 종말까지도 희화화하는 미디어의 속물성과 인간의 광기에 주목한다.
천문학과 박사 과정에 있는 케이트와 지도교수 랜들 민디 박사는 태양계 내의 궤도를 돌고 있는 혜성이 곧 지구와 충돌한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들은 6개월 뒤 인류의 종말이 찾아온다는 사실을 알리지만, 정부는 기아문제나 환경문제가 미래의 추측과 다를 바 없다며, 오히려 과학자의 판단을 비난하듯 깎아내린다. 심지어 정부는 현재 대통령이 추대하려는 법무부 장관 추천 인사가 대중들의 호응을 얻지 못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게 더 급선무라고 여긴다.
‘돈 룩 업’은 재난 상황마저도 하나의 이슈로만 소비하고 유포하다가 결국 파국에 치닫는 인간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다룬다. 하지만 그 모습은 절망적이지 않다. 과학자는 지구멸망을 전하기 위해 뉴스쇼에 참석했지만 담당자들은 시청률을 높이는 데만 관심을 가진다. 의도를 파악한 과학자는 방송 중에 격분하고, 이 장면은 인터넷 ‘밈’이 되어 도리어 조롱의 대상이 되는 방식이다. 아담 맥케이 감독은 현대 사회에 대한 신랄한 냉소를 영화 속에 담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영화는 사건을 조작하고 은폐하는 대중매체와 국가권력의 모습을 그리고, 과학적 합리성 대신 이미지로 감성만 자극하는 ‘지적 리더십’이 결여된 정부의 모습까지 담아내며 모든 것을 정치적으로 풍자하고 있다.
영화의 결말도 흥미롭다. 지구가 혜성과 충돌할 때 대통령과 대기업 회장 등 주요 인사들은 우주선을 타고 지구를 탈출한다. 그들은 냉동인간 상태로 있다가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어느 행성에 도착하지만, 어이없게도 동물에 쪼여 죽는다. 또 하나 감독이 남겨둔 마지막은 지구의 대재난 이후에도 살아남은 대통령 아들이 황폐화된 도시를 스마트폰 카메라로 찍으며, 이를 SNS에 올리려는 모습이다. 우리가 현실을 ‘룩 업’(Look Up)하기만 해도 우리 삶에 놓여있는 심각성을 느낄 텐데, 죽음이 도래하기 전까지 자신이 살아왔던 방식을 포기하지 못하기에 재난을 인지하지 못하는 건 아닐까 생각하게 만든다.
최근 OTT에서 개봉한 SF드라마 ‘고요의 바다’도 황폐해지고 있는 지구에 ‘물’이 큰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인류의 문제를 들여다보게 하는 어떤 효과를 내고 있는 콘텐츠임을 알 수 있다. 요즘의 SF영화들이 단순히 상상력을 기반으로 이를 즐길 거리로 소비하는 것을 넘어서 우리 삶의 문제를 심도 있게 비판할 시선을 가지게 만드는 것이다. 아담 맥케이 감독은 환경 위기의 심각성은 지속적으로 강조되는데도 여전히 많은 이들은 환경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하지 않는 모습에서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영화가 우리의 삶을 통찰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돈 룩 업’을 보고 그저 웃을 수만은 없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