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간 해녀가 온몸으로 말하고자 한 ‘그 바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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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애 시인 열 번째 시집 ‘바다 악사’

박정애 시인은 2년 전 4월 한 날 아침에 ‘쿵!’ 하고 놀랐다. 전날 저녁 오랫동안 통화한 동생뻘 박말애(당시 63세) 해녀 시인이 기장의 바닷가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는 충격적인 연락을 받았다. “말애가 물질을 나갔다가 바다에 깔린 그물에 걸려 못 나온 겁니다. 말애는 항상 바닷속이 육지보다 더한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다고 했는데 그만 그렇게….” 그 아픈 사연이 박 시인의 이번 열 번째 시집 (전망)에 녹아 있다.

“말애는 해녀로 체득한 물속 비밀을 저에게 많이 알려줬는데 마지막에 몸을 던져 ‘물속의 실상’을 말한 거였어요.” ‘생과 사, 경계를 넘나든 물속에서’ 1분 30초 물질을 하다가 올라와 내뱉는 ‘숨비기소리’의 ‘지독한 몸서리’를 살다가 고인은 그만 ‘바다를 내려놓고’ 가 버린 거였다.

동생뻘 해녀 말애의 아픈 사연
17장 320행 장시에 녹아들어
기장 출신으로 15년간 바다 순례
“사라지는 포구와 어촌 아쉬워”

부산 시인은 바다를 어떻게 사유하고 표현하는가, 라고 물을 때 박 시인은 ‘동생 말애’가 온몸으로 말한 그 바다를 마저 말하고 싶었다는 거다.

고인은 ‘바다는 보고 듣는 게 아닌 갈피갈피 넘기는/책갈피도 아닌 아로새긴 은파의 문장도/푸른 비문도 시도 아닌/몸의 경전’이라고 했다. ‘담보물은 달랑 몸 하나로/매순간 구절양장 목숨 거는 일’이 해녀의 일이기 때문이다. 그 해녀는 이제 바닷속으로 들어가 바다의 경전이 돼버린 거다. 바닷속은 참으로 역설적인 곳이다. 물속이지만 ‘물 한 모금 없는’ 곳이 바닷속이다. 바다는 ‘제 몸의 현을 쳐 소리를 내는 청동의 몸’(14쪽)이며, ‘바다가 푸른 것도/해녀들의 눈물 탓이다’.(37쪽).

말애 씨를 생각하며 쓴 시 ‘해녀 일기’는 17장 320행의 장시다. ‘물에서 견딜 수 있을 때까지 견뎌낸/그 숨의 길이가 기량이라는 것인데/오로지 들숨만으로 열길 물속/돌밭을 매는 상군이라도/한생의 길이만큼이나 길었을/물속 시간이 얼마나 길고 긴 시간인지/그런 목숨을 들고 물속을 넘나들었다’(37~38쪽). 그 목숨의 물속 넘나들이가 말애 씨의 삶이었다는 거다. 아니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실상일 것이었다.

기장 정관 출신의 박정애 시인은 15년 전부터 바다를 순례하고 있다. 제주도, 동해안, 남해안 길과 섬을 샅샅이 걸었다. 그 답사의 흔적으로 이번 시집에 ‘대포항’ ‘호미곶’ ‘울기등대’ ‘슬도’ ‘곽전’ ‘연화도’ ‘추자도’ ‘보길도’ ‘비금도’ 등의 이름이 나온다. 시인은 ‘한반도의 바다’를 걸으며 저 홀로 버티고 있는 섬과 등대를 봤다고 했다. ‘생이란 견딜 수 없는 것을/견딜 만큼만 견뎌내는 것’(36쪽). 그게 섬과 등대가 감당하는 것이요, 말애 씨의 삶이자 우리의 삶이 견디고 있는 바라는 거다.

‘바다와 한몸인 여자’ 말애는 수평선 쪽을 손짓하고 있다. ‘이젠 끝이거니 속고 속아서 살아온 생의 모서리/파도는 절망과 비탄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그것이 사는 일이라고 시퍼렇게 날선 수평선’(52쪽). 이제 박정애 시인은 수평선을 바라보며 말애 씨의 환환 웃음소리를 듣는다. ‘생과 사, 경계를 넘나든 물속에서/저승 것 가져다 이승을 살린다는/당찬 자부심으로 언제나 늘/맑고 환한 백설기 설탕같이 웃던/그 웃음소리가 바다를 이겨낸 저력이란 걸’(155쪽).

시인은 “말애뿐 아니라 김규태 이규정 이해웅 오정환 정의태, 우리 곁의 문인들을 참 많이 먼저 보낸 거 같다”며 “한반도 바다를 걸으면서 느낀 것은 포구도 없어지고 어촌계도 힘이 없어지고 있다는 거였다”고 했다.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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