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금아의 그림책방] 지름길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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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부 부장

생명 앞의 길은 안전해야 한다.

도널드 크루스의 (논장)에는 위험한 길이 나온다. 아이들이 철길에 서 있다. 어른들이 큰길로 다니라고, 철길 가까이 가지 말라고 주의를 줬지만 시간이 늦어 그냥 기찻길을 따라 걸었다. 시간이 정해지지 않은 화물 열차가 다니지만 ‘그래도 설마’하고 생각했다.

장난을 치며 철길을 걷는데 갑자기 누군가 외쳤다. “기차 소리다.” 아이들은 뒤돌아 뛰었다. 기차 소리는 점점 커졌다. “내려가!” 아이들은 기찻길 옆 가파른 비탈로 뛰어내렸다. 뚜우우~ 칙칙폭폭, 칙칙폭폭. 그림책 화면을 가득 채우고 지나가는 검은 기차의 모습이 무섭다. 다행히 아이들은 무사했다. 모두 놀라 서둘러 큰길로 돌아갔다.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지만 이 사건은 비밀로 했다. 대신 아이들은 다시는 지름길로 가지 않았다.

(노란상상)은 어린 노동자들의 노동 환경을 이야기한다. 고정순 작가는 실습 현장에서 가족들 품으로 영원히 돌아오지 못한 친구를 생각하며 책을 만들었다. 피리 부는 사나이가 마을의 골칫거리인 쥐 떼를 없애줬지만 어른들은 ‘정당한 대가’를 지급하지 않았다. 화가 난 사나이는 아이들을 데리고 사라졌다.

세월이 지나 다시 아이들이 태어나고 자랐다. 이들은 정당한 대가와 안전을 약속 받고 일터로 향했다. 하지만 약속은 또 지켜지지 않았다. 어른이 아니라며 일한 만큼 대가를 주지 않았다(그림). 안전도 외면됐다. 지하철 안전문을 수리하다가, 누군가의 저녁을 배달하다가, 공장에서 혼자 야근을 하다가 어린 노동자들이 스러져 갔다. 피리 부는 사나이도 없는데 아이들이 사라졌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어른들 때문에.

공사 중이던 고층 아파트가 무너지고 채석장이 붕괴되어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지름길처럼 더 빨리 가기 위해 편법이 판치는 세상에서는 누구도 안전할 수 없다. 노동자들이 안전하게 귀가하는 세상이 오기를. 모두가 “다녀왔습니다” 환하게 웃으며 가족이 기다리는 집에 돌아올 수 있기를. 안전 앞에 지름길은 없어야 한다. chri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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