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말 광] 946. 코펠과 실로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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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원 교열부장

*코펠(←Kocher(독)): 야외에 갈 때에 휴대하기 쉽도록 되어 있는 조립식 취사도구.(배낭에 코펠과 버너를 챙겨 넣다./버너를 꺼내고 코펠에 굴비국을 끓이면서 비교적 조용한 산을 즐기려 한 것이다.<이숭녕, 대학가의 파수병>)

국립국어원에서 펴낸 <표준국어대사전>(표준사전) 뜻풀이인데, 숨어 있는 2가지 정보가 있다. 먼저 ‘←’는 ‘원래의 형태에서 변한 외래어’라는 표시이고, ‘(독)’은 원어가 독일어라는 말이다. ‘코허/콧허’에 가깝게 소리 나는 독일어 ‘Kocher’가 왜 우리나라에 와서 ‘코펠’이 됐을까. 원인은 바로 일본어다. ‘Kocher’가 일본에서 ‘콧헤루(コッヘル)’가 되면서 우리말에 영향(언어학에서는 ‘간섭’이라고 한다)을 끼쳐 ‘코펠’이 된 것. 일본을 거친 외래어라는 범주로 보자면 ‘가방 라면, 담배, 바께쓰, 파마’ 따위와 같은 항렬인 셈이다.

일본어가 간섭한 외래어로는 ‘아이젠’도 빠질 수 없다. 표준사전을 보자.

*아이젠(Eisen(독)): 등산에 쓰는 용구. 강철로 된 스파이크 모양으로, 얼음 따위에 미끄러지지 않도록 등산화 밑에 덧신는다. =슈타이크아이젠.(그가 신은 아이젠엔 젖은 눈이 덩어리가 되어 붙어 있었다.)

뜻풀이에 ‘슈타이크아이젠’이 동의어라고 돼 있지만, 사실은 이 말이 바로 원어인 것. 이 ‘Steigeisen’이 일본에 가서 ‘eisen’만 남았다. ‘아파트먼트하우스’를 아파트, ‘리모트 컨트롤’을 리모컨, ‘슈퍼마켓’을 슈퍼로 줄여 쓰는 일본인들답게 아이젠으로 줄이긴 했는데, 사실 이 아이젠은 ‘쇠’라는 뜻일 뿐이다. 어쨌거나 이 엉터리 일본식 외래어는 우리나라에도 영향을 끼쳐, 우리 역시 대개 슈타이크아이젠 대신 아이젠으로들 쓰는 판이다.

하지만 엉뚱한 뜻으로 쓰이는 이런 말에 비하면 코펠이나 아이젠은 양반이다. 표준사전을 보자.

*글로켄슈필(Glockenspiel(독)): 관현악에 쓰는 타악기의 하나. 작은 강철 쇳조각을 반음계순으로 늘어놓고 채로 쳐서 소리를 낸다. =철금.

이 뜻풀이를 보다 보면, 의아해진다. 아니, 이건 ‘실로폰’을 설명하는 게 아닌가? 하지만, 아니다. 다시 표준사전을 보자.

*실로폰(xylophone(영)): 타악기의 하나. 대(臺) 위에 여러 나무토막을 음계 순서로 놓고 두 개의 채로 때리거나 비비면, 나무토막의 길고 짧음과 두껍고 얇음에 따라서 각기 다른 음정을 낸다. =목금.

그러니, 쇠로 된 것이 글로켄슈필(철금), 나무로 된 것은 실로폰(목금)인 것. 장수 TV프로 ‘전국노래자랑’에서 출연자를 웃기고 울리는 실로폰도, 사실은 실로폰이 아니라는 얘기다. jinwon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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