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말 광] 945. 반증과 방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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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원 교열부장

“세상에서 가장 강한 것이 뭐게?”라는 수수께끼에 “너의 수염!”이라고 답하는 ‘아재 개그’가 수십 년 전에 유행한 적이 있다. 한데, 저런 우스개에 맞장구치며 웃어 주려면 ‘철면피’라는 말을 알아야 했다. 국립국어원에서 펴낸 <표준국어대사전>(표준사전)을 보자.

*철면피(鐵面皮): 쇠로 만든 낯가죽이라는 뜻으로, 염치가 없고 뻔뻔스러운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

그러니, 뻔뻔한 너의 얼굴, 쇠로 된 낯가죽을 뚫고 나온 너의 수염이 세상에서 가장 강하다는 농담(혹은, 풍자)이었던 것. 아래는 ‘철면피의 리더’라는 글 가운데 일부다.

‘중국의 정치문화에 후흑학(厚黑學)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얼굴이 두텁다’는 뜻이고, 그런 지도자가 중국 역사에 제법 많았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원래 ‘후흑’은 ‘낯이 두껍고 뱃속은 시커멓다(面厚心黑(면후심흑))’는 말인데, 두루 몰아서 얼굴이 두텁다고 한 것은 좀 어색하다. 또, 여러 번 얘기했듯이, ‘두텁다’는 사람 마음에만 쓰므로 얼굴은 ‘두껍다’라야 했다. ‘두텁다’는 ‘신의, 믿음, 관계, 인정 따위가 굳고 깊다’는 뜻이어서 ‘두터운 은혜/신앙이 두텁다/친분이 두텁다/정이 두텁다/…’처럼 쓴다고 표준사전은 밝힌다. 또 다른 잘못도 있다. ‘반증’이라는 말. 표준사전을 보자.

*반증(反證): ①어떤 사실이나 주장이 옳지 아니함을 그에 반대되는 근거를 들어 증명함. 또는 그런 증거.(우리에겐 그 사실을 뒤집을 만한 반증이 없다./그의 주장은 논리가 워낙 치밀해서 반증을 대기가 어렵다.) ②(주로 ‘-는/ -다는 반증이다’ 구성으로 쓰여))어떤 사실과 모순되는 것 같지만, 거꾸로 그 사실을 증명하는 것.(그들이 이토록 조용한 것은 더 큰 음모들을 꾸미고 있다는 반증이기 때문이다.<홍성원, 육이오>/소위 구제니 자선이니 하는 것을 향기 있고 아름다운 말이나 행위로 알지만, 실상은 사회가 병들었다는 반증밖에 아니 되고…….<염상섭, 만세전>)

풀이가 길지만, 한마디로 줄이자면 ‘반대 증거’다.(따지고 보면 ‘알리바이’도 반증이라 할 만한 것.) 하지만, 중국에 후흑학이 있는 건 얼굴이 두꺼운 지도자가 많았다는 ‘증거’일 뿐이다. 여기에 ‘반대’나 ‘거꾸로’라는 개념이 들어갈 자리는 없는 것. 한편, 비슷하게 쓰이는 말로는 ‘방증’이 있다. 표준사전을 보자.

*방증(傍證): 사실을 직접 증명할 수 있는 증거가 되지는 않지만, 주변의 상황을 밝힘으로써 간접적으로 증명에 도움을 줌. 또는 그 증거.

여기 나온 ‘방(傍)’은 ‘곁, 기대다, 옆’이라는 뜻으로, ‘방계(傍系)’에 쓰인 바로 그 한자. 그러니 ‘간접 증거’쯤 될 것이다. 결을 따지자면 반증과는 반대쪽에 서 있는 말인 것. jinwon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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