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태우의 맛있는 여행] 프랑스 초저속열차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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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부 선임기자

프랑스는 초고속열차로 유명한 나라다. 1966년에 초고속열차인 TGV 운행을 시작했으니 올해로 벌써 66년이 된 셈이다. 1981년에 120만 명이었던 이용자 수는 2010년에는 1억 1000만 명으로 늘어나 프랑스 장거리 교통의 핵심수단이 됐다.

최근 프랑스에서는 초고속열차 때문에 사라져버린 완행열차를 부활시키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완행열차 운행 재개를 목표로 주주 1만 1000여 여명이 참여한 협동조합 레일쿱이 만들어졌다. 대부분 개인이지만, 완행열차가 지나갈 지역의 행정기관과 기업체, 각종 사회단체도 동참했다. 1인당 최저 참여 금액은 100유로였다.

레일쿱은 올해 말 전에 시골 도시 사이를 운행하는 장거리 완행열차를 운행하기로 결정했다. 시속 90km의 열차 이름은 TGL로 번역하자면 ‘초저속열차’다

레일쿱은 TGV가 서지 않는 작은 마을에 TGL을 정차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첫 열차 운행 구간으로는 보르도~리옹을 선택했다.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국영철도회사인 SNCF가 철도를 운행했지만 경제성을 이유로 중단한 구간이었다.

보르도에서 리옹까지 직선 거리는 556km이며 자동차로 6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다. TGL을 이용하면 7시간 30분 정도 걸릴 예정이다. 철도회사는 이 구간의 성과를 본 다음 캉~툴루즈 구간에도 11~13시간 걸리는 초저속열차를 운영할 방침이다. 표 가격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지만 TGV의 절반에서 3분의 1 수준이 될 전망이다.

초저속열차 운행이 가능해진 것은 유럽연합(EU)이 유럽 여러 나라에서 국영 철도회사의 열차 운행 독점은 불법이라는 결론을 내린 덕분이었다. 마크롱 대통령이 초저속열차 운행 재개를 적극 지지하며 힘을 실은 것도 요인이었다. 그는 사용되지 않는 19세기 지방 철로를 되살려 지방 교통난 해소에 도움을 주는 것은 물론 관광 자원으로 활용하자고 주장한다.

프랑스의 초저속열차 운행 재개 소식을 들으면서 1980년대 대학생 시절 완행열차인 비둘기호를 타고 다니던 추억이 떠올랐다. 주로 아침과 저녁에 운행하던 비둘기호는 생생한 삶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열차였다. 돈이 없는 젊은 여행객에게 푼돈만 가지고도 서울~부산을 오갈 수 있는 교통수단이기도 했다.

비둘기호는 물론 그보다 조금 빨랐던 통일호 열차까지 모두 사라져버렸다. 겨우 무궁화호 열차 일부가 남아 지역 사이를 운행하고 있다. 이런 열차들이 사라진 공간은 초고속열차인 KTX가 장악했다. 프랑스의 초저속열차 부활 소식이 부러운 것은 기자뿐일까.

le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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