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대일로’ 중국 손 잡았던 스리랑카 ‘채무의 늪’ 빠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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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힌다 라자팍사 스리랑카 총리가 9일(현지시간) 수도 콜롬보에서 만난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과 팔짱을 낀 채 인사를 나누고 있는 모습(왼쪽)과 스리랑카 남부에 중국 자본으로 건설된 철도. EPA·신화연합뉴스

금융 위기에 몰린 스리랑카가 위기를 헤쳐나갈 수 있도록 중국에 채무 재조정을 요구했다고 AP와 로이터통신 등 외신들이 10일 보도했다. 중국의 역점 프로젝트인 일대일로(중국·중앙아시아·유럽 연결 육상·해상 실크로드)가 협력국을 ‘채무의 늪’에 빠뜨린다는 서방의 지적이 제기된 상황에서 중국이 이번 요청에 어떻게 반응할지 주목된다.

차이나 머니로 인프라 확충
디폴트 위기 속 관광산업 위축
대통령, 왕이 외교부장 회담
4조 원대 부채 상환 재조정 요구

고타바야 라자팍사 스리랑카 대통령은 9일(현지시간) 자국을 방문한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에게 “코로나19에 따른 경제위기 해결책으로 부채 상환의 재조정에 관심을 기울여 준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스리랑카는 중국으로부터 수십억 달러의 소프트론(저금리대출)으로 이익을 얻었지만, 현재는 외환 위기로 디폴트(채무불이행) 위기에 처해 있다.

또 가미니 라크샤만 피리스 스리랑카 외무장관은 왕이 부장과의 회담에서 “중국은 스리랑카의 경제 발전과 국가 건설을 크게 지원했다”며 “스리랑카는 계속해서 하나의 중국 정책을 견지하고 국제 행사에서 중국의 정당한 주장을 확고히 지지하며 코로나19를 정치화하려는 시도를 결연히 반대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중국 외교부가 전했다.

스리랑카가 중국에 상환해야 할 채무액은 스리랑카 국유기업에 대한 대출을 제외하고도 총 33억 8000만달러(약 4조 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중국은 일대일로의 주요 협력국인 스리랑카의 항구와 공항 건설, 도로망 확장 등에 대규모 차관을 제공했다. 중국은 국제금융시장과 아시아개발은행, 일본에 이어 스리랑카의 네 번째 큰 채권국이다.

AP통신에 따르면 최악의 경제 위기 속 스리랑카의 외환보유고는 16억 달러(약 1조 9000억 원)에 그치고 있으며, 올해 상환해야 할 채무가 45억 달러(약 5조 4000억 원)에 이르기 때문에 중국의 협조가 절실한 상황이다. 스리랑카의 주요 산업인 관광이 코로나19로 위기를 맞으면서 상황은 더 어려워졌다.

스리랑카는 2005~2015년 마힌다 라자팍사 전 대통령 집권 시기부터 친중국 노선을 펼치며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통해 중국 자본으로 각종 대형 인프라 건설 사업을 추진했다. 그 일환으로 스리랑카는 함반토타항을 건설했으나, 차관을 제때 상환하지 못하면서 2017년 중국 국영 항만기업인 자오상쥐에 99년 기한으로 항만 운영권을 넘겨주기도 했다. 일대일로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13년 처음 제창했다. 중국은 이 구상에 따라 좋은 융자조건으로 일대일로 선상에 위치한 아시아와 아프리카 개도국의 도로, 철도, 항만 등 인프라 정비를 적극적으로 지원해왔다.

그러나 서방 국가들은 일대일로가 상대국을 ‘채무의 함정’에 빠트린다고 비판해왔다. 중국이 일대일로 협력국의 채무를 활용해 군사 거점 확보 등을 모색한다는 주장이다. 로이터도 비평가들의 말을 인용해 이 자금이 낮은 수익률의 ‘흰 코끼리 프로젝트’에 사용됐다고 말했다.

흰 코끼리 프로젝트란 비용은 엄청나게 들지만 쓸모없는 프로젝트를 가리킬 때 쓰는 말로, 주로 개발도상국들이 외국의 원조를 얻어 고속도로 등을 건설하지만 도로가 텅 비는 상황 등을 말한다.

이에 대해 왕이 부장은 지난 6일 케냐를 방문한 자리에서 “채무의 함정이라는 말은 사실이 아니라 엉뚱한 조작”이라며 “채무의 함정은 아프리카의 성장을 바라지 않는 외부 세력이 만들어낸 ‘말의 함정’”이라고 반박했다.

이현정 기자 yourfoot@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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