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종이 승차권
1970, 80년대 시내버스를 타고 학교를 다녔던 사람들에게 ‘회수권’은 당시 학창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추억의 소품이다. 전자식 교통시스템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 회수권은 지금의 교통카드 구실을 했다. 버스 회사들은 토큰을 사용하는 성인과 할인 혜택을 받는 학생을 구분하기 위해 회수권을 발행했고, 또 세무 당국은 투명한 세원 관리를 위해 이를 장려했다.
높은 할인율로 학생들의 필수품이 된 회수권은 광범위한 사용만큼 다양한 뒷얘기도 남겼다. 회수권은 10장이 한꺼번에 인쇄된 종이를 한 장씩 잘라서 사용해야 했는데, 가끔 학생들의 부족한 용돈 대용으로 활용됐다. 학교 앞 분식집이나 문방구에서 회수권을 할인해 군것질이나 학용품을 사기도 했다. 또 10장짜리 학생용 회수권을 그 이상으로 교묘하게 잘라 사용하다가 버스 기사나 안내양에게 걸려 혼나는 경우도 있었다.
이처럼 여러모로 활용도가 높았던(?) 회수권이었지만, 1990년대 중반 IC칩이 내장된 교통카드가 도입되고, 회수권의 유통·회수에 드는 비용과 위조 문제까지 겹치면서 2008년 초엔 도시 대부분에서 판매가 중단됐다.
IT기술과 교통환경 변화에 따라 자연스럽게 사라진 셈인데, 최근엔 전국에서 유일하게 부산 도시철도에서만 발급받을 수 있는 종이 승차권도 이 같은 퇴장의 길을 밟게 됐다고 한다.
준비 기간을 거쳐 2024년부터는 114개 부산 도시철도 역사에서 종이 승차권이 사라진다. 도시철도 1호선이 개통된 1985년 이후 39년 만에 노란색의 길쭉한 사각형 승차권을 볼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스마트 기기의 보편화로 종이 승차권 사용률이 급감한 데다 승차권 용지 등 유지 비용도 높아져 더는 버틸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비슷한 이유로 다른 도시에선 이미 폐지된 지가 제법 됐다.
그럼에도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특히 다른 대도시에서는 더 이상 볼 수 없는 물건이다 보니, 부산에 온 여행객들이 기념품으로 이 종이 승차권을 간직하는 경우도 꽤 있다고 한다.
부산 도시철도 종이 승차권의 역사를 보면 개통 이후 지금까지 모두 12차례 기념승차권이 발행됐다. 오직 도시철도 새 노선이 개통될 때만 발행돼 희소성도 갖췄다고 한다. 앞으로 공식 종이 승차권은 없어지지만, 부산에 좋은 일이 생길 때 가끔 기념승차권을 발행해 시민들의 아쉬움을 달래 줬으면 좋겠다. 곽명섭 논설위원 kms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